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상혁 Jul 03. 2021

그때 그 못난이 15화

마을 버스는 떠나갔다

우리 중학교 졸업생의 70%는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담벼락을 하나 두고 붙어있는 곳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는 학연과 지연이다. 나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타 지역 사립학교로 진학했다. 못난이완 처음으로 다른 교복을 입게 됐다.


다른 학교로 진학 후 한동안 적응하지 못하고 헤맸다. 등굣길은 물론이고 복도, 교실 어디에서든 익숙했던 얼굴들과 풍경, 냄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었다. 같은 중학교 출신은 고작 2명, 각자 반 배정도 멀찍이 떨어져 외톨이 같았다. 다행인 건 학교 오는 버스가 옛 중학교를 지나간다는 사실이다.


학교를 마치고 나면 항상 중학교 버스 정류장에 내려 중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모두 같은 고등학교를 같으니 그 녀석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등하굣길을 지난다. 교복만 달라졌을 뿐.


중학교 편의점 앞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눈동자를 굴리기 바쁘다. 혹시나, 어쩌면 못난이를 마주치지 않을까? 지나가는 모습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못난이의 뒷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1년이 흐르고 2학년에 된 후에도 못난이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종종 못난이가 살던 동네를 갈 때면 집 앞을 서성였으나 그 집도 허물어져 새로운 건물이 공사 중이었다. 마음속으로 전학을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났을 때야 두리번거리던 눈동자가 멈췄다. 내 눈동자는 더 이상 못난이를 찾지 않았다.


"아우, 추워. 야! PC방 콜?"

"콜, 지는 팀이 몰빵이다."

편의점 앞에서 탄산음료를 마시며 친구들과 떠들다 PC 방으로 향했다. 가을은 잠시 스쳐갔고 겨울이 다가와 첫눈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하나둘씩 외투를 챙겨 다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FPS 게임에 빠져 있던 우리는 달이 반짝이고 있을 때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누구 때문에 이겼고, 누구 때문에 졌다는 시시껄렁한 대화가 주된 주제였다. 내일은 팀을 어떻게 짤지, 어떤 내기를 할지 대화를 하며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다.


"야, 근데 너 떡볶이 코트 어쨌냐?"

"아씨, PC 방에 놓고 왔나 봐. 먼저 가. 난 코트 찾으러 가야겠다."

"그래, 내일 보자. 학교 끝나면 편의점 앞으로 와."

차가워진 밤공기를 헤치며 PC 방으로 돌아갔다. 자리에 두고 온 코트를 집어 들고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끌벅적했던 골목길이 왠지 쓸쓸하게 느껴졌다.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마을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얇은 단화를 뚫고 찬 공기가 발가락을 괴롭혔다.

'아으, 오다가 똥이라도 싸러 갔나? 버스 왜 이렇게 안 와!'

온갖 짜증을 부리며 먼발치를 바라보고 있을 때 급작스럽게 90도 인사를 했다. 후두부에 강한 충격이 전달된 것.


"야, 너 여기서 뭐해?"

못난이였다. 여전히 매운 손으로 내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못한 채 물그러미 쳐다봤다. 아무 말없이...

"야?"

의아한 눈으로 못난이가 빤히 쳐다봤고 정적의 시간이 흘렀다.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여자애가 못난이의 팔을 붙잡아 끌었다.

"가자. 너 모르나 봐."

친구에게 붙들린 채 끌려가며 못난이는 다시 되물었다.

"야, 나 누군지 몰라? 나 기억 못 해?"

"가자니깐."

그렇게 못난이는 당황스러운 눈빛과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작은 점이 됐다.

'아는데...'

나는 여전히 사춘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철딱서니였고 점점 작아지는 못난이 뒷모습을 쫒다 마을버스를 놓쳤다. 그날 한 시간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주머니에 꽂아 넣은 손을 빼내 왜 흔들지 못했는지, 왜 안녕이란 말 한마디를 못했는지 자책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그때 그 못난이 14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