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당초 CAR-15라는 총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어설픈 지식을 바탕으로 뭇 밀덕들을 낚고 있는 한 '자칭 전문가'가 이런 발언을 했다.
'XM-177E1이라는 단축형 소총은 CAR-15라는 모델에서 총열을 줄인 것'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하나도 맞는게 없는 이야기다.
일단, CAR-15라는 명칭의 총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CAR-15라는 건 Colt Automatic Rifle의 이니셜이고 이건 콜트가 아말라이트사의 AR-15에 대한 판권을 인수하면서 쓰기 시작한 일종의 상표권 명칭에 불과하지 단일 총기에 대한 명칭이 아니다.
세간에서, 혹은 밀덕들 사이에서 흔히 'CAR-15'로 잘못 알려진 총기의 정식 명칭은 Colt Model 607이다. 혹자는 Model 607의 제식 명칭이 CAR-15라는 헛소리를 시전하기도 하는데 Model 607은 정식으로 채용된 역사도 없다.
콜트가 아말라이트로부터 AR-15에 대한 판권을 인수한 게 1959년의 일이다. 유진 스토너의 아말라이트 AR15은 1956년에 나온 총이고 그 원형에 해당하는 AR10이 처음 등장한게 1953년이며 그 AR10에 사용된 직동식 가스 메커니즘과 회전볼트는 그보다 더 훨씬 전에 유진 스토너가 설계했던 AR3 프로토타입 소총(만들다 만 M14처럼 생겼다)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국내 총덕들 사이에서 CAR-15라는 명칭으로 잘 알려져 있는 Colt Model 607은 그 개발역사가 훨씬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콜트가 아말라이트로부터 AR15의 판권을 인수한 게 1959년이다. 단 이미 아말라이트에서도 M16의 원형이 되는 총기들을 얼마간 생산을 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콜트가 AR15의 기반 설계도를 바탕으로 자체생산을 시작한 모델들의 명칭은 모델 603부터라고 보시면 된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는데, 왜 모델 넘버가 600으로 시작을 하느냐는 거다. 많은 분들이 이거 잘 모르시기도 하거니와, 콜트의 소구경 자동소총 라인업에 500번대 모델 넘버가 존재하지 않기도 해서 이걸 헷갈려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런다. 근데 이거 졸라 간단한, 어찌 보면 상당히 웃긴 이야기이기도 하다.
'콜트가 1960년부터 선보이는 졸라 멋진 소총'이라서 600번대임.
모델 600이라는 분류번호는 존재하지 않으니 ㅋㅋ 601부터 시작하는데 '60년대에 어울리는 소총 제 1호.' 뭐 이런 의미인 거다. 정말 별 의미 없이 딱 이게 끝이다.
사실 알고 보면 이따구 분류번호를 부여하거나 총기 명칭을 갖다 붙히는 사례는 졸라 많은 편인데, 대표적으로 STk(Singapore Technology Kinetics)의 SAR21이나 IWI(Israel Weapon Industry)의 TAR-21이 있다. 둘 다 "21세기의 소총은 이런 거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웃기지? ㅋㅋ
영국의 제식소총인 L85 시리즈도 마찬가지. L은 Land Service의 약자이고, 영국군이 채용하는 제식 화기에는 모두 이 L이 붙는데, L22/L85/L86 등의 불펍식 소총/카빈은 원래 제식채용되기 이전에는 SA80이라는 프로젝트 명으로 불렸다. SA80은 Small Arms for 1980s의 약자로, 1'980년대에 어울리는 (조올라 어드밴스한) 총기'라는 뜻이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례가 존재한다. S&T Motiv(구 대우정밀)이 개발한 불펍식 소총 중에 DAR21이라는 시제품이 존재하는데 이것도 마찬가지. DAR(Daewoo Automatic Rifle) for 21st Century라서 DAR21임. ㅋ
군용 소총인데 뭔가 유치하다고? 아 다 원래 그런 거에요. 왜 그런거 있잖아. 신형 전투기에 '독수리호' 막 이런 명칭을 부여하면 왠지 엄청 유치하고 구린 것 같은데 F-15 Eagle이라고 하면 왠지 간지가 막 나는 것 같잖아? 근데 Eagle을 한국어로 번역해보셈.
응.
독수리.
ㅋㅋㅋㅋ 언더스탠?
여하튼.. XM177E1으로 돌아가서..
콜트가 아말라이트로부터 판권을 인수한 다음 자체적으로 생산을 시작한 AR-15에 Model 603이라는 모델 넘버를 부여하면서, 콜트는 이 새로운 플랫폼을 가지고 미 육군과 공군을 구워 삶아보려고 온갖 짓거리를 다 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1959년에 등장한 해괴망칙한 물건이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Colt Model 603 Tanker이고, 이게 AR15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단축형" 모델이다.
603 탱커의 특징은 아주 간략화 된 개머리판이 있고, 짧은 총열과 아주 컴팩트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게 특징이었다. 그래서 전체 길이도 짧아 휴대성이 용이한 대신, 총열이 짧아 총검을 장착할 수는 없었다. 참고로 '탱커'라고 해서 뭔가 졸라 쎄보이지만 별거 아니고, 전차 승무원들이나 차량 승무원들 지급해주려고 만든 거임.
당시 콜트는 Colt Automatic Rifle, 그러니까 CAR-15의 라인업을 각각 소총, 기관단총, 기관총 등으로 바리에이션을 마구 늘려나가면서 한창 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신개념 총기'라는 어필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었는데, 그래서 당초에는 '전차 승무원이나 차량 인원들을 위해 만든' 이 탱커 모델을 어떤 데서는 '특수부대용 기관단총'이라는 식으로 선전을 해댔고 또 어떤 데서는 '전투기가 추락하여 낙오가 된 조종사들을 위한 생존용 무기- 즉 서바이벌 카빈'이라는 식으로 선전을 해댔다. 당시 콜트가 주장하던 '이 소총은 너무나도 새로운 기술력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약실 청소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라는 개드립도 함께 포함해서. ㅎㅎ
그리고 미 육군이 이 떡밥을 물었다.
언제?
1960년에.
단, 미 육군은 전차 승무원들이나 차량 운용 장병들에게 이런 총을 지급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니 차량 승무원이나 전투기 조종사들에게는 권총 주면 그만이고 뭐 좀 화력이 필요하면 그리스건 주면 그만인데 뭘 이런 럭셔리한 걸 승무원들한테 주나? 그러지 말고 이거 손 좀 봐서 특수부대 애들한테 좀 뿌리면 안될까? 개머리판도 길이 조절이 가능하게끔 개조도 좀 하고 말이야.'
여하튼, 떡밥을 물은 미 육군을 위해 콜트가 내놓은 답변이 바로 Colt Model 607이다.
607은 각각 A형과 B형이 존재하며, 둘 다 합쳐봤자 얼추 50정이 제작되었는데, 이거 그냥 테스트용으로 만든거라서 나름의 모델 넘버(미군이 모델 607에 부여한 명칭은 GX-5857이다)를 부여하기는 했지만 새로 생산공정을 짜서 만든게 아니라 탱커 모델에 육군이 요구한 '길이 조절이 가능한 신축식 개머리판'과 기존 아말라이트 생산 파트와 모델 603의 스페어 파츠들을 조합해서 뚝딱한 것에 불과하다. 'GX-5857'이라는 미 육군 분류 번호도 일단 하부 총몸의 각인을 싸아아악 밀어버리고 난 후에 다시 새긴 것들이라 현존하는 모델들을 보면 꽤나 엉성하기 짝이 없고.
심지어 일부 모델의 경우 핸드가드는 603용 삼각형 핸드가드를 "짤라서" 달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파트들에는 제식 명칭이나 제식 번호, 혹은 파츠 번호 같은 것도 없었음. 그냥 인벤토리에 있는 거 갖다 가공해서 갖다 붙힌 거에 불과하니 말이다.
Colt Model 607의 A형과 B형의 차이는 바로 소염기인데, A형의 경우 모델 601에 장착된 이른바 'Duckbill'이라는 형태의 소염기를 그대로 장착했고, 밀덕 분들이 CAR-15하면 떠올리는 그 원통형의 소음기 비스무리한 소염기는 B형에 장착되었다.
A형과 B형은 이 밖에도 또 다른 부분이 있는데, A형은 발사 모드를 각각 단발과 연발로 조정이 가능했던 반면, B형은 단발과 3점사를 채택하고 있었다. 심지어 일부 모델들의 경우에는 노리쇠 전진기가 있는 녀석도 있었고, 없는 녀석도 존재한다. 즉, 하나로 통일된 구석이 없는 테스트용 총기에 불과했다는 이야기.
607은 월남전 극초반에 주로 미 해군 네이비씰 대원들과 일부의 미 육군 특수부대에서 테스트를 했고, 일부 모델은 미 육군 헌병대에서 사용했다.
실질적으로 월남전에서 테스트에 이용된 607은 스무정이 채 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필자의 지인이자 'Six Silent Men'을 집필한 레인져 연대의 LRRP(Long Range Reconnaisance Patrol, 장거리 정찰조)로 활동하여 무려 은성훈장을 두 번이나 받으신 켄 밀러 퇴역 중사님은 '아예 그런 총을 본 적도 없다'고 하셨다. 아마 당대의 특수부대원들 중에도 607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607은 문제가 많았다.
일단 개머리판은 최대로 늘려도 겨우 67mm가 늘어날 뿐이었고 단계별로 개머리판을 조절하기도 어려웠다. 늘리냐, 줄이냐의 선택지 뿐. 개머리판의 길이를 조절하는 부품들 또한 문제가 많았다. 구조도 복잡했고 내구성도 좋지 않아 고장나기 일수였고 부품 수급도 어려웠다. 당연한 이야기인게, A형과 B형 합쳐서 50정 정도 밖에 만들지 않은 총의 부품을 구한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이야기.
그리고 603 베이스의 총열덮개를 '잘라서' 갖다붙힌 총열덮개는 강도가 약해서 자주 "깨지는" 사고가 속출했다. 소염기는 너무 짧아서 반동제어도, 총구앙등억제효과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발사음이 너무 시끄러웠다. 긴급한 상황에서 총검을 꽂아 냉병기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힘들었다. 아니 일단, 총검 자체를 장착할 수 없었고.
그래서 이를 "보완"해서 개발이 시작된 프로그램이 바로 "콜트 코만도 프로그램"이고 그 첫발을 내딘 시제품이 XM177E1이다. 총덕계에서는 신(神)처럼 추앙받는 콜트의 설계 주임, 故 Rob Roy(본명 Robert E. Roy)가 개발에 참여하면서 문제가 많았던 개머리판을 오늘날 모든 AR15 타입 카빈들이 사용하는 튜브 형태의 스톡봉으로 바꾸었고, 총열 덮개 역시 둥그런 타입의 튜브 형태로 바꾸었다. XM177E1과 E2의 그 소염기 또한, 607의 소염기를 "개량"한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CAR15라고 많은 분들이 "착각"하고 있는 콜트 모델 607을 "다운그레이드하고 총열길이도 줄여서 만든"게 XM177이 아니라, 문제 투성이의 607을 "개선"한 모델이 XM177이라는 거다.
어설픈 지식으로 어린 밀덕 총덕들 낚지 말아라. 나도 전문가 수준은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당신보다는 총은 좀 안다.
뭐, 그렇다구. (* ̄▽ ̄)후후후후♪
p.s. 사실 콜트 모델 607이 'CAR-15'로 정착되어버린 배경에는 일본의 장난감총 메이커들의 '구라'가 한몫했다. BV식 가스건과 에어코킹이 막 나오던 80년대에 마치 'CAR-15'라는 명칭의 졸라 특수한 총이 존재했던 것처럼 선전을 해댄게 국내에 와전된 것. 그러고보니 도쿄 마루이도 Colt Model 607을 재현한 전동건을 발매하면서 'CAR-15라는 특수부대용 총기'라고 구라를 쳐댔었네. ㅎㅎ
p.s.2. 표지 사진의 Model 607 또한 후대에 미국의 총기 매니아가 나름 비스무리하게 꾸민 물건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