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덕분에 잘 키웠음에도
별 생각을 다한 것 같다.
친정엄마께 아이를 돌봐주기를 부탁하면서 내가 원하는대로 양육해주기까지 바라는건 욕심인게 맞다. 연세도 있으신데 아이를 보는 것만도 힘드실거고, 친정엄마는 요즘처럼 책보면서 양육하는 세대를 살지도 않으셨다.
게다가 친정엄마는 우리 부부가 아이에 대해 작은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전혀 비난의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굉장히 방어적인 태도가 되어 아이에 대해 의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을 잠깐 쉬고 직접 양육을 해야하나, 가능할까?
아이를 키우고 싶은 방향이 명확하고, 친정엄마랑 양육태도가 다르다면 방법은 조금 힘들어지더라도 내가 전적으로 양육을 맡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옆길로 새서 친정엄마의 양육방식에 대한 나의 불만을 말해보자면 이렇다.
1. 헌신적이나, 존중하지 않는다.
친정엄마는 뭐든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끼기도 전에 자신의 손으로 해줘버리는 스타일이다. 보살핌을 받는 사람은 물론 아주 안락하다.
그렇지만 경험상 부모에게 배우지 못한 것은 사회에서 더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 깨우쳐야 한다. 어찌보면 아이가 불편함에서 무언가 배울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헌신적인 대신 상대방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는다.
친정엄마는 우리 부부의 침실이 본인 기준에 더러우면 참지 못하고 치우신다. 내가 정리해둔 것이 본인 기준에 미흡하면 다시 정리하신다(내 영역이라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함께 쓰는 우리의 공간이니 조금 더럽더라도 그냥 문을 닫아버리고 신경쓰지 말아달라 부탁해도 1도 먹히지 않는다.
사춘기때 내 일기장을 보는 것은 친정엄마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간혹 내 휴대폰을 몰래 보곤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해도 본인이 생각했을때 정말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라고 인정이 되지 않는 일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이가 자기 몸을 쿡쿡 찌르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거나 안지 말라고 하거나 장난치지 말라고해도 “왜 하면 어떤데” 라고 하며 아이의 요구대로 멈춰주지 않는다.
아이에 대한 평가, 염려 등 아이 자신에 대항 이야기들을 (이제 모든 말을 다 알아듣는) 아이가 듣는데서 거리낌없이 하시는데 그게 또 내가 느끼기엔 간혹 아이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2. 기다려주지 않는다.
위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인데, 아이의 서툶이나 힘듦을 지켜보기 힘들어하시는 편이다.
아이가 울면서 뭔가 요구하면 버티지 못하고 들어주고 서툰 것은 직접 해버리신다. 아이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는 스스로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옆에서 지켜봐주면 되는데 그게 친정엄마에겐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3. 갈등은 회피한다.
친정엄마는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선까지는 되도록 수용하다가 한번에 빵 터트리는 성격인데, 그 터트리는 것조차 불편하기 때문에 회피하는 편이다(즉, 화를 내기보다 조용히 손절하는 편).
또, 안좋은 결과를 예측하는 것도 회피한다. 생각보다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은 입에도 담지 말라고 하며 “우리 집에 그런 일이 생길 리 없다.”고 말하신다.
물론 우리 아이는 잘 자라고 있지만 모든 아이가 그렇듯 사소한 지점에서 문제들도 가지고 있다. 그런 문제들에 대해 논의라도 할라치면 우리 아이는 아주 잘 자라고 있다고만 하시며 대화조차 거부하시는 일이 부지기수다.
동네에서 형성된 조부모 커뮤니티 아이들과 어울려 놀때 아이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맞는다거나 물건을 빼앗긴다거나) 친정엄마가 개입하여 제재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지 않으시는것 같다.
친정엄마께 받은 사랑은 하혜와 같이 크고 그 덕분에 아빠가 엄청 불안정한 가정 환경을 조성했음에도 나는 정상인의 범주에서 평범한 삶을 꾸려가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심리적인 어려움이 있었고, 특히 자존감이 약해 (나를 비추는 거울이 부정적인 편이다)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내 아이는 좀 더 단단한 심리적 물길을 만들어 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보니 친정엄마의 양육방식에도 불만이 쌓이는 것이다.
그럼 나는 과연 아이를 위해 내 커리어를 포기할 수 있나? 금전적으로 좀 더 쪼들리는 삶을 감당할 수 있나? (심지어 이제 곧 애 둘!)
그것도 자신 없었다.
내 회사 근처로 이사하고 등하원 도우미 이모님을 고용하면 좀 더 내 방식을 고수하며 키울 수 있나?
내 방식을 고수하기는 더 수월할지 몰라도 아이의 정서상으로는 압도적으로 할머니가 더 좋을터였다.
공휴일이라 나는 밥 다먹고 방에 누워 이런 생각들을 하며 심란해하고, 남편은 아이 낮잠을 재우고 있었는데 엄마가 말없이 집밖으로 나가셨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욱 심경이 복잡했다.
‘나는 또 내 자식만 생각하고 있었구나.‘
딸네 집에서 딸과 다투고 나면 친정엄마는 얼마나 설 곳이 없으실까? 엄마가 안쓰러웠다. 엄마딴에는 손주에게 최선을 다하고 계실텐데 돌아보니 엄마의 수고를 인정해주는 말 한마디를 안한 것 같다.
감사하다는 표시는 여러번 했지만, 엄마 덕분에 아이가 잘 자라고 있다, 이만큼 잘컸다 하는 말은 한적이 없었다.
친정엄마가 매번 아이의 반찬을 제철음식으로 정성스레 차려주시는 것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감사를 표한적이 없었다.
내가 저녁 일정이 있어도 싫은 내색 한번 안하시고 아이를 돌봐주시는 것에 대해 (덕분에 회사생활을 지장없이 하고 있는 점에 대해), 미디어 노출은 가급적 자제하겠다는 우리부부의 의견에 하원 후 티비 한번 보여주지 않고 놀이터에 데려가주시는 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감사를 표한적도 없었다.
나는 친정엄마의 이 모든 노고의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표현하지 않았다. 부족한 점만 크게 보고 지적했다. 엄마도 인정받고 싶었을텐데.
생각해보니 엄마와 육아에 대해 대화하려던 나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엄마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나 역시 친정엄마를 존중하지 않았다(여기에는 또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다른 에피소드에서 풀어보기로 한다).
당일은 이미 서로간 날카로운 감정이 오간데다 추스르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2시간쯤 뒤 돌아온 친정엄마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거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했다.
다음날은 엄마가 다시 대구 집으로 가시는 날. 회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혼자남아 눈물 콧물 흘리며 엄마께 보낼 장문의 편지를 썼다. 그간 엄마에게 고마움의 표현엔 인색하고 지적만 한 것 같다, 엄마를 탓하려고 한게 아니라 더 잘키우고 싶은 조바심에 그랬던거다. 나도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을때가 많아서 엄마랑 상의도 하고 싶은데 말이 곱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SRT를 타고 계실 엄마께 카카오톡으로 전송했다.
사실 손편지를 써서 서울 올라오신 다음 전달할 예정이었지만 금요일 오전에 친정엄마께 우리가 읽은 책의 핵심 요약부분을 한번 보시라고 건넸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엄마의 기분이 더 상했을까 싶어 급하게 카톡으로 보냈다. 극 T인 남편아.. 제발 가만히 있어
다행히 친정엄마는 자신도 알고 있으며, 괜히 순간 욱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준 것 같다고 나의 사과를 받아주셨다.
아이 입장에서도 자신때문에 가장 사랑하는 할머니와 엄마가 싸우는 것으로 느껴져 너무 불편했을것 같다.
밥상머리 교육도 중요하지만 가정내 평화가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것을 깨달은 며칠이었다. 그래도 이 사건으로 미묘하게 계속되던 친정엄마와의 불편함이 수면위로 드러났고, 덕분에 나를 돌아보고 관계를 교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