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 비슷한 방울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텐트 천장에 비친 바깥은 이미 밝았다. 침낭 밖으로 난 볼과 코 끝에는 새벽의 냉기가 걸려 있었다. 누운 채로 텐트 문을 열었다. 풀냄새 머금은 습기와 말간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벗어놓은 등산화 옆 잔디에는 잎새마다 아침 이슬이 맺혔다. 이슬방울은 진딧물 꽁무니에 매달린 꿀물 방울처럼 영롱했다. 맨발로 잔디를 밟고 일어섰다. 차가운 풀과 땅의 감촉이 발끝에서 척추를 따라올라와 뇌를 촉촉하게 적셨다. 기지개를 켜고 텐트 위에 쳐둔 천막을 만져보았다. 나일론 천막은 물기를 가득 머금어 축축했다. 툭툭 털어다 볕이 잘 드는 나뭇가지에 넓게 널었다.
Camping gears - K'esugi Ken, Alaska - 2018.09.21
아침 메뉴는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였다. 소금 넣은 물에 면을 삶고 올리브 오일을 두른 팬에는 마늘 플레이크와 페페론치노를 볶았다. 은은한 마늘향과 요리하는 냄새는 싱그런 풀냄새와 번갈아 후각을 간질였다.
여행지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은 항상 힘들었다. 아침을 먹을 것인가 굶을 것인가. 점심은 해 먹을 것인가 사 먹을 것인가. 여행지에서는 먹는 일이 당연하지 않았다. 병원 밥이며 군대 밥을 받아먹는 데 익숙해져 있던 나는 내 몫의 끼니를 내 힘으로 해결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산과 들을 누비며 김치찌개든 파스타든 정성껏 만들어 먹노라면 원시로 돌아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먹고 자고 싸는 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들이 여행지에서는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왕성하게 꿈틀거리는 생명의 감각이다. 살아 움직이는 나라는 동물의 자각이다.
볶아놓은 양념에 삶은 면을 붓고 살살 저었다. 양념이 잘 배어들게 면수를 조금씩 넣었다. 완성된 면을 보기 좋게 말아놓고 파슬리 플레이크를 사뿐히 뿌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잘 먹겠습니다,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는 것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나무 사이로 청명한 쪽빛 하늘과 눈 덮인 디날리 산이 보였다. 우물우물 씹어 삼킨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의 힘으로 저 너머로 향할 것이었다. 그곳에는 툰드라와 오로라의 도시, 페어뱅크스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