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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미학

마리엔 광장과의 재회

by Total Eclipse






뮌헨을 처음 찾는 여행자들에게 마리엔 광장(Marienplatz)은 도시 탐방의 시작점이다. 유럽 어느 도시의 광장보다도 강력한 흡인력으로 방문객들을 사각의 틀 안에 몰아넣는다. 광장의 품 속으로 이끌린 인파는 주위를 둘러보며 카메라로, 스마트폰으로 좀 더 나은 각도를 찾아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다. 맥주의 성지는 광장에서 도보로도 금세 갈 거리다. 그렇다면 해가 지기 전 마리엔 광장과 그 주변을 누비는 것이 먼저다. 한 발짝이라도 더 걸어야 맥주의 청량감이 상승할 테니까.

광장 안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은 짜릿하다. 32년 만에 다시 찾은 마리엔 광장인데 32년 전의 카타르시스가 그대로 재현됐다고 하면 과장일까. 한참 전에 고인 물이 되어버린 뮌헨의 관광 포인트라 식상함에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얕은 근심은, 회색의 신(新) 시청사를 마주하는 동시에 공기 중으로 증발되어 버렸다. 광장과 주변 건축에 대한 역사는 뒤로 미루더라도, 도대체 이 사각형 안에 들어오면 닥치는 신비감은 무엇 때문인지가 먼저다.

마리엔 광장


광장 문화의 산실인 유럽에서 밀집을 유도하는 요인들은 다채로울 것이다. 설계자들은 보행자의 동선을 포착해 하나의 공간으로 수렴하게 만든 뒤, 그 안에서 일정 시간 이상 머물 수 있도록 고심을 했음이 분명하다. 거칠 것 없이 뻥 뚫린 속 시원한 광장도 있겠지만 과하게 넓은 공간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광대함에 감탄을 했어도 잠깐 뿐이다. 막막하고 헛헛하다.

적당한 넓이의 광장에 포인트가 되는 건축물이 한 변에 자리하고 있다면 공간의 매력은 급상승한다. 주목할 만한 포인트는 조연이 되는 건물군과 조화를 이루며 광장을 감싼다. 그 안에서의 포근한 안정감은 방문자들의 연대감을 확장한다. 주연을 자청한 건물이 아름답기까지 하다면 더할 나위 없다. 마리엔 광장을 떠받치고 있는 뮌헨 시청사는 신 고딕 양식이 풍기는 음습한 세련미와 각 파사드에 따라 변주되는 회색 스펙트럼의 비장미가 목도자의 가슴에 날아와 꽂힌다. 광장에 들어서면 엄습하는 서늘함은 그 때문이 아닌가.

광장이 주는 신비감의 다른 원천은 느닷없음의 효과다. 절친들에 의해 눈가리개가 씌워져 방으로 들어간 생일의 당사자는 하나 둘 셋 이후 눈을 뜨고 확인한 파티의 현장에서 감동이 폭발한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음에도 서프라이즈란 항상 충격적인 법. 감탄을 예감하며 걸어간 끝에 시야에 터진 마리엔 광장의 모습은, 짐작을 했어도 감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골적인 광장의 노출을 막아주어야 하는 주연과 조연들의 앙상블이 필요하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의 그랑 플라스(Grand Place) 광장에서도 중심을 잡아주는 신 고딕 양식의 시청 건물과 둘레의 건물군이 조화롭다. 마리엔 광장이 주는 감성과 일맥상통한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1756973794719.jpg 벨기에 브뤼셀의 그랑 플라스 광장


마리엔 광장의 신 시청사는 약 600년 동안 사용되었던 구 시청사를 대신해 1908년에 건립되었다. 말이 신 청사지, 우리나라 도시의 틀에서 보면 한 세기도 전에 준공한 건물을 여태 신청사라고 부르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하긴 카렐 4세가 과밀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시가지 '노베 메스토(Nove Město)'를 조성한 게 14세기가 아닌가. 지금도 프라하 동쪽의 그 유서 깊은 구역을 사람들은 신시가지로 부르고 있으니, '동탄' 신시가지가 익숙한 우리의 귀는 함부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한다.

천막 너머로 보이는 구(舊) 시청사


광장 동쪽에는 동화 속에 나올 듯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 있다. 1300년 경에 지어져 신 시청사가 들어서기 전까지 기능했던 구 시청사다. 빨갛고 푸릇한 원뿔이 산뜻하게 하늘로 솟아있다. 뮌헨의 중심지로 드나드는 인구가 늘어나자 건물 1층을 관통하는 세 개의 터널을 뚫어 광장의 출입구로 삼았다. 짐작할 수 있듯 많은 유럽의 대도시에서 시청은 그 자체로 기념비적인 예술작품과도 같은데, 대를 잇는 뮌헨의 선배와 후배 시청사는 저마다의 개성으로 관광객들에게 멋을 발산하고 있다.


우연일까, 늘 그래왔던 공간인 것일까. 마리엔 광장을 찾은 두 번째의 경험에서도 시민들의 시위는 데자뷔처럼 반복되었다. 광화문 광장에 비할 바 안 되는 면적이지만 엄연히 이곳 마리엔 광장은 뮌헨시민들이 한데 모여 할 말을 하는 공간이었다. 모일 수 있는 인원은 얼마 되지 않더라도,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이방인들의 주목을 끌기엔 이만한 장소가 없는 셈이다. 놔두고 가벼워져야 할 공간인 광장은 때로는 뭉쳐서 관철해 내는 무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 키 만한 배낭을 메고 터덜거리며 들어섰던 32년 전의 마리엔 광장에선 노동자의 세상을 염원하는 시위가 있었고, 다시 찾은 광장에선 전쟁과 핵무장을 반대하는 반전 평화시위대의 행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저 녹아내리는 용도로만 광장을 쓰지 않는 뮌헨 시민들의 명철함. 알프스 이북 최고의 문화도시 수준은 이런 것이다.

1756970244718.jpg 1992년 마리엔 광장에서의 노동권 쟁취 시위
20240821_200558.jpg 2024년 마리엔 광장으로 진입하는 무장 반대 시위대의 행렬


이젠 정말 목이 마르다. 바싹 마른 식도를 생수로 달랠 수도 있지만 그럴 수는 없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은 필스너 우르켈의 목 넘김이 전설처럼 까마득하다. 그거 아시는가? 필스너를 창조한 도시는 뮌헨이었다는 걸.

환희의 연회장이자 선동의 산실이었던 역사의 현장으로 간다. 와인처럼 입 안에 머금고 풍미를 느낄 여유가 없다. 맥주라서 다행이다. 화끈하게 들이켜고 난 다음에야 뮌헨 맥주의 저력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서쪽 하늘은 완벽한 라거 맥주의 빛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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