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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받아허리치기처럼

머리치기가 답이 아닐지도 몰라...

by radioholic Feb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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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를 설명하다 보면 참 단순한 운동이란 생각이 든다. 죽도로 상대방의 머리, 손목, 허리 중 한 부위를 타격하면 점수가 되기 때문이다.(물론 목찌름도 있지만 이건 많은 수련을 거친 후에 사용할 수 있는 위험한 기술이니 예외로 하자) 어찌 보면 가위바위보와 같은 승부인 셈이다. 다만, 나와 같이 죽도를 들고 나를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대를 타격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수련이 필요하다. 상대방보다 강력한 기세와 섬세한 기술을 갖춰야 이길 수 있는, 참 어렵고 난해한 운동이기도 하다.


흔히 검도의 꽃을 머리치기로 꼽는다. 내 죽도로 상대방 죽도의 중심을 무너뜨리고 무방비 상태로 만든 뒤, 호쾌하게 상대의 머리를 치는 장면을 보면 팔에 소름이 살짝 돋을 정도의 전율이 느껴지곤 한다. 나 역시도 한창 체력이 좋던 대학 시절, 수련시간 내내 머리치기만 연습했던 적이 있다. 물론 몸의 중심도 엉망이고 타격도 엉성했지만, 그렇게 수십 번을 머리치기로 달려들다가 한 번이라도 선배의 머리를 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손목치기나 허리치기는 그저 머리치기를 할 줄 모르는 녀석들의 잔재주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https://youtu.be/P_VqrXvZlAg?si=lTdmgY9zI3-TjBJV

난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검도 선수들의 머리치기는 늘 짜릿하다(출처 : 유튜브 '검도라이프')


하지만 난 시합에 나가서 번번이 손목이나 허리치기를 맞고 지기 일쑤였다. 머리 치는 연습을 많이 해서였는지 머리치기 싸움은 나름 자신이 있었지만, 나보다 중심을 낮추고 빠르게 파고 들어와 손목이나 허리를 치는 사람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특히 날 멘붕에 빠뜨렸던 건, 내가 기회라고 생각하고 날린 회심의 머리치기를 죽도로 받아서 허리를 치는 기술을 당할 때였다. 소위 '받아허리치기'라는 그 기술을 당하고 나면 머리 치는 게 무서워지고, 결국 밑천이 떨어져 쓸 수 있는 기술이 없는 난 바보처럼 어버버대다가 하릴없이 지고 나오곤 했다.


https://youtu.be/IOq5YhCkHAY?si=BnZHeLWfGWI_V41Y

머리치기를 무력화시키는 받아허리치기(출처 : 유튜브 'Be Strong')


받아허리치기는 참 어려운 기술이다. 상대방이 날 공격하려 나오는 움직임을 포착한 뒤 상대가 머리를 치는 순간 그 죽도를 받아내는 탄성으로 허리를 치는, 섬세한 눈과 빠른 동작이 필요한 고급 테크닉이기 때문이다. 한 때 머리치기만이 검도라고 생각했던 나는, 4단 승단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허리치기 연습을 마음먹고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술 연습의 영역을 넓히고 나니, 대련을 하거나 시합에 나가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그전까지 그렇게 잘 치지도 않는 단순한 머리치기 하나 가지고 무슨 재미로 수련을 했던 것일까.




언제부턴가 사회생활을 할 때의 내 모습은 늘 머리치기와 같았다. 누군가가 나를 자극해 오거나 도발을 하면 일단 직선으로 쏘아붙이고는, 상대가 움츠러들면 내심 안도하는 다소 모가 난 사람. 어떤 이들은 그런 나를 보며 시원하다고, 할 말 다하는 모습이 부럽다고도 했지만 그런 말들의 대부분이 그저 입에 발린 소리라는 것을 그땐 몰랐다. 그렇게 점점 주변에 적이 많아지는 나를 보며, 나에게 좋은 말을 했던 사람들이 슬슬 거리를 두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정공법이란 게 늘 현명한 것이 아니란 것을.


생각해 보면 어디에서나 인정받는 사람은 검도로 치면 머리치기가 아닌, 받아허리치기를 잘하는 타입임을 느낀다. 누군가와 대립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처음부터 강한 기세를 보이며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느슨한 자세로 상대를 지켜보며 자기 페이스로 끌어들인 뒤 결정적인 순간에 한방을 보여주는 그런 이가 진정 무서운 사람이란 걸 말이다. 이런 사람들을 우습게 봤다간 언젠가는 큰코다친다는 것을, 난 참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깨달은 것 같다.


검도를 나름 오래 했다고 생각해 왔으면서, 이제서야 이런 반성을 하다니 나의 수련은 아직도 갈 길이 참 멀다. 누군가와 대립하고 싸우고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 얼마나 지치고 나를 갉아먹는지 알기에, 요즘은 설령 갈등의 여지가 있는 일은 가급적 멀리 하며 산다. 그런 에너지를 좀 더 긍정적이고 즐거운 일에 쓰기도 모자란 게 인생이니까. 이젠 그 멋있는 머리치기는 가급적 아끼고, 대신 상대의 힘과 움직임을 이용하는 받아허리치기나 누름손목과 같은 기술도 공부하며 살아야겠다. 검도에서도, 일상생활에서도.


근데... 그래도 난 머리치기가 좋아요ㅠ근데... 그래도 난 머리치기가 좋아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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