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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춤 광대승천하던 날.. 아빠

달팽이

아이들과 지내면서 아빠어깨가 하늘높이 솟은 날을 나눠보려고 합니다. 오늘 글은 아이들과 반성보다는 아이들 덕분에 오랜만에 아빠가 으쓱했던 날입니다.

 


달팽이 집에 온 날

둘째 딸이 달팽이 한 마리를 손에 들고 집에 온 날입니다. 길거리 땡볕에 나와있다가 여차하면 밟혀 죽는게 안타까워서 데려왔다고 했습니다.



데려온 달팽이를 위해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분리배출대기 중인 플라스틱 케이스를 챙겨 와서 씻었고요. 냉장고의 상추, 양상추를 꺼내서 넣었습니다. 지퍼팩을 꺼내서 구멍을 숭숭 뚫고 케이스 위를 덮어서 임시거처를 만들었습니다.



둘째 딸은 '아빠가 또 뭘 만드나 보다'라면서 '달팽이를 키울 수 있겠다.'라는 기대감으로 옆에서 조용히 보고 있었습니다. 준비된 임시거처에 달팽이를 넣어줬습니다. 둘째 딸의 표정이 엄청 밝아졌습니다.

 


어스름한 저녁이 되자 달팽이는 양상추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덮어놓은 지퍼팩 위를 거꾸로 타고 올랐습니다. 먹은 만큼 배변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달팽이 배변시간을 관찰했습니다. 배변시간이 종료되고 나서 다시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타입랩스로 찍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습니다. 다음날 아침 달팽이 임시거처를 보고 모두들 놀랐습니다. 양상추를 갉아먹은 흔적이 선명하고요. 천정에는 똥을 몇 개 싸놓았고요. 달팽이는 양상추 속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식당과 화장실을 구분해서 사용한다며 모두들 웃었습니다. 적응이 완료되었다는 신호라면서 찍어둔 타임랩스를 보고 환호를 질렀습니다. 달팽이가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먹고 싸고 그런 스토리가 남아있었습니다.



집안에 가족 외에 생명체가 더해진 것이 둘째 딸은 아주 즐거워했습니다. 또 다른 생명체가 먼저 자리를 잡긴 했습니다. 학교에서 나눠준 씨앗인데 토마토, 해바라기입니다. 다른 친구들것은 모두 말라죽었다고 합니다. 새싹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제 제법 5cm 이상 커가면서 종이화분에서 제대로 된 화분으로 분갈이도 해줬습니다. 매일 관찰하고 일지를 작성하면서 은근 자랑스러워하던 둘째 딸은 달팽이까지 생겨서 아주 즐거워했습니다. 즐거운 마음에 즐거움을 더해줬습니다. 첫 수박을 먹다가 남은 수박씨를 심어줬더니 싹을 틔우고 자라기 시작합니다. 대파꽃을 꺾어서 버리지 않고 심었더니 만개하기 시작합니다.



더 즐거워할 줄 알았던 아이는 신경 쓸 일이 많아져서 힘들다면서 불평을 했습니다. 불평을 했지만 사실 본인소유의 생명체 - 토마토, 해바라기 새싹, 수박씨 새싹, 달팽이 한 마리 - 들의 매일매일을 관찰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로또 당첨?


달팽이 한 마리가 집에 온 후 며칠이 더 지났습니다. 달팽이는 순조롭게 지내고 있고요.


막내딸이 친구들 모두 학원 가서 놀 친구가 없다고 해서 동네 킥보드 타는 것을 동행해 주려고 단지를 걷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많이 본 아이가 보였습니다. 둘째 딸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친구 두 명이 씩씩하게 걷고 있었습니다. 은근 사춘기 같은 까칠함이 있어서 가슴옆에 손을 올리고 살짝 흔들어줬습니다. 막내딸은 '언니!!'하고 불렀고요.



거리가 가까워지자 둘째 딸 얼굴이 보였습니다. 양 볼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얼굴의 표정은 의기양양한 개선장군 같은 표정이었고요. 손에는 뭔가를 잔뜩 들고 있었습니다.


"아빠!!"

둘째 딸이 아빠라고 부르자마자, 옆에 두 친구들이 외쳐댑니다.


"얘!! 달팽이 많이 들고 있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저의 얼굴에는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달팽이 임시거처를 만들고 혼자는 외로울 테니 길 가다가 뜨거운 태양볕에 죽을 거 같은 달팽이들이 보이면 데려오라고 했었거든요. 둘째 딸은 애들과 놀다가 달팽이들을 네 마리나 채집해서 들고 오는 중이었던 것입니다. 딸 친구들은 엄청 신기해하면서 더 신나서 소리치고 있었고요. 딸은 땡볕에 채집하느라 얼굴이 벌겋게 익은 것이고요. 얼굴 표정이 그렇게 의기양양하고 만족해하는 것을 본 게 오랜만이었습니다. 개선장군의 표정과 똑같았습니다. 심지어 시험 1등이나 운동 우승도 아닙니다. 손톱보다 작은 달팽이를 또 네 마리나 채집했다고 뿌듯해하는 얼굴입니다. 저는 그런 딸의 모습이 매우 자랑스러웠습니다.



"응! 집에 가서 달팽이집에 넣어줘. 잘 청소해 놓고~~ 잘했다."

"응..."


그렇게 말해주고 막내딸과 다시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는 '의문의 1패'를 당했습니다. 사실 막내딸과 밖에 나온 이유는 달팽이 친구들 더 만들자고 나온 것입니다. 막내딸 친구들이 모두 학원을 가서 놀 친구가 없다 해서 같이 놀아주려고 목적을 만든 것입니다. 의기양양한 둘째 딸을 보자마자 막내딸은 '언니!!'하고 반겼다고 언니가 달팽이를 네 마리나 추가 채집한 것을 보면서 부러워하느라 정신없었습니다. 아무 달팽이나 잡아 오면서 괴롭힌 것은 아닙니다. 말라죽어가려는 달팽이, 길거리 운동기구 손잡이, 발판에 붙어 있어서 여차하면 밟혀서 죽을 수 있는 달팽이만 채집한 것이고요. 아이들이 길에 나온 달팽이들을 밟으면 '와그작'소리 난다고 수시로 밟고 다닌다고 해서 그러지 말도록 당부도 해줬습니다.



틈틈이 모아놓았더니 총 9마리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오며 가며 달팽이들을 들여다봅니다. 이름도 지어보라고 했더니 망설임 없이 슥슥 지었습니다. 먼저 온 것은 '달순' 그다음부터는 " 상추, 당근, 오이, 팽이, 배추, 김치, XX " 마지막은 아빠이름입니다. 일부러 부르면서 "XX야~ 잘 먹고 잘 자라. " 이렇게 대화합니다. 그런 것은 혼내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도록 놔둡니다.




일이 커지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아내가 한 말에 '어이쿠'했습니다. 달팽이들의 일상을 타임랩스로 찍어서 우리 가족방에 공유했습니다. 그걸 보고 아내가 직장에서 '아이들 달팽이 키우기'얘기를 했더니 어떤 분이 길거리 민달팽이는 금방 죽는다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집에서 키우다 보면 주먹만 하게 커지는 '식용달팽이'를 몇 마리 분양해 준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일이 커졌다.'



길에서 달팽이 한 마리 데려온 것을 기르도록 해줬다가 일이 커졌습니다. 그런 얘기를 듣고 아이들은 눈이 반짝거리면서 신나서 뛰고 난리였습니다. 아내가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일상을 말했다가 그렇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달팽이의 슬로 라이프를 타임랩스로 찍었더니 매우 빠르게 돌아다니고 먹고 싸고 자는 과정들이 1분 안에 요약되어 볼 수 있었습니다. 이걸 본 큰아들이 한마디 했습니다.


"달팽이도 '맘' 먹으면 빠르네요. "


물론 우스갯소리로 한 겁니다. 중학생 큰아들도 은근히 재밌어하고 관심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유머에 모두가 '빵'터지게 웃었습니다. 땡볕에 죽을 수도 있는 달팽이를 살린다며 데려온 한 마리가 급기야 9마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크다 보면 주먹만 해지는 식용달팽이 몇 마리까지 집에 키우게 되었습니다.

 


달팽이 임시거처를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줬더니 둘째 딸은 매일 꾸준하게 청소하고 상추 다시 넣어주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집에 가족 외에 매일 자라면서 변화를 느끼게 해 주는 생물, 식물들이 생기니까 아이들이 굉장히 보람 있어합니다. 수시로 들여다보느라 바쁘기도 하고요.  




달팽이 한 마리가 가져온 변화는 엄청납니다.



1. 광대승천한 아빠

달팽이 한 마리 가져온 딸에게 호응해 준 결과가 엄청납니다. 그 결과를 보면서 "버려라!"하지 않고 "집 만들어 줄까?"라고 아이 시선에서 함께 해준 제 모습을 생각하면서 혼자 흐뭇해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자존감도 엄청 올라갔고요. 오랜만에 어깨가 들썩이고 광대가 승천했습니다.



2. 뿌듯함에 더불어서 책임감까지 생긴 아이들

달팽이 한 마리가 죽지 않고 먹고 싸면서 잘 지내고 급기야 더 채집해 와서 이제 총 아홉 마리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먹고 싸고 모여서 자는 것들을 보면서 엄청 행복해합니다. 자기들이 청소하고 상추 갈아주고 관리해 주는 손길 덕분에 잘 생활하고 있다면서 뿌듯함이 점점 커져갑니다. 그 뿌듯함이 책임감을 만들어줘서 매일 관리를 잘해나가고 있고 생명을 더 존중하게 되었습니다.

 


3. 역할을 분담하며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아이들

달팽이 한 마리가 아홉 마리까지 되는 과정, 손톱만 한 달팽이 키우다가 주먹만 해지는 식용달팽이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손톱만 한 달팽이 아홉 마리는 막내딸이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주먹만 하게 커지는 식용달팽이 세 마리는 둘째 딸이 관리하기로 했고요. 큰아들도 달팽이집 청소에 역할을 분담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역할분담하고 감당하는 모습이 상당히 대견합니다.  



역할을 나누는 대화 중에 큰아들이 또 한마디 해서 다들 웃었습니다.  


"이거 잘 관리하면 다음은 강아지다."


엄마 아빠가 하지도 않은 말입니다. 첫째 아들은 마치 자기가 '동기부여 코치'가 된 것처럼 두 딸들에게 그렇게 말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 모습에 우리는 또 '빵'터졌습니다.  


달팽이 한 마리가 집에 들어와서 진짜 '나비효과'를 일으켰습니다. 이런 일상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덧붙여서:

'클립하나로 집사기'같은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를 본 적이 있습니다. 달팽이 한 마리 들고 왔다가 일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과 클립 하나 들고 어디까지 물건을 바꿀 수 있을지 영상과 글로 남기면서 프로젝트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너무 커서 '말도 안 돼요. 하기 싫어요.'라는 말을 하기 전에 호기심을 해결하는 프로젝트로 말입니다. 아이들과 여전히 하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혹여 징그러워하시는 분들이 있으실까 봐~ 대문사진은 달팽이를 느낄 수 있는 사진으로 붙여봅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 사진: Unsplash의 bobota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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