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터(by 신형원)

인간이어서 미안합니다...

by radioholic Mar 27. 2025
아래로
저 산맥은 말도 없이 5천 년을 살았네
모진 바람을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
저 강물은 말도 없이 5천 년을 흘렀네
온갖 슬픔을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왔네           
(신형원, '터' 中)


대학 시절, 예비역 복학생들끼리 모이면 군대 얘기는 절대 빠질 수 없는 대화 주제였다. 저마다 자기가 더 고된 군생활을 했음을 주장하는 고생올림픽이 벌어지고, 그렇게 투닥대다가 결국 별 의미 없이 마무리되는 참 보잘것없는 대화들이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이 실없는 대화를 말없이 지켜보던 선배 형이 넌지시 했던 말이 있다.


니들은 비화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지?


산불진화요원 출신이었던 그 형의 말에 우린 늘 저 형 또 저런다고 웃으며 넘겼지만, 형은 군복무 시절 마주했던 산불이 정말 무서웠다고 말을 했다. 형이 얘기했던 저 비화라는 것, 즉 불꽃이 바람에 날아가는 장면이 정말 공포스러웠다고. 그 형의 말이 사뭇 진지했기에 난 아직도 저 '비화'란 단어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불꽃들이 날리며 일으켜버린 엄청난 규모의 산불을 목도하며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중이다.


작은 불꽃이 이토록 엄청난 참사를 만들어내고 있다...(출처 : 서울경제)

자연 앞에선 한없이 작은 존재가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온갖 과학 기술이 발전했다는 지금도 자연재해에는 정말 이토록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새삼 절망감마저 느껴진다. 세상엔 물이 참 많은데, 그 남는 물을 모아서 저쪽으로 옮길 수 있는 방법이 없다니... 평소에 내리는 빗물을 속 어딘가에 저장해 놓았다가 이럴 때 확 터뜨려서 뿌려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주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이번 산불을 바라보는 마음이 너무나 참담하다. 물론 그 불로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마음에 비할바는 아니겠지만...




신형원의 '터' 속 가사처럼  없이 묵묵히 5천 년을 살아왔다는 산맥 속의 산들이 산불로 인해 까맣게 타버려 잔해 남은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재가 되어버린 것만 같다. 나무들은 물론이거니와 저 산속에 살던 짐승들과, 땅 속에 살던 곤충들은 어떤 고통 속에 죽어갔을지 생각하면, 이런 불을 일으킨 인간들은 자연으로부터 계속해서 벌을 받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뭔데 수천 년 동안 무사히 살아 숨 쉬던 이 터를 이렇게 파괴해버리고 있는 것인가.


어젯밤 라디오를 듣다가 흘러나온 이 노래를 듣고, 인간이어서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모진 바람과 온갖 슬픔을 다 이기고 이 터를 지켜온 존재들이, 그저 한 줌밖에 안 되는 인간이란 종족들 때문에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이토록 맑 가사와 밝은 목소리로 노래해야 할 '터'는 지금도 고통받고 황폐해져 가고 있다. 그래서 난 이 오래된 노래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불려지고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발 디디고 살고 있는 이 땅과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되새길 수 있도록.


그리고... 이번 산불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https://youtu.be/sYKZiJezv3A?si=KEfQtKOtdAUNi2gB

참 소중하고 아픈 노래다...


매거진의 이전글 들꽃(by 김필선)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