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통함
요즘 제 마음속의 감정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무작정 감정을 돌아보기보다는 어떤 근거를 바탕으로 하나하나 점검해보고 있는데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단어들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섯 번째 시도인데 생각지 못한 것들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제가 느끼는 감정이 다를 때도 있었고요. 그 상황에 대해 제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와 함께 다른 사람이 겪은 상황에 대해 공감해 주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부족한 사람이었음을 알아가면서 매우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물론 요즘에는 상대방의 상황에 대해 귀 기울여 경청하면서 그 마음이 제 마음에 '복사, 붙여 넣기'하듯이 느껴지면서 같이 웃어주고 같이 울어주고 위로해 주는 것들이 조금씩 가능해지고 있어서 매우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런 일이 가능한 것도 어찌 보면 저의 노력과 능력 업그레이드라기보다는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함께 위로해 주고 손 잡아주는 아내와 살고 있다 보니 겸비하게 되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제 마음속 감정을 알아가다 보니 공감도 하게 되고 공감한 마음을 토대로 상대방을 위로해주다 보니 생각지 못한 오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위로해 주는 분과 사는 아내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네? 절대 아닙니다. 지금도 고치고 있느라 진땀 흘리고 있고요. 이런 정도의 사람이 된 것은 제 아내 덕분입니다."
라고 솔직하게 말하면서 저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하고 공은 아내가 받아야 함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그렇게 노력하는 일환으로 감정 단어를 가지고 저를 돌아봅니다.
이번 단어는 부정적인 감정중에서 분노와 관련된 단어입니다.
비통함
한문으로 번역하면
‘몹시 슬퍼서 마음이 아픈 상태’를 뜻하며, 한문으로는 悲痛이라고 씁니다.
비통(悲痛)은 깊은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는 말로, 단순한 슬픔을 넘어 마음속 깊이 아파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悲(슬플 비) → 슬픔, 애통함을 의미
痛(아플 통) →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의미
“비통에 빠지다” → 큰 슬픔에 잠기다.
영어로 번역하면,
Sorrowful pain → 슬픔과 고통이 함께 강조될 때
Deep grief → 장례식이나 큰 상실을 표현할 때 자주 쓰임
Heartfelt anguish →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고통
Profound sorrow → 격식 있는 문맥에서 쓰이는 표현
일본어로 번역하면,
기본적으로 **「悲痛(ひつう)」**라고 하며 한자도 동일하게 사용합니다.
悲痛(ひつう) → 깊은 슬픔과 고통을 뜻하는 말
悲しみの痛み(かなしみのいたみ) → 좀 더 설명적인 표현, “슬픔의 아픔”
深い悲しみ(ふかいかなしみ) → “깊은 슬픔”이라는 의미로 일상적으로 자주 쓰임
말레이시아어로 번역하면,
Kesedihan yang mendalam → 깊은 슬픔
Kesakitan hati → 마음의 아픔
Duka cita yang mendalam → 깊은 비애
Kesedihan yang amat perit → 매우 고통스러운 슬픔
일본어로 번역해 본 이유는 삼 남매가 기회가 된다면 아빠 엄마가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일본을 이제 함께 "제발 같이 가봐요!!!"라는 말이 생각나서 번역해 봤습니다. 비통함에 대해서 몇 개 나라의 언어로 간단히 번역해 본 단어들을 보고 있고 발음을 들어보면 신기하게도 '그 느낌'이 묻어나는 발음 같아서 오늘도 신기합니다.
언어는 문화를 반영한다고 배웠습니다. 또한, 문화를 반영하다 보면 단어, 발음, 성조들이 말하는 화자의 상태, 감정을 반영해서 만들어졌기에 상황에 따라 말을 하면 화자의 '감정'이 함께 전달된다고 느껴집니다. 저의 감정을 돌아보면서 참조하는 단어마다 그런 것들을 '진짜구나!'하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영어의 'angry'를 발음하거나 듣기만 해도 '화가 났나 보다!'라는 느낌이 들고요. 'smile'을 들으면 '뭔가 좋은 게 있나 보다!'라고 느껴집니다. 아무 나라 단어로 번역해서 하는 것은 아니고요. 아이들과 가 보고 싶은 나라 또는 제가 경험해 본 나라를 생각하면서 그 나라 언어로 번역해서 함께 알아보고 있습니다.
번역하기 이전에 한문에 기반한 단어이다 보니 한문의 뜻에서 느껴지는 것은 '정말! 너무! 슬퍼서 어찌할 바 모를 정도로 마음이 아픈 상태'로 느껴집니다. 주로 허망한 죽음이나 큰 슬픔을 당한 지인 또는 가족에게 '비통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도 생각났습니다.
비통함이 제게 주는 느낌은 '마음이 아픕니다.' ' 견디기 힘든 슬픔입니다.'정도가 아닙니다. 너무 속상하고 슬퍼서 눈물도 나오지 않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며 하늘을 보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는 정도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내키지 않고요. 그냥 손발이 정지된 상태로 가만히 앉아 있는 상태입니다.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만큼 그냥 멍하니 앉아 있으면서 '허망함' 또는 '너무 속상하고 슬픈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서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 감정을 언제 느꼈을까요?
의류회사를 다니다가 다른 회사로 옮겨서 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전 직장 직원과 대화하다가 해주는 말에 대답하려다가 아무 말도 못 했던 날입니다.
"그 소식 들었어요?"
"뭘요?"
"그 직원 자살했대요."
"......................................................"
"기억나죠? 그 직원?"
"......................................................."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 기억 속에는 디자인실에서 막내로 일하던 직원이었습니다. 인턴이라고 했지만 워낙 싹싹하며 털털하게 웃고 일도 잘해서 금방 정직원이 될 정도였습니다. 디자이너 선배들, MD들 앞에서 샘플을 입고 피팅 후 수정라인 표시하고 시침핀 꼽고 마무리하는 동안 얼굴이 발그스레 창피해하면서도 털털한 척 감당해 내는 직원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끔, 아주 가끔은 힘들다는 얘기를 했다고는 들었습니다. 디자이너들과 술을 자주 먹으면서 허물없이 대화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간간히 듣긴 했지만 퇴사 후 다른 회사로 가다 보니 더 이상 오고 가는 대화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일하면서도 '참 넉살 좋고 털털하게 일하는 직원이네. 피팅도 되니까 나중에 인정받는 좋은 디자이너가 되겠어. 잘 되면 좋겠다.'라고 마음으로 응원해 주고 머리에 기억해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은 소식'은 너무 허망하고 비통했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함께 일하고 먹고 웃고 지내던 직원이 어느 날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바로 그 '비통함'을 느꼈습니다.
결혼 후 아내의 외할머니를 뵙게 되었을 때입니다.
늘 혼자 지내시고 억척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늘 건강하게 지내시던 외할머니셨습니다. 아내와 결혼 후 한두 번 정도 만나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넘어지셔서 다치시고 병원에 한두 번 다니시더니 아예 병원에 계셔야 할 정도로 여러 가지로 편찮으신 상황이 갑자기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외할머니이기에 자주 뵐 수 없지만 병원에 계신 동안이라도 찾아뵙고 싶어서 가능하면 시간을 내서 찾아뵈곤 했습니다.
"할머니 나 왔어요." 아내가 외할머니에게 인사하고 들어서면 저도 따라 들어가면서 인사했습니다.
"아이고! 결혼식 때는 몰랐는데 조카사위가 쪼꼬맣네!!"
"아이 그. 할머니!!!" 아내가 제가 민망할까 봐 그런 말씀 더 안 하시도록 요청드려보지만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외할머니셨습니다. 병원에 한번 입원하시더니 툭툭 털고 일어나서 퇴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셨습니다. 폐에 물이 차서 호흡이 쉽지 않다고 하시더니 부러진 팔이 너무 아프다고도 하시고요. 어느 날인가는 팔이 너무 아프시다면서 병간호해 주시는 보호사분께 "제발 팔 좀 잘라달라고!!" 하셨다고까지 하신 말씀을 건네 듣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농담도 하시면서 '쪼꼬만 조카사위'라고 놀리시기도 하시더니 점점 더 말씀도 쉽게 못하시고 숨만 몰아치시는 것이었습니다.
몇 번 방문 후 어느 날인가는 외할머니를 뵙고 문득 '안아드리고 싶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방문하고 외할머니의 얘기를 한참 듣고 숨을 거칠게 쉬시는 상황에서 "사랑합니다. 얼른 일어나셔서 함께 해요!"라고 하면서 누워계신 분을 안아드렸습니다. 워낙 체구가 크신 분이긴 한데 힘은 하나도 없으셔서 안아 드리는데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던 날이었습니다.
그러고 난 후, 며칠 후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아내로부터 듣는 순간!!
멍하니 있었습니다. 마음은 '비통함'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뵌 적이 없습니다. 모두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아내의 외할머니를 뵙고 마치 내 할머니 같은 마음으로 늘 보고 싶어 하고 뵈면 인사하고 손 잡아드리고 그랬습니다. 그래서인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몸이 굳고 마음이 얼고 비통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채워지면서 그냥 멍하니 있었습니다. 마치 종잇장 같은 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바닥에 '휘리릭' 흘러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들이 모래 위에 흘러내려서 더 이상 주워 담지 못해서 그 허망함을 어찌할 수 없어서 그냥 멍하니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비통함'을 표현할 길도 없고 감당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가슴이 저리고 저려서 멍하니 있다가 혼자 있으니까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아내의 외할머니와 나눈 대화, '쪼꼬만 사위'라고 말씀하셨지만 온다고 남겨두신 도시락의 만두 두어 개도 기억나면서 다시는 못 만난다는 생각, 사랑으로 나눈 대화들이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이 너무 '비통'했던 날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울컥합니다.
우리가 힘들 때 도와주시던 분이 생각납니다.
아내가 아는 목사님 부부였습니다. 아내가 알던 분인데 결혼하고 저도 함께 만나면서 저의 부족함은 고치고 좋은 부분은 닮아가면서 새롭게 변화되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돈이 없어서 빚을 못 갚을 때 어떻게 해서든지 필요를 채워주셨고요. 우리 삼 남매가 쪼꼬만 아기, 아이들이었을 때 안아주시고 콧물 닦아주고 안아서 밥도 먹여주던 분이었습니다. 심지어 따뜻한 차를 끓여서 먹던 유리포트가 너무 좋다면서 삼 남매 끓여서 먹이라고 똑같은 것을 사서 보내주시기도 했고요. 생각지 못하게 아이들이 물놀이, 장난치다가 옷이 전부 젖어서 입을 옷이 없을 때 당신의 언더웨어를 잘 묶어서 우리 아가들 입고 가도록 해주기도 하셨고요. 힘들어서 힘들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우는 아내를 집으로 초대해서 위로해 주고 집밥과 반찬으로 먹이면서 위로해 주는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분들과 지내면서 아내는 마음과 물심양면으로 위로받고 공황장애, 고부갈등, 저와 소통불가, 삼 남매 양육에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면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모님께서 폐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1년여 투병을 하시다가 결국 하늘나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코로나가 심하던 시기라서 가족 1인외에는 면회도 쉽지 않았던 때이고 평상시 당신들이 힘들 때는 힘든 내색 않고 오직 돕고 위로하고 함께하는 것에만 최선을 다하시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런 분들 중에 사모님이 폐암에 걸리시고 제대로 병문안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많이 뵙지도 못하고 소천 소식도 건네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그냥 그 자리에 얼어붙었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냥 그냥 멍하니 있었습니다. '비통함' '비통함'이 딱 맞는 표현일 정도였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고 아파서 아무런 내색도 할 수 없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비통함에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장례식장을 다녀오고 나서 몇 년은 그 지역, 그 동네를 가지 못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7년이 지난 이제 조금 견딜만합니다. 이전에는 생각이 떠오르기만 하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 조건 없는 사랑, 진심의 사랑이 생각나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고요. 다시 볼 수 없고 보답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또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비통함'에 가슴이 먹먹하고 목구멍이 먼지로 막힌 것처럼 답답해졌었습니다. 그렇게 '비통함'을 느끼는 시간들이 생각납니다.
오늘은 부정적인 감정중 '비통함'에 대해서 뜻을 알아보고 제가 그 감정을 느낀 상황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상황에 맞게 제대로 느낀 것들이 맞는지도 확인해 보고요. 다양한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느끼는지도 돌아보고 있습니다. 이제야 감정에 충실하고 솔직한 감정 표현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감정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소중한 것 같습니다.
제 감정을 제대로 모른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려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 상황에 따라 느낀 제 감정들을 되돌아보다 보니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고, 공감하는 과정들이 건강하게 진행되어야 건강한 관계들을 이어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온화한 부모와 지내는 자녀들은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서로 돕고 공감하고 지내는 건강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을 혼내고 다그치고 때론 윽박지르면서 고치도록 몰아붙였던, 여전히 또 실수하는 아빠인 저는 너무나도 섬뜩한 느낌이 들어서 '더 많이, 더 빨리 고치자!!!' 다짐해 봤습니다.
감정 단어를 여러 나라 단어로 바꿔보고 있습니다.
삼 남매는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보고 싶어 합니다. 제가 많이 얘기해서인지 '산티아고 순례길' '일본 도쿄도 순회' '전 세계일주'를 꿈꾸고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전혀 여력이 되지 않다 보니 남들 쉽게 다녀온다는 도남아,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삼 남매를 생각하면서 그들이 다니고 싶은 나라, 제가 경험해 본 나라들과 관계된 언어들로 번역해 보면서 감정단어들을 찾아보는 중입니다. 언젠가 여력이 되거나 기회가 주어질 때 삼 남매들과 다른 나라사람들과 다양한 감정을 건강하게 나누면서 소통할 날을 꿈꿔보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 감정을 돌아보다 보니 이제야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아내와 대화하다 보니 "솔직한 내 마음이에요."라고 말하지만 아내는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아내가 생각하기에 'A'같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A'같은데 저는 'B'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진짜로 지금 저의 감정은 'B'라고 말해도 뭔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설마 했는데 상황에 따라 느끼는 감정,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많이 서툰 것이 저임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건강한 감정표현을 하면서 제대로 된 소통을 가족과 하는 아빠, 남편이 되길 소원하면서 다섯 번째 발행을 서둘러봅니다.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시니 제가 제 감정을 되돌아보면서 또 다른 시선으로 고치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관심 있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기온이 급강하면서 많이 추워졌습니다. 건강 잘 챙기셔서 원하시는 일들이 이루어지는 매일이 되세요.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사진: Unsplash의 Alina Degli
distancing에서 소개하는 감정단어 참조
코파일럿에서 '비통함'에 대한 단어 정의와 뜻을 참조(한문, 영어, 일본어, 말레이시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