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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춤 끝 광대착륙한 날.. 아빠

달팽이 후기

지난 발행글을 통해 '달팽이 이주 수락'에 따라 아빠의 자존감 뿜뿜 소식을 나누었습니다.

https://brunch.co.kr/@david2morrow/680


무심히 달팽이 한 마리를 데려온 둘째 딸의 행동에 호응해 줬다가 '일이 커졌다'로 마무리했고요. 더불어서 입주한 식용달팽이 3마리는 크니까 둘째 딸, 손톱크기 민달팽이 9마리는 막내딸이 관리하기로 했고요. 큰아들은 그저 바라보고 즐기기만 했었습니다.



그날부터 우리는 눈만 뜨면 거실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두 부류의 달팽이가 살고 있는 사육통을 바닥에 내려놓았기 때문입니다. 두 딸들은 실질관리자라서 툭하면 드러누워서 관찰했습니다.   


"아빠, 애들이 아직 자고 있어요!" - "아침 일찍이니까."

"아빠, 얘들이 똥을 너무 많이 싸요!" - " 잘 적응했나 보네"

"아빠, 얘네들이 전부 뚜껑에 올라가 있어요."  - "도망가려나?"


아이들이 사육통에 엎드리고 관찰하다 보면 한동안 질문과 답이 오고 갑니다. 우리 사이에 해보지 않았던 대화들 내용이 생긴 것입니다. 그 대화 끝에는 "사육통 청소했니?"로 귀결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관심을 받고 지내는 민달팽이 9마리, 식용달팽이 3마리가 잘 적응하고 있고 아이들은 매일 즐거워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내와 저도 덩달아 즐거웠습니다. 아이들은 자랑스러워하며 카톡 프로필에 달팽이 타임랩스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궁금해하며 묻기도 한다며 어깨를 으쓱하기도 하고요. 어떤 친구는 우리 아이들처럼 달팽이들을 집에서 기르겠다고 부모들을 졸랐다고도 하고요. 그렇게  달팽이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 아빠! 한 마리가 죽었나 봐요." - "설마"


아이가 가리킨 달팽이는 거무스름하며 처음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죽은 것은 아닙니다. 처음보다는 괜찮아졌는데 여전히 별로 좋진 않았습니다. 우리가 죽을뻔한 달팽이를 살려준 거라며 회복시켜 보자고 했었습니다. 매일 관찰하면서 똥 치워주고 상추, 당근 등등을 먹기 좋게 넣어주고요. 가끔 식용달팽이의 껍질 생장을 위해서 넣어준다는 분필도 넣어줬습니다. 그렇게 챙겨주면서 움직임이 좋지 않은 달팽이를 집중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관심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이 좋지 않으며 "죽은 거 아니에요?"라는 근심 섞인 질문을 받은 그 달팽이를 보고 있다가 달팽이와 관련해서 들은 말들이 생각났습니다.


"원래 밖에서 데려온 민달팽이들은 잘 죽는다고 그런데."
"아빠가 아는 작가님도 말씀하셨는데 잠깐 키우다가 다시 풀숲에 놓아주셨대."


생각났던 그런 말들을 아이들에게 해주면서 긴급제안을 해봤습니다.


"원래 자연에 살던 생물들이니까 이참에 다시 놓아주자. 그게 어떠니?"

"식용달팽이도요?"

"아니. 식용달팽이는 주먹만 해질 때까지 키운다고 하니까 잘 관리해서 키워보고."

"네. 그래요. 아빠."


아이들은 흔쾌히 답하더니 이내 '어떻게 풀어줄 것인지?'물어봤습니다. 저는 민달팽이 9마리만 커피컵에 넣어서 아파트 내 풀숲에 얼른 풀어주고 오라고 설명해 줬습니다.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것에 주저함 없이 동의한 아이들이 엄청 예뻐 보였습니다. 종종 느끼는 것이지만 아이들이 저보다 성품도 좋고요. 저보다 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천사들 같습니다. 제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저의 성숙을 위해서 붙여준 동행 같습니다. 



밥 먹기 직전이라서 얼른 근처에 풀어주고 들어오라고 말했습니다. 나가기 직전, 현관에서 둘째 딸이 아쉬운 듯 커피컵 속의 달팽이들을 폰사진으로 남기는 것을 보면서 그 모습도 귀여웠습니다. 그렇게 나간 아이들이 점점 깜깜해지는데 한참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했습니다.


"어디니? 너희들이 들어와야 밥을 먹지?"

"네... 네.... 들어갈게요."


아이들은 통화 후 한참이 더 지나서 들어왔습니다. 막내딸은 울상인 채로 언니를 따라서 들어왔습니다. 나가면서 아빠 슬리퍼를 신고 나가고 싶다고 망설이다가 허락했었습니다. 울상인 이유를 들어봤더니 엄마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뛰어오다가 아파트 입구에서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넘어져서 무릎이 아픈데 우연히 같은 반 남자애가 옆에서 웃고 있었답니다. 그런 상황 때문에 막내딸은 엄청 속상했다면서 울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딸을 아내가 달래주고 있는 사이 얼른 물어봤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니?"

"얘네 데려온 운동기구 있는 곳에 가서 풀어줬어요."  - 거기는 아파트에서 5~7분 거리 야외 운동기구 있는 풀숲과 담장이었습니다.

"아!! 그랬구나. 잘했네. 알았다. 밥 먹자."


밥 먹기 직전이라서 아파트 내 풀숲에 풀어주고 얼른 들어오라고 했는데 딸 둘은 부지런히 뛰어서 원래 채집했던 곳(달팽이가 살던 곳)에다가 풀어주고 온 것입니다. 아마 풀어주고 둘이서 담장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풀어준 민달팽이 9마리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다가 왔을 것입니다. 귀여운 아이들입니다.



애초에 자연에 있던 민달팽이들은 다시 자연에 가는 게 맞다고 밥 먹으면서 설명해 줬습니다. 혹여 컨디션 안 좋은 달팽이가 우리 손에 있다가 죽는 것보다는 다시 자연에서 잘 지내는 것이 최고라고도 했고요. 식용달팽이 3마리만 남아서 사육통이 한 개가 되니까 아이들은 약간 허전해했습니다. 그런 얼굴을 보고 저는 또 제안해 봤습니다.


"대신 참외를 키워볼까?"


아이들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습니다. 사실 거실에는 달팽이 영입즈음에 식물들도 키우기 시작했었습니다.  둘째 딸이 학교 관찰일지 숙제를 위해 해바라기씨, 방울토마토씨를 받아와서 이제 새싹이 몇 개씩 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들것은 모두 말라죽었는데 우리 집은 전부 싹이 났다며 둘째 딸이 학교에서 자랑 중이라고 했습니다. 또, 아이들과 수박을 먹다가 장난으로 먹다가 뱉은 수박씨를 심었습니다. 7개 정도 씻어서 심어놨는데 7개 모두 싹이 나더니 지금은 5cm 이상 자라고 있습니다. 해바라기, 방울토마토, 수박 새싹들을 볼 때마다 아이들이 말하길, 아빠의 장난이었는데 또 일이 커졌다면서 웃고 있습니다.


"진짜예요. 참외씨도 심으려고요?"


아이들 흥미를 끌어당긴 김에 또 실행했습니다. 저녁식사 후 참외를 깎아줬습니다. 참외 속을 분류해 놓고 막내딸을 불렀습니다. 스푼으로 씨만 분류해서 아빠가 준비해 놓은 아크릴통 젖은 휴지 위에 몇 개씩 놓아달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신중하게 스푼으로 떠서 정갈하게 배치해 놓았습니다. 아빠가 또 일 벌일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신나겠지? 달팽이 아홉 마리는 돌아갔지만 또 색다른 즐거움이 생길 거야!"

"아빠.. 또 일이 커지잖아요. 우리가 관리할 것이 또 많아지잖아요... 잉..."

"도와줄게. 또 기다려보자. 재밌을 거야."


그렇게 민달팽이 9마리 대신 이번에는 참외씨도 발아시켜 보기로 했습니다.  


"아빠 근처만 가면 자꾸 참외 달콤 냄새가 나요!!"

"엄마~ 아빠가 수박씨처럼 참외씨도 키워본대요~ 엄마!!....."

"또? 하하.. 재밌겠네. 한번 기다려보자."


그렇게 아내는 답을 해주고 은근 궁금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또 즐거워했습니다. 그렇게 자연에서 온 민달팽이 9마리는 잠시 요양을 마치고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이들의 허전한 마음은 참외씨로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달팽이 방생후기 -

이번 달팽이 사건이 재밌었던 이유는 '진짜 우리만의 집이라고 이사 온 곳에 가족 외에 생물, 식물과 첫 동거'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얼마동안 엄청 신나고 자랑꺼리삼았고요. 그런 경험의 시작점인 민달팽이 9마리가 돌아간 후, 아이들은 '벌써' 남아있는 식용 달팽이 관리가 귀찮다고 합니다. 아마도 자기들이 채집해 온 달팽이를 대할 때와는 다른 마음일 수도 있고요. 손톱만큼 작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요.  



아이숙제로 시작된 해바라기, 방울토마토가 새싹을 틔우고 떡잎이 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처음 가져온 종이화분에서 분갈이도 했습니다. 분갈이를 위해서 아내와 함께 화분과 흙을 사러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아내가 한마디 했습니다.


"내가 화분과 흙을 사러 다니는 날도 생기네요. 이런 걸 상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재밌네요." 라면서 웃었습니다. 아내는 개인적으로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내 말을 듣고 빙긋이 웃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어른이 될 때까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내왔습니다. 살아오면서 기회가 되지 않아서 해보지 못한 일들도 있고요. 신기한 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생각지 못한 일이나 하기 싫은 일들도 하게 됩니다. 저의 경우만 해도 결혼 전까지는 아기 똥 기저귀를 갈아줄 기회가 없었습니다. 삼 남매를 양육하면서  5년동안 기저귀를 엄청 갈아줬습니다. 남녀기저귀를 바꿔서 갈아준 적도 있고요. 지금은 잽싸게 기저귀를 갈아주고 교체한 기저귀는 내용물이 새지 않도록 똘똘 말아서 잘 버릴 수 있습니다.  또, 태어나서 한 번도 여자머리를 묶어준 적이 없었는데 두 딸이 있다 보니 이제는 포니테일정도는 눈 감고도 묶어주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덧붙여서:

해바라기가 새싹 두 개를 틔웠는데 새싹 하나가 잘 자라다가 갑자기 말라죽었습니다. 아이가 슬퍼할까 봐 어깨를 감싸주며 위로해 줬습니다. "그럴 수도 있단다."라고 했는데 아이의 대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제가 '너 미워'라고 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사랑한다고 하고 하나는 밉다고 했더니 하나는 죽었다는 것입니다. 수업시간에 들은 것을 실험해 봤다고 하는데 너무 극명하게 결과가 드러나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저는 얼른 사과의 말을 건넸습니다.

"그렇구나. 너희들도 사랑의 말만 듣고 자라야 하는데... 아빠가 가끔 혼내고 미운 말해서 미안.. 더 이쁜 말해줄게."라면서 아이를 안아 줬습니다. 아이에게 또 배웠습니다.



달팽이 한 마리가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버렸지만 그로 인해 느낀 게 정말 많았습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인 달팽이의 이름이 '달순'이입니다. 둘째 딸이 지어준 이름이고요. '달순'이를 통해 새로운 재미도 경험했고요. 자연과 함께 지내고 보호할 줄 아는 마음씨 이쁜 아이들과 살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이런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저를 이해해 주고 여전히 사랑해 주는 아내에게 다시한번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참! 달순(첫 달팽이) 고맙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Thomas Vo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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