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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량 Mar 18. 2019

나를 인정해줄 사회는 없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인정에 인색한 사회.

인간은 모두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인간은 원하든 원치 않든 집단의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가정, 학교, 회사 더 크게는 국가까지 말이다. 이 거대한 집단에서 나만의 흐름과, 나만의 신념, 나만의 가치를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가끔은 자신이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작디작은 자갈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파도를 타다 다른 자갈들에 깔려 깊이 매몰되어 버리는 그런 자갈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지만 반대로 자기애가 강한 동물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가 충돌하며 인간은 불행해진다. 집단에 휩쓸려 내가 나로 존재하지 못할 때, 내가 매몰당해 사라질 때, 인간은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자존감을 잃는다.


어떻게 하면 집단 속에서 개인이 자신의 가치를 존중받고 자존감을 지킬 수 있을까?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다.


내가 속한 집단에서 나의 필요를 인정받는 것, 나의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 


그 순간 인간은 그래도 내가 이 자갈 속에 자그마한 수석은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설령 그게 사실이 아니더라도 힘을 내고 내 가치와 자존감을 되찾는다. 


그래서 난 '인정의 욕구'를 인간이 가지는 무수한 욕구 중 삶과 직결된 가장 중요한 욕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린 개인을 인정하는 데 인색한 사회에 살고 있다.

개인의 흠은 개인의 흠이 되고 개인의 공은 집단의 공이 되는 사회. 

뭔가 하나를 실수하면 폭풍 같은 질타가 이어지지만 잘해서 성공하면 '수고했어, 고생했어' 정도가 끝인 사회.


내심 마음으로는 '뭐, 이 정도면 됐지.' 그렇게 생각하지만 한 편에는 서운함이 남고 그게 쌓이면 스트레스가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난 이곳에서 뭐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삶에 깊은 회의를 느끼며 행복과 나의 가치를 잃어버린다.


인정은 인간 간의 상호 작용이다. 하지만 지금 사회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이 윤활히 작동하지 않는다. 


성과만이 중요한,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과정보다 결과 중요한 사회에서 우리는 자신 한 몸 챙기기도 바쁘다. 당연히 타인에게 무관심해지고 그것이 나에게도 돌아온다.


이런 사회임을 누구보다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인정의 욕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욕구가 왜 욕구인가? 결국은 뭔가로 충족되어야 하니 욕구인 거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 욕구를 채워야 한다. 이에 대한 답은 하나다.


타인이 아니라 내가 날 인정하는 것.

뭔가 실수를 하면 실수한 일만 자꾸 머리에 떠오른다.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한 자신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화가 치민다. 그렇게 자학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 자존감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과연 내가 한 것이 실수뿐일까? 내가 장점이라고는 없는 인간일까?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일이 있다. 그리고 장점이 있다. 일단은 그 장점을 찾자. 내가 잘한 일을 떠올리자. 그리고 나만큼은 그 장점을 인정하자. 나만큼은 날 칭찬해주자. 


아직 그 장점을 보여줄 기회가, 그 장점을 펼칠 무대가 없었다 생각하자. 설령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도 괜찮다. 내가 날 인정하고 내 가치를 찾는 건 나의 행복을 위해서니까.


날 인정해주는 타인이 없는 세상.


누구도 개인의 가치를 인정할 틈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이 세상에서 내 가치를 지키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바로 내가 날 인정하는 것, 

나만은 날 아껴주는 것.


그리고 만약 그로 인해 여유를 되찾았다면, 

가끔은 남에게 시선을 돌려주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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