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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범할마 Sep 25. 2021

집밥

간장 게장 담기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물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바둥거렸으리라 바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어촌에 살기 때문에 싱싱한 해물을 먹을 기회가 많다.

팔월 중순부터 갈치 잡으러 이곳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다.  

집어등을 단 갈치 배들이 간 밤에 잡은 갈치들을 싣고 새벽에 포구로 돌아온다.

낚시꾼들이 잡아온 은빛 갈치들을 얼음에 채우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추석에 내려온 딸도 제 사촌들과 낚시를 가서 백조기를

많이 낚았다.

회도 떠먹고 몇 마리는 고사리 깔고 지져주었더니

맛있다고 감탄하며 먹고 서울로 올라갔다.  

엄마가 해준 집밥을 먹고 고단한 서울살이 견디라고 생선살을 아기 때처럼 발라주었다.

여름에 엄마를 모시고 있으면서 처음으로 간장게장을 꽃게로 담았다.

게 등딱지에 갓 한 밥과 살을 꾹 짜서 넣고 참기름 한 방울 넣어 비벼 먹으니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친정 단톡방에 자랑을 했더니 여동생이 담아 달라고 해서 살아있는 꽃게 3킬로 담아 줬는데 역시 반응이 좋다.

여기는 돌게가 유명하여 돌게장을 많이 담는다.

통발로 돌게를 잡아 경매로 넘기는 사돈께 부탁하여 겁도 없이 게 한 상자를 사서  게장을 담았다.

 살아있는 이백 여섯 마리 게를 씻는 건 중노동이다.

남편은 하루 종일 수돗가에 앉아서 게를 솔로 문질러

 닦았다.

집게발에  손가락 물려가며 닦은 게 15킬로그램을

소쿠리에 건졌다가  차곡차곡 담으니 김치통에 세 통이 나왔다.

장물을 끓여 부었는데 모자라서 또 끓여서 식혀 붓는

게장 담기 대 장정(?)이 밤 열 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삼일 지나서 열어보니 꽃게보다 크기가  작아서인지

 간장물이 벌써 배어  맛이 있었다.

미리 주문한 항아리 모양 용기에 담아서 아이스 박스에 아이스팩까지 깔아 친정과 언니들에게  택배로 부쳤다.

과제를 제출한 뿌듯함과  채점 결과 나오기 전의

긴장감으로 그들의 맛 평가를 기다렸다.

동서 둘과 딸까지 6통을 보내고 냉장고에 내 몫이 남아있다.

"맛있다"는 칭찬의 카톡을 받으니 게장 담으면서 다시는 "이 짓 안하리라" 했는데 또 담아서 나눠줄 생각을 한다.  친정 엄마 말처럼 일을 만들어서 하는 사람인가 보다.


몇 년 전 문전성시를 이루는 게장 식당 골목에 난리가

 난 적이 있다고 한다.

냉동된 게가 해동되면서  나는 쿰쿰한 냄새를  잡기 위해 청소하는 락스를 풀어 씻은 게 발각되어 조사가

나오고 매스컴을 탔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요즘은 그렇게 씻지 않겠지만 대충 씻을 것 같아

 앞으로 게장 식당에 가는 걸 꺼릴 것 같다.  

중국 사람들의 고추 말리는 영상을 보고 식당에서 김치를 잘 안 먹게 되는 것처럼.


게는 날이 추워질수록 살이 꽉 차고 맛있다.

추석 이후 코로나 확진자가 많이 나오고 낭만과 거리가 먼 뒤숭숭한 가을이지만 게장을 담아 따끈한 쌀밥과 먹으면서 코로나를 건너가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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