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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교수님.. 이번에도.. 아빠

허전함을 달래주리.

지난 발행글에서 아이들과 민달팽이와 수박씨 키우기에 대해서 나눈 적이 있습니다.  


https://brunch.co.kr/@david2morrow/690


민달팽이 9마리가 떠나간 자리를 식용달팽이로만 채우기에는 적적했습니다. 

그 빈자리를 대신한 식용달팽이 3마리 외에 자라고 있는 식물들 근황입니다. 둘째 아이 생활숙제 해바라기와 방울토마토가 있고요. 장난으로 뱉어서 심은 수박씨가 있습니다. 



숙제인 해바라기는 이제 부쩍 자라서 부토니에 크기로 자랐고요. 이제 제대로 된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줘야 할 상황입니다. 또 다른 숙제 방울토마토는 골프장 익스트림 티만큼 컸고요. 점점 잎이 많아지고 색깔이 진해지면서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릴 상상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장난 삼아 시작한 수박씨는 갤럭시 S24만큼 자랐습니다. 수박은 요즘 거센 바람에 자꾸 힘없이 쓰러진다는 아이들의 말에 한솥도시락 대나무 젓가락들로 도움을 줬습니다. 수박줄기옆에 젓가락을 세웠고요. 당장 집에서 접할 수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 깜장 빨대를 손톱크기로 자른 후 배를 갈라 수박 줄기가 젓가락과 떨어지지 않도록 벨트처럼 채워줬습니다. 벨트를 수박은 거침없이 자라고 있습니다. 이제 길거리에서 보던 솜털 가득한 줄기가 본격적으로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더불어서 장난으로 참외씨를 모아 발아시도를 해 놨었습니다. 작은 접시에 휴지를 깔고 참외씨를 넣고 물을 부어놓았었습니다. 아이들은 또 웃으면서  "아빠 또 일 벌였다!"라고도 했고요. 민달팽이 9마리 허전함을 달래주려고 했습니다. 통상 2~3일이 지나면 발아가 시작되고 어떤 분들은 방치해 놨는데 콩나물처럼 싹이 나왔다고 하시기도 했습니다. 저희 참외씨들은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참외씨를 그냥 넣어서 그래요. 씻어서 해줘야죠!"


라는 말로 아내가 '툭' 건드려서 마음이 조금 상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빠!! 참외씨는 아직 소식이 없어요?"라면서 계속 궁금하다고 하고요. 제 글을 꾸준히 읽어주시고 관심 가져주시는 작가님은 "싹 나면 올려 주세요."라는 댓글도 올리셔서 은근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관심과 기대와는 달리 작은 그릇 위 휴지는 점점 노랗게 변해갔습니다. 부어놓은 물이 점점 걸쭉해지는 것 같고요. 휴지 테두리는 저의 마음이 타들어가듯이 점점 갈색으로 변해갔고요. 거의 실패가 확실했습니다.  



"이번 참외는 실패예요. 패기.. 패기 할게요."   

"남편, 그래요. 포기해요." 

"아빠... 참외씨들은 안 되는 거예요? 잉...."


그렇게 눈물을 머금고 참외씨들을 철수했습니다. 대단한 실험을 해오던 연구실 왕교수님이 그간의 연구과정을 과감히 접는 느낌이었습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폐기처리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습니다. 참외씨들이 발아되기를 기다리면서 아이들과 기대하면서 보낸 시간이 이번에도 재밌었습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못내 아쉬웠습니다. '수박씨처럼 또 발아해서 화분으로 옮겨심으면 좋았을 텐데....' 여운이 남았습니다.  



식용달팽이는 매일 쑥쑥 자라고 있습니다. 또, 둘째 딸이 달팽이 세 마리의 움직임을 관찰해서 이름을 지어서 사육통에 붙여놓았습니다. 그런 활동을 즐겨하는 둘째 딸이 기특합니다. 달팽이 크기가 이제는 어른 손가락크기만큼 컸으며 먹는 상추의 양이 상당합니다. 상추를 먹을 때마다 "빠각 빠각"소리를 낼 정도로 컸습니다. 더불어서 해바라기, 방울토마토, 수박씨가 아침에 본 것과 저녁에 본 것이 다를 정도로 자라는 것을 보면서 신기해서 다들 즐거워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에 계속 여운이 남았습니다. 

 


"오늘 저녁에 시원한 참외 한번 더 사 먹을까?"


"에잉... 아빠........"

"남편, 그만해요."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도 마트에서 아이들 간식을 사면서 싱싱해 보이는 노랑 참외 한 봉지를 샀습니다. 저녁을 먹고 테이블에서 간식과 함께 대화를 나눌 때 직접 참외를 손질해서 나눠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연히 참외씨는 분리해 놓았습니다. 재도전을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이번에는 참외씨를 하나하나 씻어서 준비했습니다. 저번에 사용한 작은 접시에 물에 적신 휴지를 깔고 참외씨를 조심스럽게 배치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현미경 같은 눈으로 매일 관찰을 하던 어느 날, 몇 개의 참외씨 귀퉁이가 살짝 열려있고 쌀눈같이 하얀 것이 혀를 내민 녀석들이 있었습니다.  "옳다구나!"라는 탄성을 지르고 얼른 옮겨 심었습니다. 혹여나 흙을 뚫고 못 나올까 봐 테이크아웃컵에 배양토를 절반만 채우고 참외씨들을 놓고 흙을 살짝 덮어줬습니다. 

 


매일 아침 아내와 제가 번갈아 물을 줄 때마다 흙 표면을 꼼꼼히 살폈습니다.  

드디어, 참외씨를 옮겨 심은 테이크아웃 컵에서 연두색 싹 1개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잠이 안 깬 채로 거실에 나와서 아침식사를 시작하려는 아이들에게 얼른 말했습니다.  


"참외씨... 싹.. 나왔다!!!"

"진... 짜에요?"

"진짜? 진짜네? 와아.. 아빠... 하하하"


잠이 덜 깬 아이들은 창가의 참외씨가 담긴 테이크아웃 컵을 바라보더니 탄성을 질렀습니다. 웃음도 함께.


"크크크... 참외가 나왔네요. 또 나왔네요."

"아빠. 우리 여름에 방울토마토, 수박, 참외 먹는 거예요?"

"응. 그럴 수도. 근데 크게 자라지는 못할 수도 있대. 일단 재밌겠지?" 


아이들은 잠이 확 달아나면서 흙속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속눈썹만 한 참외씨 싹을 보면서 흐뭇해했습니다. 참외씨 새싹을 보는 아이들은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 아기를 보듯이 신기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휴...." 

"싹이 났다. 다행이다." 


이제야 마음에 안도감이 들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어보았습니다. 드디어 참외씨도 싹이 나와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장난이었는데 장난이 아닌 게 되었습니다. 발아된 참외씨 나머지들도 싹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또 기대가 됩니다. 아이들과 별거 아닌 걸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매일 생명의 신비를 함께 경험하면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참외씨 싹 소식!! 궁금해하신 작가님~~ 싹이 나왔습니다. 점점 자라고 있습니다. 소식 전해요~~




집에서 먹은 과일의 씨앗을 심었더니 싹이 나고 점점 커가는 모습들이 아이들에게는 엄청 재밌는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보고 저녁에 깜깜해지기 전에 보면서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식물의 생장을 함께 지켜보면서 지냅니다. 참외씨도 결국에는 싹이 나왔고 이제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합니다. 아이들도 또 관심 가지고 지켜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연구실 왕교수님이 결국 연구원들과 결과를 만들어내듯이 참외씨 싹을 틔워냈습니다. 별거 아니지만 내심 뿌듯했습니다. 


"올여름에 수박, 방울토마토, 참외도 먹는 거예요? 우리?"  

막내딸이 즐거워하면서 진지하게 물어본 것이 제일 즐거웠습니다. 



물과 햇빛과 바람만 먹고 자라고 있는 식물과 달리 식용달팽이에게 매일 상추를 주다 보니 상추쌈 먹을 일이 없어도 마트에 가서 상추를 사 오기 시작했습니다. 먹이를 위해 상추를 기르고 있는 집들이 많다고 아내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상추도 심어볼까? 아예 식용달팽이 먹이로 쓰도록?"

"에이. 아빠. 그만해요. 자꾸 일이 커지잖아요!!"  


아이들은 "이제 그만이요."라고 합니다. 조금 상황을 지켜보다가 아내말을 들어볼까(?) 합니다. 식용달팽이용 상추를 아예 재배해서 먹이는 걸로 할까 싶습니다.

  


생활비 대비 버는 돈이 부족해서 매월 결제날을 깔딱 고개 넘듯이 지내다 보니 일 년이 십 년같이 느껴집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생각지 못한 민달팽이 한 마리로 시작된 식물, 생물과의 동거는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저희에겐 감사할 일입니다.   




원래 목요일 발행을 위해 준비해 둔 글이 있었습니다. '참외씨 싹 틔움'소식을 전하기 위해 순서를 바꿔봤습니다. 댓글로 작가님들과 소통하는 것이 참 귀하고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발행글 속의 다음 소식을 궁금해하시는 작가님들에게 '그 뒷이야기나 진행상황'을 전하는 것도 즐거운 소통이라서 발행글의 순서를 바꿔보았습니다. 


다음번에는 준비해 놓았던 글들로 찾아뵙겠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미리 감사드립니다. 

발행글의 다음 소식도 궁금해주신 작가님도 계속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사진: 사진: Unsplash의 Kaizen Nguyễ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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