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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시청자 Mar 08. 2020

아이디어 공포증

아이디어는 합격하고, 나는 불합격했다


8개의 회사에 지원했고, 단 한 곳 빼고 전부 서류에서 광탈당했다. (아, 아직 한 곳은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리고 조만간 트라우마가 생길 것만 같다. 불합격에 대한 불안감? 아니다. 취준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벌써 초조하지는 않다. 나의 트라우마는 다름 아닌 '아이디어'다. 


요즘 회사 공고의 트렌드인지, 내가 희망하는 회사들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으나 서류 지원에서 무조건 아이디어를 물어보더라. 입사 기획해보고 싶은 프로젝트, 혹은 대놓고 과제를 수행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하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무서운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는 합격하고, 나는 탈락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예시를 서술해보겠다. A 회사 마케팅 인턴으로 지원했을 때의 일이다. 모집 공고에 마케팅 인턴의 주요 업무는 SNS 운영이라고 적혀있었고, 나는 그 회사가 과거(3,4년 전)에 잠깐 하다가 현재는 하지 않는 SNS 채널을 어떠한 방식으로 새롭게 탈바꿈시켜 운영하고 싶다고 적었다. 특히 그 채널을 왜 해야 하는지 이유와, 경쟁사는 어떠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지까지 꼼꼼하게 분석해 제출했다. 결과는 서류에서 불합격이었다. 그러나 크게 낙담하지는 않았다. 나보다 더 훌륭한 지원자가 있겠거니- 생각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반년이 지났고 그 회사는 다시 마케팅 인턴 지원 공고를 올렸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오랜만에 검색해보니, 내가 말한 대로 그 SNS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다. (방향마저 똑같았다!) 새 글이 올라온 시기도 살펴보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불합격 소식을 들은 열흘 후였다. (일 년이 지난 현재도 열심히 운영되고 있다!)


또 다른 예시를 들어보겠다. B 회사에 지원했을 때이다. 입사 후 포부를 구체적으로 작성하라는 것이 문항이었고, 최선을 다해 구체적으로 적었다. 회사 사정을 자세히 알 수는 없으니, 내가 생각해 낸 아이디어를 제출했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타겟층을 확대할 필요가 있고, 그를 위해 무엇을 만들 것이며 어떠한 방식으로 운영하겠다고 어필했다. 결과는 이 글 첫 줄에 예고한 대로 광탈이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났을까. 그 회사 유튜브 채널에 내가 기획한 방향 그대로 영상이 올라왔다. (심지어 채널의 구독자 수나 다른 영상들의 조회수와 비교했을 때 조회수도 잘 나왔다!) 혹시 이전에도 내가 언급한 새로운 타겟층과 관련된 영상이 있을까 싶어서 찾아봤다. 결과는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나를 떨어뜨렸으면 내 아이디어까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이치인 것 같지만… 그래, 취준생으로서의 열등감 혹은 자격지심일지도 모르겠다. 설령 내 아이디어를 보고 한 것이 맞더라도 증명할 길이 없다. 회사 측에서 "우리 원래 그 방향으로 진행하려고 했어" 한 마디면 상황 종료다. 사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선-후였는지가 아니다. 솔직히 취준생 입장에서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누구 생각이 먼저였든 적어도 서류에서만큼은 뽑혀야 하지 않을까



내가 말한 그대로 진행할 만큼 아이디어가 괜찮았으면 날 뽑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고, 아직 회사에서 발표하지 않은 방향을 예측할 정도의 통찰력을 지녔다면 (심지어 입사 후 그쪽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어필했다) 그것 역시 날 뽑아야 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패기, 아니 치기 넘치는 마음이란 것 알고 있다.


취준생은 '을'조차 되지 못한다. 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쓸 때 비로소 '을'이 될 수 있다. 지금은 '병'은 되려나. 그렇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제출할 기회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최고의 아이디어를 쥐어 짜내야 한다. 그래야 갑의 눈길이라도 한 번 더 받을 수 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디어는 반영되고 나는 반려되는 상황은 무엇일까. 회사에 제출한 아이디어를 내 블로그에라도 남기고 싶다. 감히 그래도 될까? 내가 생각한 것인데, 왜 내가 눈치를 보고 있을까. 씁쓸해진다.


회사에 제출하는 순간, 권리까지 넘어가는 건가.
난 넘긴 적이 없는데, 누가 허락한 것일까?




이 글을 읽는 인사팀 혹은 채용 과정에 참여하는 직장인 분이 계신다면 댓글로 회사 측 입장을 조금이나마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취준생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


*소재 특성상 언제 글이 업로드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많은 공감과 댓글은 취준생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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