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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술샘을 가로질러

-영월군 주천면

by Total Eclipse Feb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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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이 됐는데도 제대로 된 눈 구경을 하지 못했다. 작년 겨울엔 무릎까지 쌓인 눈을 지겹도록 목격한 바람에 스키장 알바생 마냥 눈이 침침할 정도였는데 올 겨울은 영 딴판이다. 산맥 너머 평창부터 저 멀리 호남지역까지는 알프스나 진배없다. 계속 눈 세상이란다. 태백산맥은 강원 영동지방의 차양막인 듯 호된 눈보라를 차단하고 있다. 방심은 금물이다. 영서에 고비가 지나면 늦겨울 폭설의 고장은 영동이 되어 버리니까. 적어도 3월까지는 긴장을 늦춰선 안된다. 봄 향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다가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겨울왕국 은빛 세상의 되먹임이다.  

 그래도 눈이 제법 내려줘야 보기에도 좋고 가뭄도 해소되는 것 아니겠냐는 타당한 주장들이 곳곳에서 들리지만 고개를 돌리며 애써 외면한다. 나도 설경 좋아한다고, 시골인 우리 동네에 눈 한번 내리면 천국의 풍경인 걸 알기나 하냐고 치고 들어가고 싶은데 꿀꺽 삼켜버리고 마는 것이다. 팔꿈치 통증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왼쪽 팔꿈치 안쪽 접히는 부분의 인대. 검진 때 피를 뽑아내는 그 정맥 근처. 강릉의 겨울들을 온몸으로 겪고 난 뒤 스스로 진단한 병명은 '스노 엘보우'다. 겨울이 지나고서도 주먹을 불끈 쥐면 통증이 느껴질 만큼 고질이 되어버린다. 50센티미터 이상의 눈이 연달아 내리는 시골에서 내 집 앞 눈 치우기는 최소한의 의무. 눈삽으로 눈을 긁어모아 집의 경계인 구거로 던져 넣기를 수 백 차례 반복하고 나면, 삽 아래를 받치는 왼쪽 팔은 사시나무가 되어버린다. 강원도의 겨울을 나려면 전완근 단련이 필수다. 언제까지 눈이 내리지 않기만을 바랄 것인가. 결국 올 것은 오고야 말 텐데. 치우기 싫어서 눈을 저주하는 것이 비겁해 보인다. 강원의 무적 제설차를 빙의해 쌓이기 전에 바로바로 긁어내면 되겠지. 다가올 늦겨울의 폭설에 심약해지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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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군 주천면 판운리의 섶다리 마을영월군 주천면 판운리의 섶다리 마을


 눈이 남아있을 영월로 간다. 오래전부터 설경 속 다리를 보고 싶었다. 그것은 불변하면 안 되는 교량이어야만 한다. 가뭇한 허깨비와도 같은 냇가마을 다리의 운명을 무려 140여 년 전 앎의 파괴자는 이렇게 묘사했다.


 물속에 들보가 세워지고 좁은 판자다리와 난간이 그 강물 위로 솟아오르면, 정녕 "만물은 유전한다" 고 말하는 자를 믿을 사람은 없게 된다.  (중략) 혹심한 겨울이 강물이라는 짐승을 길들여 얼어붙게 만드는 겨울이 다가오면 더없이 재치 있는 자들도 만물은 유전한다는 사실을 의심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은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야 하지 않나?"고 말하는 것은 바보들만이 아니다.  (중략) 그러나 봄바람은 이 가르침에 반대되는 설교를 한다. 봄바람은 밭이나 갈도록 길들여진 얌전한 수소가 아니라 성난 뿔로 얼음을 깨부수는 난폭한 수소이며 파괴자다. 깨진 얼음은 다시 판자다리를 무너뜨리고 만다. 오, 형제들이여. 이제 모든 것이 유전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난간과 판자다리가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았는가? 


                                                                -프리드리히 니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신과 더불어 다리마저 죽여버린 니체, 망치를 든 철학자답다. 영원회귀의 설교를 봄바람과 강물, 판자다리의 순환적 운명으로 빗댄다는 니체의 문장이지만, '난간'이란 단어만 빼면 영월 섶다리의 일생을 은유를 더해 설명하고 있지 않은가. 마을 사람들은 추수 뒤 수량이 줄어드는 시기, 강바닥에 물푸레나무로 뒤집힌 Y자의 교각을 세우고 그 위에 소나무나 참나무등을 얹어 골격을 세운다. 솔가지로 평평하게 상판을 덮은 뒤 진흙으로 포장을 하고 나면 섶다리가 완성된다. '섶'이란 것이 땔감으로 쓸 수 있는 나무를 통칭한다고 하니 딱히 꼭 써야만 하는 수종은 정해지지 않은 셈이다. 위태로워 보여도 하중에 반작용하는 출렁거림으로 오히려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 섶다리다. 나무의 탄력성이 아니었다면 안정된 유연함은 바랄 수 없었을 것이므로 섶다리는 곧 과학이다. 늦봄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던 다리는 장마로 불어난 세찬 강물과 함께 하류로 쓸려내려가 버리면 그만이었다. 다리의 재료가 되었던 자연의 일부는 수장(水葬)이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자라투스트라가 역설했던 판자다리의 운명과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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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운리 섶다리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적당한 폭의 평창강을 건너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젠 과거와 달리 세찬 물살에 쓸려내려가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다리에 꼭 맞게 재단된 재료들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주민들이 장마를 앞두고 섶다리를 분해해 재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들고 분해하고, 고된 노동임이 분명하지만 매년 훌륭한 섶을 구하러 다니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일 것이다.  


 진흙 위 눈이 코팅된 다리 위를 걷는다. 산 봉우리를 잇는 출렁다리는 교각이 없어 과격한 출렁거림을 줄 수밖에 없지만, 다리가 있는 다리에서 감각하는 요동은 어지럽지 않은 기분 좋은 흔들거림이다. 서서 타는 요람과도 같다. 흙바닥의 바삭임도 흐뭇했겠지만 진흙 위로 다져진 눈을 밟는 촉감은 흐뭇에 짜릿을 더하는 누름이다. 이 계절에 오기를 잘했다. 절반쯤 얼어붙은 강물은 겨울의 혹독함보다는 숨 쉴 간극을 예비하고 있는 것이어서, 푸르스름한 윤곽으로 요철을 그리는 투박하지 않은 얼음들은 평창강이 만들어낸 사납지 않은 돋을새김이 된다.   

주천면 주천리를 흐르는 주천강주천면 주천리를 흐르는 주천강


 인공의 시설 중에 다리만큼 스스로 행복에 겨워할 사물이 있을까. 엄정한 '시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오브제'에 가까운 대접을 받는 것들도 허다하다. '인공 시설'이란 것은 특정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객체일 것이다. 다리는 분명 '건너기' 위한 매개 사물이다. 기능은 그 한 마디로 족하다. 그러나 떠올려 보자. 본질을 넘어 운치가 덧씌워진 영광의 다리는 이 세상 곳곳에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유려한 건축미를 뽐내는 구조물로써, 역사적 이벤트의 현장으로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인간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뭘 그렇게들 유난이신가, 그냥 빨리 건너가시지. 난 그냥 다리일 뿐이거든요. 내가 자랑을 했어요, 뭘 했어요?" 여유 있게 맞받아치며 은근히 자신감을 비치는 듯하다.   

 

 시공간을 순간 이동한다. 설경 속 판운리에서 초록이 생동하는 봄 속 주천리의 주천강변이다. 주천면 판운리에서 주천리는 차로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니 시간 이동이 공간 이동을 한참 추월한 셈이다. 남한강을 이루는 큰 물줄기는 동강과 서강이다. 태백 검룡소에서 솟아난 물이 정선, 영월을 지나며 동강으로 확장하고, 오대산에서 발원한 물이 평창군 봉평에서 평창강이 되어 여기 주천강과 합일해 서강을 형성한다. 그러니까 영월은 동강과 서강의 유유한 흐름을 감상할 수 있는 시연의 무대인 것이고, 서부 영월군의 주천면은 서강의 젖줄인 평창강과 주천강을 모두 볼 수 있는 마을인 것이다. 가히 합일의 상징인 영월이 고매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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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천면 주천리와 신일리를 잇는 쌍섶다리주천면 주천리와 신일리를 잇는 쌍섶다리


 주천강에는 11자로 놓인 쌍섶다리가 있다. 왜 쌍으로 만들어졌는가. 둘 쯤은 놓아야 마을에 복이 들어오는 풍수 때문인가. 아니라면 물살의 세기를 줄이기 위한 구조적인 설계의 일환인가. 해답의 단초는 어떤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섶다리였는지를 되짚어 보는 것이다. 영월 하면 단종의 추모를 여권처럼 삼아 군의 경계를 뚫고 들어오게 되는 것처럼 단종은 영월에서 유배했고 사망했다. 아시는 대로. 그 애달프디 애달픈 왕의 시체를 강가에서 한 치도 옮기지 말라는 잔인무도한 명을 내렸던 세조는 조카의 끔찍한 운명을 후대들이 이렇게나 감싸 안을 줄 몰랐을 것이다. 숙종 대에 넉넉한 묘역을 단장하고 묘호가 주어진 뒤 장릉은 역대 강원도관찰사들이 부임의 명을 받으면 반드시 들러 참배해야 하는 성소가 되었다. 취임 첫날 각지의 도지사들이 지역의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것에는 다 원류가 있었던 것이다. 지형상 이곳 주천 일대는 한양에서 출발한 관찰사 일행이 장릉으로 가는 길목이었고, 마을 사람들은 신임 관찰사 일행이 안전하게 주천강을 건널 수 있도록 섶다리를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관찰사 정도 되는 고위직 공무원이 두 발에 먼지를 묻힐 수는 없는 법. 성스러운 옥체를 모신 가마는 사인교(四人轎)여서 하나의 다리 폭으로는 가마 양쪽의 가마꾼이 동시에 건널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주천강 동서의 마을 사람들은 힘을 합칠 수밖에 없었다. 강 동쪽의 주천리 사람들은 신일리 쪽으로, 신일리 주민들은 주천리 쪽으로 다리를 놓아 관찰사 일행의 장릉 행차를 수월케 했다. 경쟁은 시공 품질과 속도의 향상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듬직하게 주천강을 가로지르는 쌍섶다리는 단종의 비극을 소급하고 후대의 추모를 상징한다. 애당초 두 갈래로 놓일 운명이었을까. 주천면은 섶다리의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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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천강변 망산 아래에 있는 주천면 표지석 


 쌍섶다리의 신일리 쪽 건너편엔 망산(望山)이 있고 그 아래엔 '술샘공원'이 있다. 술샘은 주천(酒泉)의 우리말. 그렇다. 영월의 서쪽인 이곳은 술이 샘처럼 넘쳐흘렀던 마을이다. 망산의 기슭에 술이 솟아올랐다는 샘이 있었다고 하고, 샘이 있었던 곳과 가장 가까운 도로변에 마을의 이름을 당당하게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진정 이것이 사실이라면 주당들이 꿈에도 그리던 유토피아가 아닌가. 글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는 독자가 있다면 간 수치 확인을 꼼꼼히 하셔야 할 것이다. 중증이다. 

 술샘과 관련된 설화가 예사롭지 않다. 선조들의 해학과 풍자가 담기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 설화라 할 수 없으니까. 주천의 샘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술은 신기하게도 양반이 담으면 청주가 되고, 상민이 받으면 탁주가 되었다. 때문에 허구한 날 탁주만 마시던 마을의 한 상민이 양반의 의구를 갖추고 술샘을 찾았다. 이해된다. 어떻게 날이면 날마다 소주만 마시고 살겠는가. 가끔은 맥주도 마셔야 하고 도시 하나쯤은 날려버릴 만한 폭탄주도 들이켜야 전천후 주당으로 도약하는 게 아니겠나. 어색한 갓끈의 걸리적거림을 참아내며 쿵쾅대는 심장박동 소리와 함께 술바가지를 내밀었다. 담긴 것은 여전히 탁주. 얄팍한 눈속임으로 맑은 술을 구하려 하다니. 술샘의 신묘함을 무시해도 한참 무시한 결과였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상민이 양반이 되는 길은 몇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가 숱한 관문을 뚫고 과제에 급제하는 것. 이 고을에서 농사를 짓던 한 젊은이가 과거에 급제해 말을 타고 금의환향하였다. 그가 양반으로 신분을 높이려는 목적이 술샘에서 청주를 받으려는 것이었다면 지구 최강 주당으로 인정 어, 인정. 부모님도 뵙기 전 술샘으로 달려간 신생 양반은 비단옷 소매가 젖는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바가지에 술을 담았다. 술의 정체는? 수심, 아니 주심 1센티미터도 안 되는 가시거리의 정통 탁주였다. 머리 싸매고 공부는 왜 한 건가. 원통해 가슴을 치는 양반을 바라보며 술샘은 다그친다. "양반이란 타고나는 거야. 어디 감히 상민출신 따위가..."    

 무시무시한 설화 아닌가. 뼈를 깎는 노력도 원죄는 메우지 못한다는 뼈를 때리는 훈령이다. 

 명치가 서늘해진다. 그래도 난 청주보다는 탁주 파다. 전주 이 씨 족보는 정녕 엽전모아 사 온 것이었던가. 

 인도에 이런 설화가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그리고 계급 외 불가촉천민인 찬달라가 있는 바라나시 한 구석의 술샘에선 도대체 어떤 식으로 차별화된 술이 나와야 한단 말인가. 술은 섞어야 제맛이란 말은 현대의 술샘이 명심해야 할 덕목이다. 각성하라 주천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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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달 와이파크 입구와 내부에 있는 술샘 박물관


 영월을 '젊은 달(Young 月)'로 새콤하게 해석한 젊은달 와이파크는 영월의 새로운 명물이 되었다. 역사가 녹아든 자연의 공간 외에 사람이 만들어놓은 영월의 명소라고 하면, 과거 KBS영월방송국이었던 '라디오스타 박물관'과 여기 '젊은달 와이파크'를 꼽고 싶다. 젊은달 와이파크는 주천면이 마을의 정체성을 알리고자 건립한 술샘박물관이 있던 자리에 재생공간으로 조성된 설치미술관이다. 2019년 공간디자이너 최옥영의 기획으로 기존의 술샘박물관은 미술관 내부에 유지해 둔 채 환상적인 공간이 덧대어졌다. 주천(朱泉)인 듯, 주천(酒泉)인 듯 강렬한 붉은색의 설치작품과 술의 고장임을 알리는 전시관은 영월의 달만큼이나 젊은 MZ들을 유혹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에치고유자와역 폰슈칸 사케 자판기에치고유자와역 폰슈칸 사케 자판기


 술의 고장이라기보다 술맛이 날 수밖에 없는 터전, 강원도에 살면서 주천면에 못내 아쉬운 것은 하나다. 이왕 술샘의 마을을 널리 홍보하고자 했다면 주인공은 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스토리는 술을 추켜세워주는 배경이 되어야 한다. 면의 이름부터 MBA과정 최우수 졸업자들이 탐낼 '술의 샘'이다. 근본이 깔린 상태에서 마케팅은 출발한다. 마땅히 주천면에서는 전국 각지의 술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설국>의 고장이 그립다면 일본 니가타현 에치고유자와역(越後湯沢駅)에서 내려야 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순백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터널 격인 이 기차역 내부에는 '폰슈칸(ぽんしゅ館)'이라는 지역 명주(名酒) 테마숍이 있다. 일본을 찾는 MZ 주당들에게는 이미 성소가 되어버린 폰슈칸에는 술 자판기가 있다. 코인을 넣고 원하는 사케를 선택하면 그만이고, 온갖 사케들의 인기순위와 특징까지 알 수 있어 취향에 맞는 술을 골라 마실 수 있다. 니가타가 자랑하는 쌀을 주원료로 한 고품질 사케는 모세혈관을 따라 전신으로 내달린다. 료칸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발그레 볼이 달아오르게 마련이니, 설국을 바라보며 즐기는 온천욕은 긴장과 홍조로 덮였던 몸뚱어리를 얼마나 녹여 내릴 것인가. 

 강원도와 니가타는 술을 마셔야 할 이유가 있는 곳들이다. 일단 눈의 고장. 그래서 두 지역은 동계올림픽을 치렀다. 니가타가 지역의 쌀로 사케를 제조했다면 강원도도 뒤지지 않는다. 쌀은 물론이고 옥수수, 메밀을 넣은 막걸리에다 산나물까지 술의 재료가 된다. 곰취 막걸리, 심지어 곤드레 막걸리까지 위풍당당 군집을 이룬다. 니가타의 에치고유자와란 지명은 술과 관계없으나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은 지명 자체가 술샘이다. 박물관에서 강원도 술의 종류와 제조과정을 텍스트로 보는 것도 좋지만 백독이 불여일음이다. 이 술 저 술 마셔볼 수 있어야 술의 고장이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영월의 산하와 어우러지는 대한민국 대표 전통주 테마파크! 들큼한 모의를 작당해 보자.     

 

망산 빙허루에서 내려다본 경치망산 빙허루에서 내려다본 경치


 술이 솟아난 주천면 망산의 정상 부근에는 빙허루가 있다. 해발 304미터의 야트막한 망산은 술샘의 술을 마신 다음날 아침이어도 등산이 가뿐하다. 주천면에는 빙허루와 청허루라는 두 누각이 주천강을 기준으로 쌍을 이루고 있었는데 청허루는 현재 젊은달와이파크 안에 복원되어 있다. 단원 김홍도가 올라 금강사군첩을 그렸다는 낭만의 공간은 다름 아닌 청허루인데 지금은 빙허루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 빙허루가 서 있는 곳이 원래 청허루가 있던 자리라는 것. 그러니까 김홍도는 바로 사진 속 빙허루의 위치에서 영월의 경치를 감탄해 마지않으며 그려나간 것이다. 갸웃스러운 게 있다. 빙허루(憑虛樓)는 '허공에 기댄 누각'이란 뜻인데 왜 청허루(淸虛樓)와 댓구를 이뤘을까. '맑은'하늘이 곧 허공이라서 그게 그거인지, 청허루는 빙허루에 비해 허공보다는 '맑은' 주천강 쪽에 가까워 위치를 차별화하려는 의도로 작명했는지는 당최 알 수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다리는 이쪽과 저쪽을 잇는다. 이승과 저승을 연결한다. 기지와 미지의 세계를 엮는다.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주천의 다리들은 절대적이지 않다. 장마철이 되면 쓸려내려가거나 장마철을 앞두고 해체돼야 하는 것은 매년 반복되는 운명이다. 현대의 모든 다리들은 영원을 담보하듯 굳건하게 놓여있다. 더 이상 이쪽의 나는 저쪽의 그가 궁금하지 않다. 다리 건너 피안은 하나하나 예측이 가능하다. 아래의 강물은 불가항력적인 장애물이 아니다. 콘크리트 기둥을 강바닥에 박아버리면 그만이니까. 

 섶다리는 다르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의 연결은 맺고 끊을 때가 있는 것이다. 하류로 굽이치는 강물은 이무기와도 같다. 내달리는 이무기의 힘과 기운을 주체할 수 없을 때는 그저 놔두는 것만이 방책이다. 승천하지 못한 탓을 우리에게 돌릴지도 모른다. 겨울잠을 앞두고서야 섶 이불을 덮어줄 수 있을 뿐이다. 


 주천엔 덧없는 다리가 있고 흐르는 술이 있다. 


 현대판 묵객들이여, 술샘의 다리 위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풍류를 논할 것인가. 


 여기는 강원도 영월 주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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