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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지석 Jun 09. 2019

#15. 이사를 할때 느끼는 것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걸 알기에 아름답다.

스무살 때부터 집을 떠나 독립을 했다. 어릴 적에는 마냥 집을 떠나 독립하고 싶었다. 부모님 잔소리가 싫고,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생활을 하고 싶었다.


둥지를 떠난 아기새는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군 복무를 하고 있는 도중 부모님도 이사를 하셨다. 자연스럽게 있던 내 방은 없어졌고, 대신 옛 추억이 깃든 물건만 가득한 창고가 하나 생겼다. 지금은 잠깐 고향인 부모님 댁에서 출퇴근하고 있지만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집이 어색하기만 하다. 


군대에 있으면서 4번의 이사를 했다. 같은 지역에서 숙소를 옮긴 횟수를 포함하면 그 이상이다. 

나름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려고 했지만, 이것저것 조금씩 쌓아두다 보면 숙소를 옮길 땐 짐이 한가득이다.


군 시절 마지막 종착지는 의정부였다. 딱 2년 전 의정부에 급하게 집을 구했다. 

남은 군 생활 전역 준비를 하기 위해 규모가 작은 동원사단으로 전출 신청을 했다. 하지만 전방부대 보다 숙소 여건이 녹록지 않았다. 


2인 1실에 곰팡이가 가득한 단체 샤워장, 쓰레기가 가득한 방에서 미래를 준비할 수 없었다. 막연하게 BOQ(군 숙소)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군데 돌아다녀보지 않고 작지만 내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곳, 부동산에 더 말할 것도 없이 그날 계약을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의정부 집을 구했다.


2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특히, 전역을 하고 새 출발을 했다. 전세계약이 끝날 때 즈음 새 출발한 직장에서도 발령지가 나오는 시점이라 아귀가 딱 맞아떨어졌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기 위해 오늘 의정부 집 정리를 했다.


그렇게 버리고 또 버리고, 미니멀 미니멀하고자 했지만 짐을 빼도 빼도 끝이 없었다. 7평짜리 작은 원룸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짐이 나오는 건가 신기하기도 했다. 혼자서 두 시간 동안 겨우 짐을 빼고, 청소를 하면서 깔끔하게 새 주인을 맡게 될 집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다.


추억놀이

구석구석 청소를 할 때마다 추억이 닦이는 기분이었다. 


폭우가 쏟아지던 여름날, '비 올 때 이사하면 잘 산다'는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옮겼던 침대.

매일 퇴근 후 미래를 새겼던 책상.

이딴 걸 왜 사냐는 핀잔이 묻은 수납장.

가벼운 끼니를 챙겨준 전자레인지.

자기 전 하루의 마무리를 은은하게 비춰준 스탠드 조명.


청소를 끝내고 목소리가 울리는 텅 빈 방에 누워 있으니 '의정부'라는 영화 한 편이 상영되는 것 같았다. 

처음 이사 온 그날부터 나름 힘들었던 군 복무와 취준 생활의 병행, 그리고 새 출발까지 모든 좋은 기운을 받아 떠나는 기분이었다. 아쉬운 열린 결말이지만 영화 '의정부'는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이사를 할 때마다 추억에 잠긴다. 좋은 기억들만 가득한 추억들 속에서 빠져나오긴 너무나도 아쉽지만 과거 속에 묶여있는 사슬을 푸는 연습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가끔 과거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좋을 때도 있었지만 굳이 과거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한 학교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걸 알기에 아름다운 것"


아름다운 추억놀이는 놀이일 뿐, 아름다운 과거를 얹어 더 나은 미래를 그려나가는 연습도 한편으론 필요하다.


어떤 일이든 다시 시작되는 내일의 나날에 활용하고,
늘 자신을 개척해 가는 자세를 갖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최고로 여행하는 방법이다. - 니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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