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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국 Nov 21. 2019

삼만 육천 년 전의 스튜

호시노 미치오와 알래스카



  낮잠을 자 두었다고 해도 늦게 잠에 든 몸이 일찍 일어나지지는 않는다. 나는 거의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텐트를 걷고 차에 올랐다. 일요일이라 페어뱅크스에 있는 식당들에서는 브런치 뷔페를 제공하고 있었다. 달콤한 연어 샐러드와 신선한 버섯, 드라이 에이징을 거친 소고기 등을 뱃속 가득 채워 넣었다. 다음 여정을 위해 든든히 먹고 난 다음,  나는 알래스카 대학에 위치한 북극박물관(Museum of the North)으로 향했다.


  호시노 미치오는 알래스카에 오기 전 이곳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알게 된 이름이다. 그는 평생을 알래스카의 자연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젊은 나이에 캄차카 반도에서 곰에게 물려 죽은 일본인 사진가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것은 북극권을 떠도는 카리부 떼였는데, 포큐파인 강 유역을 유랑하는 포큐파인 카리부 군락이나 유콘 강을 따라 움직이는 유콘 군락을 찾아서 그는 몇 달이고 툰드라를 헤매곤 했다. 빙하호 수상 활주로에 착륙한 단엽기에서 몸을 내리고 친구 부시 파일럿의 인사, "안녕, 친구! 내년 봄에 보세나, 행운을 비네!"를 뒤로 한 채 얼어붙은 땅으로 떠나는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것은 소멸을 향해 정면으로 걸어 들어가는 어느 선구자의 모습처럼 생각되었다. 그의 책,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에 실린 글과 사진들은 비록 그가 살아 있을 때 기록한 것들이지만 모두가 자신을 꾹꾹 눌러 담은 유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거기에는 삶과 죽음의 아우라가, 치열한 탐색과 내려놓음이, 자연 속으로 사라지고 싶으면서도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다고 느끼는 양면적인 감정 같은 것들이 검붉고 푸른 툰드라의 이끼처럼 뒤섞여 얼어붙은 땅, 혹은 그의 사진들 위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에는 흥미로운 일화도 소개되어 있다. 북극박물관의 가장 유명한 소장품, <블루 베이브>에 관한 이야기다. <블루 베이브>는 40년 전 금광을 찾던 한 광부에 의해 페어뱅크스 북쪽에서 발견된 들소의 미라다. 연구자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36000년 전 홍적세의 빙하기에 살았던 들소가 죽음과 동시에 얼어붙으면서 동토 속에 가두어지고 미라화되었다는데, 그래서 지금 발견된 모습은 죽을 때의 모습 그대로라는 것이다. 또한 연구자들이 시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 엉덩이 쪽에 무엇에 물린 듯한 상처를 발견했다고 하는데, 그 속에는 사자의 이빨이 부러진 채 들어 있었다고 한다. 블루 베이브는 사자에게 물려서 죽었지만 매서운 추위에 순식간에 돌처럼 얼어버린 바람에 먹히지는 않고 그대로 보존된 셈이다. 한편 추위 속에서도 가까스로 사냥에 성공했지만 이빨이 부러져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 사자는 어떻게 되었을지 지금로썬 알 길이 없다.



  블루 베이브가 어떻게 죽었을지 고민하던 연구자들은 비밀이 풀리자 조촐한 파티를 연다. 그들은 들소의 목 부위에서 살점을 떼어내 스튜를 끓인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들이 나눠먹은 삼만 육천 년 전의 고기는 질겼지만 꽤나 먹을 만했으며 심지어 맛있었다고도 한다. 특히 향이 굉장히 강했는데, 진한 토양의 풍미가 느껴졌다는 한 연구자의 증언도 있다.


  북극박물관 중앙 복도의 벽면에는 여덟 개의 액자가 걸렸는데, 모두 호시노 미치오가 찍은 알래스카의 사진들이다. 그중 설원 위 두 마리의 북극곰을 찍은 사진 옆에 있던 설명문이 인상적이어서 나는 그 글과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아래의 글은 해당 설명문에 인용된 그의 글을 번역한 것이다.


이누피아트 에스키모들은 그들과 얼음의 세계를 공유하는 거대한 흰 곰, 나누크(Nanook)에게 오랫동안 경의와 친밀감을 느껴 왔다. 어쩌면 그들이 바다표범을 잡기 위해 유빙 위의 숨구멍을 며칠씩이라도 지키는 것은 곰에게 배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 곰들은 이누피아트 설화에서도 중요한 대상으로, 인간성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기도 한다.

“네 할아버지의 마지막 숨결을
안아간 그 바람은
막 태어난 새끼 늑대의
첫 호흡으로 생명의 숨을 전해주었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로 다시 태어난다.
소년이여, 너는 네가 취하는 생명에 대해 항상 기도하여라 -
너의 할아버지가 그랬듯 말이다.
네 기도의 말들은
우리가 듣게 될 말들이다.

우리는 각자가 지구의 한 표현이다.
네가 나의 삶을 위해 기도한다면,
너는 나누크가 되고,
나누크는 인간이 된다.
언젠가 우리는 이 얼음의 세상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거기서 죽는 것이
나일지, 너일지는 중요하지 않으리라.”

<나누크의 선물(Nanook's Gift)> 中
사진, 호시노 미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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