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 토카르추크,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단, 그의 오른쪽 집게손가락만은 공손하게 손을 포개는 전통적인 자세를 거부하며 위쪽으로 뻗어 있었다. (...) "자, 주목하세요!"라고 손가락은 말하고 있었다. “주목! 여기 당신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습니다. 당신들에게 감춰졌던 단계의 중요한 시작점이며, 특별히 주목할 만한 그런 것입니다.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 시각 이곳에 모여 있는 겁니다. 눈 내리는 겨울밤, 이 고원의 작은 오두막에 말이죠. 나는 죽은 몸뚱이로, 당신들은 하찮은 늙은 인간으로 말이죠.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인걸요. 바로 지금부터 모든 게 시작됩니다.”(p.26)
“먹먹한 슬픔과 비탄. 매번 동물이 죽을 때마다 느껴지는 이러한 회한과 애도의 감정은 아마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나의 애도가 끝나면, 또 다른 애도가 이어지므로 나는 끊임없이 상중(喪中)이다.”(p.148)
“그 어떤 인간의 심장도 그렇게 많은 고통을 견딜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복잡한 정신세계는 인간이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생겨난 것입니다. 진실을 환상이나 덧없는 말장난으로 포장해서 그것이 인간에게 전달되는 것을 막는 것이죠.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찬 감옥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자에게 고통을 가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었습니다.”(p.157)
“개개인의 삶에 천체가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 그것은 문신으로 새긴 수감 번호처럼 우리를 우주 공간에 투옥한다. 거기서 탈출할 방법은 없으므로 나는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 무서운 일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여기고, 언제든 자신을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삶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믿기에 천체와 같이 위대하고 엄청난 대상과의 연관성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차라리 미물이 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러면 우리가 저지른 사소한 죄들도 용서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므로 나는 우리의 감옥에 대해 매우 잘 알아야 한다고 확신한다.”(p.163)
“자연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 어떤 생물도 유용하거나 무용하지 않아요. 그것은 그저 사람들이 적용하는 어리석은 구별일 뿐입니다.”(p.223)
“동물들은 정의감이 매우 강하거든요. 내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아니면 부당하게 꾸짖거나 약속을 어길 때마다 나를 바라보던 그 애들의 눈빛이 기억나요. 내가 도대체 왜 신성한 법칙을 어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지독히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곤 했죠. (...) 우리에겐 ‘세상을 보는 관점’이 있지만, 동물들에게는 ‘세상을 느끼는 감각’이 있답니다.”(p.281)
“별들은 정말로 우리의 미래를 알까? 그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길까? 움직임의 자율성이 배제된 채 이렇게 현재에 갇혀 있는 것에 대해서? 하지만 우리의 연약함과 무지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우리가 별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작동하는 건 바로 우리 때문이니까. 이 고통스러운 세상을 행복하고 평화로운 것으로 바꿀 기회 역시 우리에게 있다. 별들은 자력으로 스스로를 가두었기에 우리를 도울 수 없다. 그들은 그저 그물을 디자인할 뿐이다. 그들이 우주의 베틀로 날실을 짜면 우리는 거기에다 우리의 씨실을 엮어야 한다.”(p.293-294)
“나는 창가에 서서 눈앞에 보이는 풍경으로부터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잔물결을 일으키며 흔들리는 적갈색 풀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 속에서 추는 그들의 춤, 그 움직임을 부추긴 대상, 그리고 모든 색조와 음영 안에 깃들어 있는 변화무쌍한 초록빛 자국들.”(p.303)
“알고 보니 저는 괴물들 틈에서 살고 있었던 거예요.”(p.308)
“끊임없이 울부짖는 바람 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귓가에서 뭔가가 계속해서 버스럭거리고, 휘파람 소리와 윙윙 거림이 멈추질 않으니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나뭇잎이 나무에서 얼마나 큰 소리를 내는지 아세요?”(p.308)
쟁기질을 한 들판 위로 눈이 쌓인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하느님은 인간을 동지로 삼으셨고, 창조의 과업에 동참하게 하셨으며, 이러한 과업이 완수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냥꾼은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인 자연을 보살피는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p.331-332)
“이봐, 당신, 거기서 내려와. (...) 이제 그만하라고. (...) 지금 당신에게 얘기하는 거야. 내 말 안 들려? 얼른 내려오라고!”
“동물로 분장한 아이들은 이제 막 태어나려는 반인반수의 새로운 종족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p.333)
“만약 악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선은 그 세상을 파괴해야 하기 때문이다.”(p.353)
“모든 눈망울에 맺힌 눈물이
영원 속에서 다시 갓난아기로 태어난다.
빛나는 처녀에 의해 위로받은 눈물이
기쁨을 돌려주리니.”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 中 p.362)
“별의 신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종종 그 별들의 영향력에 압도당한다. 별을 읽지 않거나 읽을 수 없는 뉴턴과 같은 사람은 또한 자신의 추론과 실험에 압도당한다. 그러니 결국 우리는 모두 실수와 오류의 대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범죄의 주체가 아니라고 누가 과연 말할 수 있겠는가?”(윌리엄 블레이크, <편지> 中, p.363)
“이 발자국은 누가 만든 거지? 이렇게 자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건 왠지 좋은 신호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내 연구를 완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첫 번째 연구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의 별자리다. 나는 내 별자리를 해독하기 위해 자주 연구에 몰두한다. 나는 누구인가?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내 사망 날짜를 알고 있다.”(p.372)
“네 할아버지의 마지막 숨결을
안아간 그 바람은
막 태어난 새끼 늑대의
첫 호흡으로 생명의 숨을 전해주었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로 다시 태어난다.
소년이여, 너는 네가 취하는 생명에 대해 항상 기도하여라 -
너의 할아버지가 기도했듯이.
네 기도의 말들은
곧 우리가 들을 말들이다.
우리는 각자 지구의 한 표현이다.
네가 나의 삶을 위해 기도한다면,
너는 나누크가 되고,
나누크는 인간이 된다.
언젠가 우리는 이 얼음의 세상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거기서 죽는 것이
나일지, 너일지는 중요하지 않으리라.”
이누피아트 설화, 호시노 미치오의 <나누크(북극곰)의 선물> 中
“모든 건 이렇게 작동하는 거야, 디지오. 하지만 난 알고 있어, 아직 내게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는 걸.”(p.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