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좋게 말하면 뿌듯했고 안 좋은 쪽의 느낌은 당혹스러웠다. 건조하게 이야기하자면 끊임없이 반복했던 행동이 결국 습관으로 변해버린, 당연하기 짝이 없는 결과일 뿐이었다.
눈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으면 세련된 배색효과가 날 법한 감귤. 겨울엔 감귤이다. 그래서 감귤을 깐다. 꼭지가 붙어있는 곳의 반대쪽, 오목하게 팬 곳부터 엄지는 공략을 시작한다. 청결한 손톱으로 지그시 누른 뒤 열 손가락 모두에 균일한 힘을 줘 깔끔하게 절반으로 감귤을 가른다. 나도 모르게. 이런 식으로 감귤을 까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제주에 살 때는 꼭지가 있는 부분을 시작으로 껍질을 난도질하듯 뜯어내 토박이들의 시선을 받더니, 이곳에서는 제주도민 모두의 개인기인 '감귤껍질 까기 신공'이 쏠쏠한 생활의 지혜, 그 이상의 대접을 받는 느낌이다. 정작 그 섬에서 익숙했어야 자연스러웠을 행동이 풍경의 대척점에 가까운 이 강원도에서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니.
더 귀해져 더 달콤한 감귤의 풍미를 느끼며 설경을 바라보는 것은 쌓인 눈의 양과 내리는 눈의 기세에 따라 낭만이 될 수도, 게으름이 될 수도 있다. 늦겨울이라 하는 2월에만 벌써 다섯 번째다. 그냥 눈도 아닌 폭설이. 시골에 사니 사각적 감동은 두 배지만 걱정은 수 십배다. 감귤 깔 시간이 어디 있을까. 나가야 한다. 눈삽으로 부지런히 치우지 않으면 차는 1미터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허리의 뻐근함과 스노 엘보는 숙명이다.
강원도는
강원도다.
하늘에선 온갖 허물과 잡티를 덮어주겠다고 이리도 노력하는데 인간들은 기를 쓰고 하얀 이불을 거두어내려 한다. 있다. 순백의 선물은 이 정도로 충분하니 제발 그만하라는 주민들의 외침은 허공에 흩어질 뿐이다. 젖 먹은 힘은 다 써버린 지 오래라 강원도의 힘으로 어느 정도 길을 내고 나면, 그런 건 있다. 노동 뒤의 벅참. 그런데 그 벅참이 문제다. '벅차다'란 단어만큼 심상이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 말은 흔치 않다. 강도 높은 감동이나 경이로 심장이 터져 나올 것 같을 때도 벅차고, 능력에 맞지 않는 중책을 맡았을 때도 벅차다. 물론 눈을 치운 뒤의 벅참은 긍정적인 감정이 지배적이니 앞의 벅참에 가까울 것이다. 거기에 허리를 펴고 와이드앵글의 시야로 목도하는 눈앞의 설경은 슬플 정도로 압도적이다. 더욱 벅참의 첫 번째 정의에 들어맞는다.
푸른 날, 하늘과 바다가 구분이 쉽지 않다. 늦겨울 강원의 촌은 다른 이유로 하늘과 땅의 분간이 어렵다. 논과 밭, 과수원으로 저마다의 역할을 뽐내던 땅들은 백색 통일로 모두 본질이 된다. 기세가 꺾여 머리카락에 살포시 닿는 눈은 차라리 애교스럽다. 여기서 살게 되면 반드시 심고 말겠다는 신념의 결실인 오죽(烏竹)은 눈에 파묻혀 허리가 꺾인 지 오래다. 큰일이다. 알프스 자락의 마을도 부럽지 않은 환상의 장면에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한데 70센티미터의 적설을 가늠하며 길을 내는데 걸릴 시간을 계산하고 앉았다.
육중한 백두대간을 바라본다. 저 높고 깊은 곳의 겨울은 얼마나 혹독할까, 그 너머의 삶은 얼마나 고되었을까. 산맥이 가파르게 깎여 없어진 여기 영동의 땅에선 부러움 보다는 안쓰러움으로 조망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동쪽의 바다에서 불어오는 구름바람이 산맥에 부딪히기라도 하는 겨울의 어느 날이면, 여지없다. 가차 없다. 멋을 내려 일자로 새침하게 뻗어 나온 현대식 처마나 수평으로 뻗은 침엽수의 굵지 않은 가지들의 사정은 상관할 바 아니다. 숫자가 단순해질 테니 적설의 단위도 센티미터보다 미터로 세는 게 편할 수도 있다. 종종 그렇다.
"살아 학산, 죽어 성산".
이건 너무도 단정적이다. 그래서 충격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삶과 죽음의 무대를 얘기하는데 무서울 정도로 단순화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믿음은 절대적이다. 살기 좋은 터는 학산이요, 묻혀 편안한 명당자리는 성산이다. 정확히는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와 강릉시 성산'면'을 지칭하고 있으니 행정구역상 동생 뻘인 '리'가 형님인 '면'에 맞서는 형국이다. 실제로 학이 많이 살아서, 혹은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지형이라 마을이름이 학산이 되었다고 한다. 백두대간에서 살짝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우뚝 서 있는 칠성산의 전경은 압권이고, 소 울음소리와 황금빛 논의 물결이 시청각을 어루만지는 것이 분명 살아 좋을 곳이다. 고고한 학도 순백, 마을을 덮은 눈의 이불도 순백. 지명에 맞춤한 계절은 겨울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무시무시한 산바람의 위력과 폭설의 습격은 감당하기 쉽지 않다. 살아 좋은 학산의 타이틀은 그만한 고난을 감수해야 얻어지는 것.
굴산사와 당간지주
범일국사
오독떼기
그리고 '어단리'가 공식 지번 주소지지만 학산리와 경계에 위치한 커피공장 테라로사
이 정도가 강릉시 남서쪽에 자리 잡은 구정면 학산리가 품고 있는 이미지가 되겠다. 지명의 인지도에 비해선 제법 들어봤음직한 단어들일 것이다.
굴산사지 당간지주
테라로사 커피공장
학산 오독떼기 전수회관
굴산사는 통일신라시대 엄청난 규모의 사찰이었다. 당시의 위세는 5.4미터에 달하는 당간지주의 높이로 쉽게 설명된다. 불국사처럼 실제 사찰이 지금도 존재한다면 어땠을까. 족히 한 번에 몇 백 명 정도는 사찰스테이가 가능했을 듯하다. 굴산사는 강릉인들의 정신적 지주 범일국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국사(國師)로 모시겠다는 각계의 청을 모두 거절한 대승이었던 범일국사. 그가 당나라 유학 중 돌아와 굴산사를 직접 지었다는 설과 당시 명주 도독의 요청을 받아 원래 있던 이곳 굴산사에 머물며 후학을 가르쳤다는 설도 있다. 강릉사람들에게 범일국사는 단순한 내 지역의 역사적 인물 수준을 넘어선다. 지역의 수호신으로서 강릉단오제가 존재하는 이유 그 자체이고, 진하게 표현하자면 주민들의 신으로서 핏줄 속에 녹아있는 존재인 것이다. 대관령 너머 한반도 동쪽에 크나큰 영향력을 미쳤던 대사찰의 터를 진돗개와 함께 매일 내 집 앞마당 마냥 거닐 수 있다. 이런 호사가 없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섬석천 덕에 논농사가 발달해 덩달아 농요가 잘 보존된 것이 학산리의 또 다른 자랑이다. 이름부터 야무지기 그지없는 오독떼기는 논매는 소리다. 동서남북 더하기 중앙 해서 '다섯의 도랑(瀆)'을 '일군다(開拓)'는 의미도 있다고 하고, 다섯 번 꺾어 부르는 농요라 오독떼기라는 주장 등도 있다. 제주민요는 오돌또기, 경기민요로는 오독도기가 알려져 있는데 누가 봐도 하나의 어원에서 나온 명칭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강원도 무형문화재인 오독떼기는 대접도 소홀하지 않다. 제법 규모가 있는 전수회관이 소나무 숲 사이에 서 있다. 이렇게 뿌듯할 수 없다.
강릉 커피에 대한 이야기는 미루어두기로 한다. 지금은 그저 흰 겨울과 어울리는 빨간 벽돌건물의 운치에 집중해야겠다. 살아 좋은 학산이라 당분간의 보금자리로 선택했지만 강릉 커피의 성지(聖地-명소가 아닌 성지란 표현이 이렇듯 찰떡인 곳이 또 있을까)가 이리 가까운 곳이 있었을 줄은. 수십 센티미터의 꼬마 크레바스들에 발이 푹푹 빠지는 불편함과 불안함을 감수하긴 했어도, 커피가 당기면 한적한 겨울 테라로사를 무려 걸어서 갈 수가 있다. 이런 낭만이 없다.
테라로사 커피공장
백색에 대해 생각해 본다. 포슬포슬 예쁘게 살짝 내려앉는 정도가 아니라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렸으니 약간의 편집증을 지니고서라도 생각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물체가 반사하는 가시광선의 색이 바로 그 물체의 색이 되는데 흰색은 모든 색을 반사시킨다. 다 튕겨내다니 얄밉기까지 하다. 언뜻 모든 색들이 반사된다고 하니 알록달록 총천연색이 될 것 같은데 그저 하얀색이 무조건 반사의 결과다. 너도 싫어. 네 빛깔도 맘에 안 들어. 어떻게 보면 그렇게 확고한 취향의 물체는 단순한 색이 어울린다. 까다로운 사람이 그러데이션 된 파스텔톤의 스웨터를 입고 있는 건 조금 얄궂은 모습이 아닌가.
블랙홀과 정반대로 모든 걸 반사만 하는 백색은 그 모난 성격과는 딴판으로 긍정적 이미지를 훨씬 많이 품고 있다. 순수, 순결, 완전함, 영적인 권위, 평등과 평화의 상징이다. 종교적으로도 가톨릭은 교황만이 교회 밖에서 완전한 색인 흰색의 옷을 입을 수 있었고, 이슬람 신도들은 메카 순례길에 흰 옷을 입어야 했다. 이젠 구릴 정도로 식상한 표현이 되었지만 '화이트 칼라'가 있었고, 정권이 바뀌면 많은 사람들은 '블랙'리스트보다는 '화이트'리스트에 올라 그들의 삶이 일정 기간 편안하길 바란다. 심지어 '하얀'거짓말도 있지 않은가.
한편 백색은 대부분의 동북아문화권에서는 애도나 죽음, 귀신의 색으로 여겨진다. 권위의 표상으로서 흰옷이 아닌 상중(喪中) 비애의 표현으로 흰색 상복을 입는다.(삼베라 완전한 흰색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처녀귀신과 사람으로 둔갑한 구미호는 항상 하얀 소복 차림이다. 컬러풀한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을 목격했다면? 그 역시 무섭겠지만 호기심도 폭발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입어도 되는 거예요?".
흰색에 대한 두려움은 중국사람들이 한 수 위인 듯하다. 우리는 장례식뿐 아니라 축하해야 할 자리인 결혼식이나 돌잔치, 개업식 때도 흰 봉투에 돈을 넣어 전달한다. 봉투는 곧 흰색이니까. 뭐 어떤가. 중국인이라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다. 어디 귀신이 깃든 봉투에 축하의 의미를 담을 수 있느냐며. 그래서 설날, 그들은 행운을 상징하는 빨간색 봉투에 돈을 담아 복을 기원한다.
꿈을 꾸었다. 개꿈이다. 진짜 꿈에 개가 나왔으니 두 말할 것 없는 개꿈이다. 개꿈의 속성 그대로 스토리주 뒤죽박죽, 기승전결은 개뿔. 꿈속도 눈 천지였다. 늦겨울 눈 치워 길 내기가 솔찬히 고생스러웠는지 꿈에서도 온통 하얀 세상 속 나. 흔히들 그렇듯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다 보니 버거워진 현실의 몸이 신경깨나 쓰였는지 하얀 눈밭 위를 힘차게 달리는 다이어터가 되었다. 한참을 달리다 드디어 허기가 밀려왔다. 눈앞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 밥을 주문한다.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밥과 함께 물이 담긴 투명한 비닐봉지를 건넨다. 열대어 몇 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그리고 손가락 길이만큼도 안 되는 강아지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말했듯 개꿈 중의 개꿈이다. "집에 가서 키워." 아주머니가 말씀하셨다. 일단 급한 건 강아지다. 얼른 봉지에서 강아지를 꺼낸다. 다행히 별 문제없어 보인다. 호흡을 가쁘게 하자마자 2개월 정도 된 아기 강아지 크기로 변한다. 눈같이 하얀 몰티즈다. 몇 달 전 자식이나 다름없었던 몰티즈를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내 상심이 컸는데 잘됐네. 그런데 하얗기 그지없는 순백색의 털뭉치가 왜 그리 불쌍해 보이는지. 잘 키울 수 있을까. 맥락 없이 공간을 점프해 이번엔 교실 안. 고등학생이 되어 시험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새삼스러울 건 없다. 개꿈의 순간이동 중 수없이 마주친 장면이니까. 역시나 이번에도 억울함 가득이다. 나에게만 답안지를 주지 않고 학생들의 시험지와 답안지를 종료 벨과 동시에 걷어간다. 저 선생 누구지 도대체? 제출한 것은 백지 그 자체. 머릿속도 하얘진다. 빵점이구나. 인생이 그런 거지 하며 교실을 나서는 순간 학생들의 폭동이 이어진다. 흰색 교복의 물결이 복도를 휩쓸더니 학교 밖으로 흘러간다. 1980년대인 것인가. 그렇다면 군과 경이 때려잡아야지 뭐. 끔찍하게도 총칼을 앞세워 학생들을 뒤쫓는다. 최루탄도 없이 이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양상은 시가전으로 확대된다. 공기는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겁을 먹은 학생들의 무리는 우왕좌왕. 제발 살려주세요.
순수만 해야 할 백색이 공교롭게도 죽음의 기억과 연민, 허탈함과 공포가 되어 새벽을 잠식해 버렸다. 개꿈이라도 씁쓸한 건 씁쓸한 것이다.
두어 달 전, 눈보다는 추위의 기세가 월등했을 때 따뜻한 남쪽에서 후배가 놀러 왔다. 한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손꼽을 정도인 탐라에서 왔으니 영하 십몇 도의 공기가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맨투맨 티셔츠 바람에 목도리도 없어 휑하게 드러난 목을 보니 괜스레 미안했다. 봄, 가을에 정말 날도 좋고 예쁘다고, 봄꽃과 단풍이 일품이라고, 다른 계절에 다시 한번 오라고 했다. 혹한 때문에 피어오른 자괴감은 그 녀석의 한 마디에 기분 좋게 산산조각 나 버렸다.
"그래도 강원도는 겨울이죠!"
사정없이 쏟아지던 눈의 흐름이 바뀐다. 이젠 한 송이 한 송이 민들레 홀씨처럼 내리고 있다.
차창에 닿는 눈은 바로 스스로의 결정이 되어버린다.
참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