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빨간우산 Dec 23. 2023

킬러라는 직업에 관하여

데이비드 핀처, <더 킬러>

거장은 거장이다. 별 다른 사건과 갈등 없이도 2시간을 이토록이나 긴장감 있게 꽉 채워, 보는 이를 집중시킨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전문 킬러가 복수를 한다는 내용이다. 그동안 다루어 왔던 수많은 킬러들에 비해 특별히 다를 바도 없다. 색다른 기술도, 특이한 성격도, 남다른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왜 킬러를 하게 되었는지, 킬러라는 직업에 대해 어떤 죄책감과 내적 갈등을 가지는지, 주변 인간관계를 통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그런 이야기는 없다. 오히려 최소한의 설명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킬러는 다른 영화 속 킬러들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직업인으로서의 킬러의 면모다. 그러니까 그에게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저 직무를 수행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의 살인 행위는 직장인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보고서를 발표하거나 서류를 복사하는 행위와도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비춰진다. 다만 약간의 긴장감과 집중력이 더 요청될 뿐. 그는 건조하고 사무적인 태도로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깔끔하게, 무난하게 소화해 낸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 그것이 그가 킬러를 하는 유일한 이유다.



다른 영화에서 킬러는 사람을 죽인다는 행위에 따른 인간적 갈등과 내적 고뇌를 주로 다뤄왔다. 따라서 킬러로서의 면모보다는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면모가 더 부각된다. (대표적으로 <레옹>이 있다.) 거꾸로 킬러가 주인공이 아닌 경우에는 그저 사건을 해결하는 보조적인 장치나 액션을 위해 등장하는 격투 상대로서만 기능한다. (수많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킬러 조연들이 그렇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인공 킬러(마이클 패스밴더 役)는 그저 한 명의 '직업인'이다. 그는 조금 위험하고 긴장된 일을 하지만 그가 일을 대하는 태도와 행동양식을 보면 일 잘하는 일반 직장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효율적이고 대범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 냉정함으로 일을 잘 수행해 낸다. 어쩌면 이 영화의 제목이 '직장인'이었어도 크게 달라지는  없을 것이다. 배경과 하는 일의 종류만 달라겠지.


영화 속 킬러는 단 한 번의 실수를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자신의 직무 기술을 발휘한다. 이때 그의 행위는 인간적인 복수라기보다는, 그저 자신이 해야 할 바를 하는 소시민의 단조로운 업무 행위에 가깝다. 어쩌면 해고를 당한 사람이 직업 양성소를 찾아가거나 실업 수당을 받기 위해 서류를 준비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 영화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서늘하다. 차갑고 무겁고 건조하다. 영화 속 킬러는 킬러라기보다는 하나의 기계에 가깝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을 빗대서 말하는 살인기계 같은 것이 아닌 그저 내 앞에 주어진 일을 기계적으로 한다는 의미에서의 기계. 그 일을 함에 있어 그는 일의 목적이나 가치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유일한 일의 의미는 그저 생존과 안전일 뿐. 왠지 공무원의 마인드에 가깝지 않은가.



영화 속에서 킬러의 대사는 거의 없다. 다만 내레이션으로 그의 직업에 대한 노하우가 읊조려진다. '읊조려진다'라고 표현한 것은 그가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의미에서이다. 그렇다고 '독백'이라고 하기에도 그는 무언가를 고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이지 별 것 아닌 얘기를 혼자 중얼대듯 '읊조리는' 것이다.


의문스러운 것은 영화 속 내레이션에 등장하는 말 중 '운명'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하며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인생의 길이 여러 갈래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온 길은 그저 살아온 그대로의 한 가지 길 밖에 없다는 것. 그것을 굳이 '운명'이라 일컫는 것은 과대포장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 앞에 주어진 일에 그저 최선을 다할 밖에' 뭐 그런 자조와 같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사람은 '사는 대로 살게 된다'는 그런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그 의미가 이 영화의 이야기와 무슨 관계인지는 알 수가 없다. 킬러가 사람을 죽이는 일과 직장인이 복사하는 일에는 차이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인지. 현대사회가 그렇게 목적과 가치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빗대서 말하려 하는 것인지.. 그리고 소수와 다수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 킬러는 소수로 살고자 하지만 결국 다수의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하며 영화가 종료되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미궁이다. 이 역시 목적과 가치를 잃고 직장을 다니는 현대인을 빗대는 말로 짐작된다.


원작이 있으니, 원작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과 관련이 있을 테지만 한 두 번은 더 봐야 파악이 될 수 있으려나 싶다. 그렇다고 몇몇 대사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한 번 더 보는 수고를 하고 싶지는 않다만.



어쨌든 이 영화는 그 만듦새에서 거장의 꼼꼼함과 숙련된 능숙함을 느낄 수 있다. 별 것 아닌 소재로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영화의 긴장을 유지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 도전적이면서 독특한 영상 화법과 이야기 전개가 그 단조로움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꽉 차 있다는 느낌이다. 영화가 끝나면 영화 속 킬러와 우리 소시민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들이 지향하는 삶이 저런 게 아닌지, 혹은 우리는 아무것도 지향하지 않으므로 렇게 살게 되는 건 아닌지,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역시나 좋은 영화는, 끝나고 난 후에 비로소 질문이 시작되는,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원작: 알렉시스 놀렌트

연출: 데이비드 핀처

각본: 앤드류 케빈 워커

출연: 마이클 패스밴더 외

매거진의 이전글 애매모호하고 엉거주춤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