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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bueong Oct 07. 2021

나의 옷장엔

철마다 찾아오는 기억들이 있다.


 나의 옷장엔 철마다 찾아오는 기억들이 있다.


짧고 작은 옷들은 짧지만 강렬했던 여름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길고 얇은 옷들은 은은하게 오래가는 봄가을에 스쳐  사랑의 기억들을 담고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길목인 지금, 두꺼운 모직코트들은 붙박이장에서 자신들의 계절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맥시멀 리스트’이자 디자인 따위는 쿨하게 신경 쓰지 않는 엄마가 내 방에 설치해 준 행거,


이 행거는 엄마의 유산을 고대로 물려받은 2대 ‘맥시멀 리스트’의 삶을 위태위태하게 견뎌내고 있다. 1인분이라고 하기엔 굉장히 다양하고 방대한 나의 옷들, 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나의 또 다른 이름만큼 그 가짓수도, 색깔도 다양하다.


 옷에 대한 나의 욕심은 사춘기가 찾아온 11살 가을부터 시작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그 순간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 당시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잘 기억해둔 엄마 덕에 잔소리를 통해 그 시절의 나를 조금이나마 상상해 볼 수 있다.

 

 20년 전의 나, 11살의 나는 학원 등록을 위해 상담을 가던 날, 엄마 화장품에 손을 댔다고 한다.  타인의 눈에 비친 본인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어른들을 따라 하고 싶었던 건지, 바르는 방법도 모른 채 꺼내 든 일본 브랜드의 파운데이션.


 솜털이 가득한 하얀 피부에 얹힌  23호 파운데이션은 나에게 너무 어두웠다. 무엇보다 브러시가 뭔지, 퍼프가 뭔지 몰랐던 나는 도구를 사용할 줄 모르는 원시의 인간처럼 어둠 속에서 급하게 베이지색의 줄을 얼굴에 죽죽 긋고 나타났다 한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수치스럽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지만 다행히 나는 그때의 나 자신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된 나의 질풍노도의 시기,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그들을 흉내 내는 데 열과 성의를 다하기 시작한다.


당시 유행하던 반짝이는 큐빅이 잔뜩 박힌, 양파망같이 촘촘한 구멍이 뚫린 짧은 소매가 달린 반소매 티를 입고 서울에 놀러 갔던 기억이 있다.


 경기도의  도시에 사는 나는 서울에 올라갈 때마다 빨간 버스를 탄다는 언니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곳엔 유행하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버거킹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구멍이 뻥뻥 뚫린 옷과 모자를 걸치고 나가 빨간 버스를 타고 로데오 거리에서 버거를  먹고 돌아온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이것 역시 데스노트에 휘갈겨 써놓고서 북북 찢어버리고 싶은 기억이지만 자기 방어 기제 덕인지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빨간 광역 버스는 2 전기버스가 되었다.

가운데 통로를 빼곡히 채워 급정거 때마다  사람의 발을 밟고서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던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모두가 앉은채 도로를 달린다.


잔여 좌석을 알리는 숫자를 옆에 달고 다니는 버스를 보고 있노라면 그래도  정도는 하나의 좋은 추억 거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새로운 패션들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롱 스웨이드 부츠,

부들부들한 갈색의 천 부츠는 나의 종아리에 딱 밀착되는 것이 멋스럽기도 하고 따뜻하기까지 해서 나의 겨울을 책임져 주었다. 문제는 내가 이 부츠를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는 커다란 가방과 구슬이 십만 개쯤 달린 염주 같은 목걸이와 함께 착용했다는 것이다.


오늘의 나는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때보다 열다섯 살이나 많은 이모가 되어버린 지금의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멋모르고  시간이나 걸려 압구정으로 연결되는 3호선 지하철을 기다리던  아이의 갈색  조끼에 손을 얹고 “ 목걸이와 가방은 제발 나에게 맡겨주지 않겠니?” 라고 말할 것이다.


유행은 돌고 돌아 스웨이드 부츠는 또다시 출현하기 시작했고 나는 신발장 정리를 할 때마다 지하철 대합실에 서 있는 추억 속 그 소녀를 만난다.



이제 나는 디테일이 많은 옷보다는 심플한 옷이, 부들부들한 것보다는 빳빳한 것이 나에게 잘 어울린다는 걸 안다. 그래서 이제 나의 행거엔 비슷한 옷들이 가득이다.


예전처럼 모든 걸 새 눈으로 바라보는 짜릿함은 줄었지만, 그래도 이 옷들이 이곳에 걸려있는 건 내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나름의 안목 덕이 아닐까.


새로운 계절이 오면 또 어떤 옷에 새로운 기억이 담길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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