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가을이다.

감이 익어가는 가을이다.



올해는 감나무에 감들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렸다.

옆집 감나무가 담 아래로 뿌리를 뻗어 우리 집에 새로 자라는 애기 감나무.

큼직하고 맛있는 감이 달렸던 이 감나무가 이번에는 포도송이처럼 작은 감들을 잔뜩 달고 있다.

아직 애기 나무라 가지도 얇고 약한데 그 가지 끝에 오골 오골 모여 자라는 감들을 볼때마다 마치 빼빼 마른 어린 엄마가 많은 아이들을 끌어 안고 있는 것처럼 보여 마음이 아렸다.

몇 번을 지지대를 세워 봤지만 밤사이 부는 바람에 번번이 지지목이 바닥에 누워 버린다.


아침 햇살 찬란했던 일요일.

며칠 남지 않은 레몬을 따러 마당에 나갔다가 점점 감들의 무게 때문에 휘어져 버리는 감나무 가지들이 짠해 보여서 한국에서 이사 올 때 싸왔다가 마당 구석에 세워뒀던 빨래 건조대를 나무 아래 펼쳐서 가지들을 받쳐 놓았다.

아니 건조대 위에 가지들을 널어놓았다는 말이 더 맞겠다.


휘어져 버린 가지는 쳐버리면 되고 포도송이처럼 달린 감들도  솎아 버리고 말면 되는 것인데.

너무 많은 감들이 달려 감 알도 작아지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왜 나는 쳐버리지도 속아버리지도 못하고 휘어가는 가지를 보며 안타까워하고 앗는 것일까.


다른 해에는 동네 다람쥐들이 부지런히 감을 따가면서 적절히 감을 솎아 놨는데 올해는 그 아이들이 근무 태만이라고  다람쥐 탓이나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내 안의 “연민”이라는 아이가 자꾸 자라 작은 일에도 마음이 아프고 짠해진다.

그래서 성당 미사 갈 준비를 해야 하는 그 아침에 빨래 건조기를 끌어다 펼치고 옮겨대며 법석을 떨어대다  미사에 늦고 말았다.


차츰 ‘오지랖’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있는 그놈의 “연민”.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여기저기 주책스럽게 찔러댄다.

나한테서 자꾸 우리 엄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예전의 내가 우리 엄마에게 그랬듯 내 아이들이 내 오지랖을 타박하기 시작했다.

내 타박에 그때 우리 엄마가 많이 섭섭하셨겠구나 싶다.


가을이다.

아직 캘리포니아에 인디언 서머라는 늦더위가 한창이긴 하지만 감이 익어가고 국화가 만발한다.

공기는 건조하게 버석 거리지만 그 안에서 가을의 미향을 느낀다.

내 인생도 가을이 왔다.

아직 펄펄하다 우겨 보지만 어깨 오십견에 팔을 올릴 때마다

찌릿 거린다.


가을이다.


좁은 화분에 키우던 다육이들과 산세베리아를 마당 한편에 옮겨 심어 뒀다.

처음에는 잎 끝들이 말라가서 괜히 옮겨 심은 건가 걱정도 됐었는데 아마도 새 땅에 적응 중이는 지 안 보던 사이 작은 새싹들이 쏙 쏙 자란다.

내 안에 꽁꽁 싸서 키우던 작은 아이도 먼 곳에서 기대 이상으로 잘 지내주는것을 보면 사람이나 식물이나 넓은 곳에서 키워야 하나보다.


가을이다.

식욕이 하늘을 뚫는것을 보면.





 




















작가의 이전글 별 그리고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