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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 쓰는 트레이너 Mar 22. 2020

애증의 근육통

없으면 그게 또 그렇게 섭섭하다.


 어렸을 때 가끔 등산을 가거나, 가을 운동회 다음 날엔 늘 다리에 알이 배겼다. 친구들이 몇 날 며칠을 낑낑대며 주물러도 ‘저건 엄살이다’하고 생각했었다. 나에게 알 배김은 좀 불편하긴 해도 일상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고, 하루 이틀이면 언제 불편했었나 싶을 정도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난생처음 웨이트 트레이닝(이하 웨이트)이란 걸 한 다음 날, ‘스치기만 해도 죽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강력한 근육통을 앓았다. 지인들이 “도대체 애한테 얼마나 시켰길래 저 지경이야?” 할 정도였다. 웃을 수도 없고, 앉을 수도 없으며 일어날 수도 없었다. 그저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강도는 다르지만, 나는 늘 근육통을 달고 산다.      




 모든 웨이트를 하는 사람(초보부터 선수까지)에게 근육통은 ‘운동이 잘 되었는가?’ 하는 척도로 이용되곤 한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근육통은 웨이트를 하면 할수록 집착하게 되는 그런 존재다. 웨이트 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이 궁극적으로는 아프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일 텐데, 아프지 않으면 속상해하다니 아이러니하다. 트레이너 동료들끼리 모이면 우리가 진짜 변태라며 종종 농담한다. 심지어 회원들도 운동하고 아프면 아프다면서도 웃고, 안 아프면 운동 프로그램이 약한 것 아니냐고 물어왔다. 내 경험으로는 열 명 중 아홉 명이 그랬다.      



 근육통은 운동을 하면서(웨이트가 아니더라도) 평소보다 큰 자극을 받아, 상처를 입은 근육이 회복하는 과정에서 오는 통증이다. 지금 회복 중이니까 움직이지 말라는 근육의 경고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유난히 웨이트 후에 더 자주, 심한 근육통이 생기는 이유는 에너지 대사 원리에 있다. 근육통을 유발하는 물질은 ‘젖산’인데, 젖산은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시간을 두고 모든 과정을 거쳐 탄수화물을 분해하면 생기지 않는다. 급하게 탄수화물을 분해해야 할 때 몇몇 과정을 건너뛰면서 부산물로 생기는 것이다. 탄수화물을 주로 에너지원으로 쓰는 웨이트는 젖산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크다.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쓰는 유산소 운동은 어지간해서 근육통이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고 웨이트를 하면 무조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웨이트가 몸에 익고, 에너지 대사가 활발해지면 그만큼 근육통도 줄어든다. 물론 웨이트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늘 평소보다 큰 자극’을 근육에 주려고 애쓰기 때문에 그냥 근육통을 세트처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두는 것은 아니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게 대처한다.     


 

 웨이트를 마친 직후가 근육통을 방지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그리고 근육통 해결의 끝판왕은 역시나 유산소 운동이다. 가장 큰 원인인 젖산을 분해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산소 공급’이기 때문에 그래서 마무리 유산소, 유산소하고 트레이너들이 노래를 부른다. 특히 러닝머신을 추천한다. 다른 기구들도 좋지만, 빠르게 몸의 안정을 찾는 데는 여러 면에서 걷는 것이 최고다. 시간은 최소 15분은 타는 게 좋다.      



 그러나 이 원리를 잘 아는 트레이너들은 유산소 운동과 스트레칭을 정말 싫어한다. 웨이트에서 이미 영혼까지 불태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정말 힘이 하나도 없다. 이럴 때 우리는 ‘샤워’를 이용한다. 내 ‘체온과 비슷한 온도’로 오래오래, 최소 20분 동안 샤워한다. 목욕탕 온탕 이상의 온도(37' 이상)는 오히려 근육통을 유발한다. 혈관이 넓어지면서 평소보다 많은 혈액이 근육으로 몰리게 되고, 혈액이 근육에 영양소와 산소를 더 자주, 많이 공급해주게 되면서 급성 근육통과 지연성 근육통을 한꺼번에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 논리가 논문으로 발표되면서 동료 중엔 샤워 마무리에 찬물을 폭포처럼 맞는 사람도 많았다. 당연히 나는 안 한다. 운동도 힘들었는데, 찬물까지 맞는 건 벌칙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골든 타임을 놓쳤다고 해서 이 방법들이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유산소 운동은 언제든 옳다. 단, 샤워는 온도가 달라진다. 웨이트 직후에는 혈액이 갑자기 몰리지 않게 체온과 비슷한 온도의 물이 좋다고 했지만, 24시간이 지난 후부터는 '목욕탕 온탕 온도 이상'의 물 온도가 더 좋다. 근육이 뭉쳐서 병원에 가면 열 찜질을 받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마지막으로 입이 아플 정도로 당연한 이야기라 언급하지 않은 스트레칭은 언제 해도 좋지만, 근육통을 막기 위한 가장 좋은 시기는 세트 사이사이 또는 운동 종목 사이사이에 해 주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강한 수축을 받은 근육을 사이에 풀어주면서 미리 차단하는 효과를 줄 수 있다.     



 근육통, 트레이너에게는 참 애증의 관계다. 없으면 없는 대로, 심하면 심한 대로 신경 쓰인다. 처음엔 매일 이러면 운동 못 하겠다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근육통을 운동 중 일부로 받아들이고 나서는 오히려 즐기게 되었다. 변태 같아도 어쩔 수 없다. 근육통이 없으면 그게 또 그렇게 섭섭하다. 내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아픔으로 조절하고 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 운동은 계속해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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