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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세량 Mar 13. 2019

세상에 하나뿐인 내편, 부모님.

내 편이 있다는 것.

세상에 내 편이 있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나에게는 부모님이 그런 존재다.


평범한 부모님을 만났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참으로 다행한 인생이다.


세상의 대부분 부모님은 자식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 어려운 출산과 육아의 벽을 넘기며 오히려 행복을 느끼고 자식을 위해 헌신한다. 가끔 자식과 트러블이 생기지만 그래도 견디고 자식을 믿는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가끔 도저히 부모라 부르기도 아까운 존재들이 세상에 나타날 때가 있다. 자식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그러니 그런 부모가 아닌, 날 아끼고 사랑해주는 부모님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축복인가?

난 평범한 부모님 아니, 그보다 더 좋은 부모님을 만나는 정말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을 받았다. 


부모님은 늘 날 믿어주셨고 날 지지해주셨다. 어릴 때 부모님이 주신 선물 중에는 글귀가 새겨진 돌이 있었는데 '세상에 소금이 되어라'라고 쓰여있다. 그 돌을 볼 때마다 난 부모님의 나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느꼈다.


하지만 난 그런 부모님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했다. 세상에 소금이 되기는커녕 나 하나 먹고살기도 바쁜, 그리고 나 하나 빠져도 전혀 티 나지 않는 존재로 자랐다. 참 슬프고 죄송한 일이다.


그런 탓인지 난 크면서 점점 심리적으로 위축됐다. 자신감도 많이 줄어들었다.


자신감이 급격히 줄어들면 증상이 나타난다. 바로 예민함이다. 


주변 사람의 발소리 하나까지 신경이 곤두서고, 작은 말이 큰 비수가 되어 꽂힌다. 자연히 온몸에 날이 서게 된다. 그리고 제일 많이 날을 세우게 되는 존재가 늘 곁에 있는 가족이고 부모님이다.


그때 난 참 많이도 부모님과 충돌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나, 그런 나를 안타깝게 보는 부모님 그리고 점점 멀어지는 거리감과 잦은 의견 다툼.


시간이 흐르며 자신감은 더 떨어졌고, 정신력은 더 약해졌다. 날을 세우는 단계가 지나면 살고자 하는 에너지가 뚝 떨어진다. 


앞은 깜깜했고 삶에 대한 기대감도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문뜩 죽음이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삶에 지친 그 순간, 죽음을 선택하고 싶은 유혹이 날 부른 그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렇게 충돌하고 부딪혔던 부모님의 얼굴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이 끈을 잡고 절벽에 매달려 있을 때 모두가 그 끈을 놓아도 당신의 부모만은 자신의 손에서 피가 나더라도 결코 그 끈을 놓지 않는다.' 


세상에 유일한 내편, 다음 생애도 내가 그런 내 편을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이런 축복을 차 버릴 자격이 있을까? 무엇보다 이런 내편을 내가 배신해도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벼랑 끝에 서있는 나의 머리 채를 붙잡았다.


'그래, 최소한 그들을 슬퍼하게 하지는 말자.'


세상에 아무런 조건 없이 내 편을 들어주는 이를 찾기란 흔치 않다. 굳이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당신의 곁에 그런 사람이 단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한 없이 축복받은 사람이다. 


진정한 내 편이 있다는 것. 

내 편에게 기쁨은 몰라도 아픔은 주고 싶지 않다는 것.

그리고 이런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


난 그 마음으로 또 하나를 견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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