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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Nov 05. 2020

"여보게나, 출세하지 못해도 묵 값은 내가 낼 게"


그해 그 묵집에서 그 귀여운 여학생이

묵 그릇에 툭 떨어진 느티나무 잎새들을

얌얌얌 씹어보는 양 시늉 짓다 말을 했네


저 만약 출세를 해 제 손으로 돈을 벌면

선생님 팔짱을 끼고 경포대를 한 바퀴 돈 뒤

겸상해 마주 보면서 묵을 먹을 거에요


내 겨우 입을 벌려 아내에게 허락받고

팔짱 낄 만한 준비 다 갖춘 지 오래인데

그녀는 졸업을 한 뒤 소식을 뚝, 끊고 있네


도대체 그 출세란 게 무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 출세를 아직도 못했나보네.

공연히 가슴이 아프네, 부디 빨리 출세하게


그런데 여보게나,

경포대를 도는 일에 왜 하필 그 일에 그 어려운 출세를 꼭 해야 하나,

출세를 못해도 돌자, 묵 값은 내가 낼게


「묵 값은 내가 낼게」 이종문




수험생 시절, 현장 강의에 참여하고 싶었던 나는 

모든 짐을 싸서 노량진으로 가야 할지 고민했었다.

참 운이 좋게도 내가 사는 지역 중심부에 

새로운 임용 학원이 생겨

유명한 팀의 임용 강의를 직강으로 들을 수 있었다.

여자 선생님의 강의는 실시간 라이브를 통한 방송이었고

나머지 두 분의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지방으로 내려와 직강을 하셨다.


그중 한 분은 20년간 일반 영어 임용 강의를 하셨는데

몇 년 전부터 몸이 계속 아프셨다.

몇 번의 수술과 장기 휴강을 반복하셨으나 

늘 강단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매번 서울과 지방으로 두 번 강의를 하는 일이 

보통 쉬운 일은 아니고

큰 병의 후유증으로 인해 매번 뵐 때마다

 아픈 기색이 역력하셨다.

몇 번 강의를 하지 못해 휴강하신 적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최선을 다해 문제를 만드시고 

강의에 집중하신 것을 보니

마른 얼굴로 수업에 참여하는 예비 선생님들을 

매우 대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께 질문을 하러 갈 때면 

최대한 혼자 생각해 볼 만큼 생각해 본 후 뵈었다.

그럴 때마다 열심히 한다는 응원도 늘 덧붙여주셨다.


12월, 임용시험이 있는 날이면

늘 근처 학교로 가서 얼굴도 모르는 영어과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하고 오셨다고 한다.


그런 선생님께 좋은 소식이 있으면 

꼭 연락을 드리고 싶었는데

이젠 아무런 소식을 전할 수가 없다.


병이 악화된 올해, 코로나로 인해 비행이 불안했던 올해.

본인의 마지막을 직감하셨던지

산소호흡기에 보조하여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가셨고

보고 싶은 아들의 얼굴을 

눈에 담고서야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이 선생님을 아는 수험생들만 해도 수천 명인데,

본인보다 본인을 걱정할 수험생들에게 

마지막까지 배려하여 제자들 중 아무에게도

본인이 미국으로 간다는 소식을 전하지 않으셨다.


타계 소식을 몇 달이 지나서야 

아직 공부하고 있는 후배에게 들었다.


나는 선생님에게 특별히 기억나는 학생은 아니다.

그저 지방에 있는 수험생이라 지나가다 보면 얼굴을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존재 중 하나였다.

선생님의 타계 소식을 들으며 

안부를 전하지 못한

나의 스승들을 떠올린다.


「묵 값은 내가 낼게」를 쓴 이종문 시인은 

한문교육과 교수님이다.

내가 친하게 지냈던 영어교육과 교수님께서 

사범대 교수님들과 세미나를 다녀오신 길에 

한껏 무르익은 분위기에서 이종문 교수님이 

한 소절 본인의 시를 읊어주셨는데

그 심정에 깊게 동감하여 본인 블로그에 올려주신 글이 윗글이다.


출세하지 못해도,

선생님들껜 연락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들과 내가 함께한 일련의 과정과 목표가 

결실을 맺었을 때의 기쁨을,

나의 선물이지만 당신에게도 선물하고 싶은 철없는 마음이다.


출세하지 못해도,

커피를 준다는 교수님께 여전히 

안부 인사 하나 못 드리고 있다.

아직은 그냥 하고 싶지 않다.

출세와는 상관없이 

그 긴 시간 동안의 부재가 괜히 죄송하다.

아직은 그 그리움의 정도가 모지란듯하여 

당분간은 용기 내지 않을 것이다.

커피를 들고 설레는 발걸음으로 갈 수 있을 때까지

그 시간이 무르익을 때까지.




중학교 졸업식 날, 담임선생님께서 칠판에 적으신 메시지이다.

  

아무도 없는 졸업식 날 아침

햇살이 드리운 교실 속 빈 칠판에 서서

어떤 메모를 남길지 고민하셨을 선생님을 상상해본다.


앞으로 너희의 미래에서 넘겨야 할 산이 많다는 사실을 

공연히 슬프지만 담담히 위로하는 메시지를

글로 남기셨을 것이다.


중학생인 나는 선생님이 분필로 눌러쓴 메시지의 무게를 이해하지 못했다. 

저 말을 실현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그 어려움에 허덕일 제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응원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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