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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미작가 Jun 11. 2021

"엄마, 나는 왜 이런 사람이야?"

아이의 피부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4살 무렵엔 이마에 몇 개뿐이던 구진이 온몸으로 퍼진 지 2년이 가까워진다. 소아과도 가보고, 피부과도 가보고, 대학병원도 가보고, 한의원에도 가봤지만 다 비슷한 얘기들이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치료방법도 딱히 없단다. 여러 곳 전전한 끝에 그나마 병명이라도 제대로 알았으니 다행이랄까.


'광택 태선'

이름도 생소하다. 작은 구진들이 반짝반짝 광택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수개월에서 수년 내에 자연 소실된다고 하지만, 국내에서는 15년간 지속된 전신형 광택 태선에 대한 보고도 있다고 했다. 조금 가려운 것 빼고는 특별히 아픈 곳은 없다 하는데 구진이 오래 지속되면 피부에 흔적을 남길 수 있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인터넷 사이트와 논문을 뒤지며 원인과 해결방법을 찾아보지만 의사들 말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와중에 마음만 널뛰기한다.


'1만 명 중에 3~4명이라는데, 왜 하필 우리 애가.'

'아니지 아니지. 그저 피부일 뿐이라 다행이지. 아프거나 가려워 괴롭거나 한 건 아니니까.'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나한테 다 옮겨 왔으면.'


무너졌다가 다잡다가의 반복.  안 그래도 자신의 피부를 보는 남의 시선을 눈치 보는 아이에게 나의 걱정스러운 눈빛까지 더해질까 봐 아이를 씻긴 후 로션 발라줄 때를 제외하고는 아이 피부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한다. 열심히 종이접기를 하는 아이를 지켜볼 때도 자꾸만 피부를 흘깃거리게 되고,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소시지 반찬을 준비해 놓고도 이 소시지가 아이 피부를 더 나쁘게 만들까 봐 맛있게 밥 먹는 아이에게서 걱정스러운 눈빛을 거두기 어렵다.  


엄마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자랐고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눈도 생겼다.

더워진 날씨에 짧아진 옷을 골라놓고도 '친구들이 놀리면 어떡해?'라고 묻는 아이에게 '괜찮아.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피부가 좀 약한 거지.'라고 답하는 나의 말은 아이 마음에 전혀 와닿지 않나 보다. 긴 옷을 골라 입고 모자까지 쓰고 나간 놀이터에서 만난 친구가 '너 얼굴에 그거 뭐야?'라고 물으면 '이거? 그냥 아토피인데?'라고 답해놓고 슬며시 자리를 뜨는 아이를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못해 목이 멘다.


어제는 목욕을 마치고 커다란 수건 위에서 뒹굴거리던 아이가 대뜸 물었다.

"엄마, 내 피부는 왜 이렇게 이상해? 나는 왜 이런 사람이야?"


그 질문이 너무 아파 잠시 말을 잃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이 아이가 안심할까. 아무렇지 않은냥 로션을 발라주며 말했다.


"우리 애기 피부가 어때서? 그냥 약한 거야. 사람은 모두 달라. 힘이 세고 약하고, 키가 크고 작고, 배가 자주 아프고 머리가 자주 아프고. 다른 사람이랑 다르다고 해서 이상하거나 나쁜 거 아니야."

"엄마도 약한 데 있어?"

"엄마는 머리가 자주 아프잖아. 시끄러운 소리도 잘 못 듣고."

"어른이 되어도 내 피부는 약할까?"

"엄마처럼 어른이 되어도 약할 수 있겠지. 근데  요즘 밥도 잘 먹고 한약도 잘 먹고 약도 잘 바르고 있으니까 곧 괜찮아질 것 같은데?"

"아싸~ 곧 낫는다~!"


아이는 금세 신이 났고 수건을 몸에 둘둘 말아 감으며 낄낄거렸다. 나는 괜히 아이를 간지럼 태우며 함께 낄낄거렸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지만.


'괜찮다'는 말 대신 '우리 아기, 피부 때문에 속상해?'라고 물어볼 걸 그랬나.

곧 나을 거라는 말 대신 몇 년 걸릴지도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나았나.


그날 밤, 나는 잠든 아이의 손과 발을 쓸어내리며 다음에 아이가 또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생각하다가  한숨으로 밤을 잊었다. 피부 전문 한의원에 상담 예약을 걸었고, 심부온도를 올리는 식재료에 대한 기사를 읽었으며, 면역에 좋다는 영양제를 주문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뭐라도 얻어걸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놓친 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으로.


이런 사소한(?) 질환에도 엄마의 마음은 이만큼 괴로운 것을, 많이 아픈 아이들의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버티고 있을까. 아아, 제발 아픈 아이 없게 해 주세요. 우리 아이도 빨리 낫게 해 주세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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