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리지에서 페어뱅크스로 이어지는 파크스 하이웨이는 알래스카 산맥의 초입에서 캔트웰이라는 작은 마을을 지난다. 마을이라고 해봐야 중앙 도로 양쪽으로 선 상점들 서넛과 주유소 하나, 보안관이 머무는 자그마한 한 칸짜리 건물뿐이다. 지금은 볼품없어졌지만 1957년, 디날리 하이웨이가 캔트웰을 종점으로 하여 개통되었을 때만 해도 이 마을은 자연 속으로 침식해 들어가는 문명의 최전선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파크스 하이웨이가 놓이기 전에는 앵커리지에서 페어뱅크스로 가려면 알래스카 산맥을 멀리 동쪽으로 돌아야만 했다. 산맥을 관통하는 델타 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타나나 강을 만나는데, 타나나 강은 북서쪽으로 계속 흘러 페어뱅크스를 지나 유콘 강과 몸을 합친다. 캐나다 북서부 유콘 준주를 가로질러 와 알래스카의 수많은 지류들을 끌어안은 유콘 강은 그대로 서쪽으로 약 1200km를 더 밀려가 베링 해협의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 지류 중 하나인 델타 강을 끼고 올라가는 계곡길의 중간쯤에는 팍슨이라는 마을이 있다. 팍슨의 서쪽으로는 알래스카 산맥의 고원지대가 펼쳐져 사람은 거의 살지 못하는 곳이었는데, 금광을 찾는 노다지꾼들이 맥킨리 산 방향으로 고원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면서 길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때 노다지꾼들이 다니던 고원길이 지금의 디날리 하이웨이다. 여전히 포장되지 않은 비포장 길인 디날리 하이웨이에는 오늘날 여름의 백야 속에서 카리부며 말코손바닥사슴을 사냥하는 사냥꾼들을 태운 지프차들만이 바삐 오간다. 캔트웰은 알래스카 산맥의 높은 고갯길들을 가로질러 온 디날리 하이웨이가 디날리 산의 발치에 이르러서야 거친 발걸음을 멈추는 종착지다.
나는 비포장도로인 디날리 하이웨이가 파크스 하이웨이를 만나는 교차 지점에 한동안 서 있었다. 동쪽을 바라보면 아득한 고원이 높게 솟아 있어 그 너머로 향하는 도로는 마치 하늘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주변으로 드문드문 흩어지던 몸 낮춘 나무들조차 고원의 절정에 이르러서는 자취를 감추었다. 나무가 자라지 않는 산비탈은 온통 산딸기 덤불로 가득해 불그죽죽 멍든 대지를 새파란 하늘 밑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산딸기 덤불로 뒤덮인 산등성이와 폐허로 변한 구리 광산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나는 이국적이라는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곳이 이미 모든 풍화가 끝나버린, 마침내 녹슨 구리와 철광석마저 껍질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광막한 우주 속 다른 행성은 아닐지 생각했다. 지구의 어느 구석에서 나는 위치 감각을 잃고 행성을 헤매었다. 낯선 색채와 대기를 호흡하며 이 땅이 품은 역사를 티끌만치나마 내게로 끌어들이려 했다. 그것으로 물들게 될 어떤 색깔을 나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었다. 숨결 속에서 오고 가는 무수한 입자들이 지닌 빛깔 따라 우리는 물들고 물들인다. 수억 년이 흐른 후, 지구는 어떤 빛깔로 물들어 있을 것인가. 혹은 물들어 있지 않을 것인가. 우리가 떠난 후 지구를 뒤덮을 빛깔은 무엇일지 골똘히 생각하며 나는 다시 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