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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dioholic Jun 06. 2024

그냥 한다는 것의 미학

재능이 없는 걸 알고도 무언가를 계속한다는 것


검도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내가 취미로 검도를 한다고 하면 듣게 되는 가장 당혹스러운 질문이다. 검도를 1999년에 시작했으니 햇수로 무려 26년째다. 나와 함께 시작한 사람들 중에는 검도장을 차려 운영하시는 분도 있고, 6단을 따고 고수의 반열에 들어간 이도 있다. 하지만 난 여전히 4단에 그닥 실력도 많이 늘지 못한 걸 알기에, 소위 '검력' 이란걸 어디서 얘기하는 게 몹시 민망하다. 취업 준비와 회사 생활을 핑계로 중간에 운동을 많이 쉬기도 했고, 운동을 하는 기간에도 그리 열정적으로 수련에 임한 편도 아니기 때문이다.


검도를 하면서 스스로 느낀 건, 난 정말 누군가와 싸우는 것에 재능이 없다는 점이다. 상대방과 죽도를 맞대면 일단 상대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전략을 짜며 대련을 해야 하는데, 난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오직 내가 할 줄 아는 것만 하려고 푸닥거리다 혼자 지쳐 나오곤 한다. 공세도 넣어보고, 상대방 죽도를 흔들기도 하면서 서로 주고받는 검도가 되어야 하는데 나의 검도는 늘 일방적이다. 기술 습득도 느린 편이고 몸이 재빠르지도 않으니 가끔씩 답답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계속하면 실력이 줄진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죽도를 놓지 않고 있다.


늘 잡는 죽도인데 왜 마음대로 되지 않을까...


곧 있으면 사회인 대회가 있어 도장 사람들과 주말마다 모여서 단체연습을 한다. 명색이 시합 연습인 만큼 평소와는 다르게 스스로 운동량도 늘리고 사뭇 진지하게 대련에 임하지만, 그럴수록 난 왜 이리 발전이 없을까 하는 마음에 마음이 답답해져 시무룩해하는 중이다. 지금 내가 하는 운동 방식의 문제일까, 아니면 애초에 나에겐 운동 재능 따윈 없는 것일까.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운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스스로 흐뭇해할 만한 모습이 나오질 않으니 영 힘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난 내일 새벽에도 도장 문을 열고 운동을 하겠지. 없어진 아침잠을 핑계로 새벽 검도를 시작한 게 어느덧 3년이 넘었다.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비록 영민한 재능은 없지만, 검도 덕분에 무언가를 할 때 무던히 버티는 것을 잘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아주 느린 걸음으로 가다 보면 생각보다 꽤 멀리 갈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나처럼 기합을 넣고 죽도를 휘두르며 중년의 우울과 혼란을 떨치는 유쾌한 동년배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말이다. 비록 재능이나 타고난 게 없더라도, 그냥 하다 보면 얻는 게 많다는 것을 검도라는 운동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이번 주말 시합을 위해 운동 강도를 높이고 헐떡이며 힘들어했지만, 오래간만에 대학 동아리 시절 시합 준비하던 기분이 느껴져 좋았다. 그때만큼의 체력도, 몸놀림도, 우릴 혼내며 훈련시켰던 선배들도 없지만, 아주 깊숙이 숨어있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한 줌의 열정을 끄집어낸 것 같아 뿌듯했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 다치지 말고 도장 아재들과 함께 한판 잘 뛰고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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