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일 없이 달리기 Oct 01. 2023

지금까지 가장 인상깊었던 달리기

 

*[별일 없이 달리기 magazine]

평안한 달리기를 추구하며 ‘달리기와 일상’에 대한 주제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나의 첫 장거리 달리기는 여의도에서 열린 10k 마라톤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메달도 없고 정확히 언제 참가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뒤로 달리지도 않았고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희미해진 것도 있겠지만, 별다른 준비 없이 근성만으로 달린 마라톤이라 고통을 참고 억지로 달린 기억 외에는 딱히 기억할 거리도 많지는 않았겠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했던 때라 사진을 한 번이라도 백업해놓지 않으면 과거의 추억은 더 쉽게 휘발되기 쉬운 시절이기도 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세월이 참 빠르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그간 난 무엇을 보고 느끼고 배워왔나. 별달리 내세울 게 없어서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그렇게 잡을 수 없는 시간은 흘러버렸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동경이나 후회 따위에 얽매이는 것보다 그 순간들을 자잘한 추억으로 간직하는 것이 여러모로 이롭다는 생각이다. "그때부터 달리기를, 공부를 시작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는 타임머신이 생기지 않고서야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는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같은 삶을 반복할 것이란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서 오늘보다 나은 나로 사는 게 낫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과거의 추억거리를 반추하는가? 최근 들어 글을 쓰기가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하면, 시간 들여 글을 쓰는 나와 이 글을 시간을 내주어 읽어주는 감사한 독자들 모두에게도 전혀 도움이 될 일이 없다. 한마디로 시간낭비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수필을 쓰고자 하는 것이지 일기를 쓰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자문해 보았다 "나는 왜 글을 쓰기가 어렵게 느끼는가?" 사실 이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최근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최근 들어서 글을 쓰기 힘들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정확히 말하면 글을 쓸 때 한 자 한 자 시원하게 써 내려가지 않았다. 그 원인을 스스로 자문해 보았을 때 몇 가지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첫째로 글을 만들어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특히 수필이라는 것은 본디 자유롭고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필은 한 사람의 인생의 가치관을 써 내려가는 글이다. 따라서 정답이 없다. 내가 느끼는 바를 그대로 써 내려가는 게 더욱 중요하다. 글은 읽기 쉬울 정도만 다듬되 내 생각까지 가공해선 안된다. 그래서 때로는 여러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머릿속의 느낌을 그저 휘갈기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이력서를 쓸 때 맥주 한 캔정도를 먹고 글을 쓰기도 한다.)


 둘째로 글이 피상적이고 어중간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수필이나 에세이는 본연 내가 느끼는 점을 쓰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점보다는 지식을 전달하려는 비중이 꽤나 높았다고 생각한다. 수필은 명백히 문학이다. 하지만 때때로 내 글은 문학도 비문학도 아닌 어중간한 글이 돼버렸던 것이다. 물론 이런 어중간함을 '하이브리드'나 '퓨전'과 같이 새로운 장르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글을 쓸 줄 아는 전문작가의 영역이지 나같이 일상을 담는 글쟁이가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닐 것이다. 어중간함을 요란한 단어를 붙여가며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 최근의 글쓰기는 어떠하였는가? 나는 '달리기'와 '일상'이라는 주제를 의식적으로 엮는 글쓰기를 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독자들에게 만들어진 작은 교훈을 주려고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나란 사람이 누구를 가르칠 자격이나 있을까? 무언가 있어 보이는 글을 쓰려고 시도했다는 것이 매우 부끄럽게 느껴진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성장과정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목적을 가진 글은 주제를 보다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영 솔직하지 못한 글이라는 느낌을 지워내지 못하였다. 글을 쓰면서도 찝찝함을 느낀 것이다. 결국 만들어진 글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이야기의 중심이 내면이 아닌 외면을 향해있기 때문에 글 쓰는 과정이 즐겁지 않았다.


 요약하자면 전체적으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부족했다.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그저 전달하기만 할 뿐 그 과정에서 나의 생각이나 느낀 점을 명료히 전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름 글을 깔끔하게 잘 쓴다고 생각해 왔는데 명백하게 착각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글쓰기는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내가 글을 쓸 기회가 가장 많은 곳은 아무래도 직장이다. 나는 물류센터에서 물류관리사로 일한다. 직업의 특성상 업무상 대화 시 '느낀 점'은 철저히 배제한다. 객관적인 사실과 수치에 의해서 보고와 의사소통을 해야 하다 보니, 그동안 나의 주관이나 내면에 귀 기울이는 습관자체가 안되어있었던 것이다. 지금에서라도 이 점을 깨달아서 다행이다. 한동안 글이 왜 잘 써 내려가지 않는지 매우 답답하였는데, 내면을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깨우치고 나서 속이 조금은 시원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았다. 어렵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초보러너일수록 조깅하듯 달리고 초보 작가일수록 쉬운 글을 쓰면 될 것 아닌가? 내가 경험하고 느낀 일을 쓰면 될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문득 여의도에서 달린 첫 마라톤이 생각이 났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라는 것은 쉽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되니까 말이다. 추억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경우 가장 인상적이었던 달리기가 여의도의 첫 10k 마라톤 대회는 아니었다. 사실은 1년 전에 한강에서 혼자서 달린 별 볼 일 없는 30분 달리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22년 1월, 달리기를 시작할 때 <런데이>라는 달리기 앱의 도움을 받았다. 런데이는 8주의 달리기 프로그램(마지막에 30분 달리기로 마무리)을 제공한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되는 일이 있는가. 달리기를 시작한 지 4주 차쯤 될 무렵 정강이가 굳으며 통증이 오는 신스프린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스프린트는 큰 부상을 초래할 정도의 위협적인 증상은 아니지만 통증이 한번 발현하면 참고 달릴정도의 통증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그래서 공원 마루에 무릎을 꿇어앉아 정강이를 힘껏 늘려보기도 하고, 통증이 있는 부분을 엄지손가락으로 세게 눌러 뭉친 근육을 풀어보기도 했다. 누군가 보면 나 자신에게 벌을 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 같다. 나는 신체의 어느 부위가 아프면 더 큰 고통으로 치료(?)를 하려는 안 좋은 습관이 있다. 정강이의 입장에서는 학대도 이런 학대가 없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초보 러너가 겪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이다. 지금의 나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며칠 쉬었다가 다시 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매일 달리기에 어느 정도 강박이 있었다. 그래서 나약한 정강이가 너무나도 한탄스러웠다. 당시의 좌절감도 이루 말할 수 없겠다. 런데이 8주 코스는 '누구나 완주 가능한' 초보자 커리큘럼이다. 나의 몸뚱이 수준은 '초보자'도 될 수 없는 수준이구나 라는 생각도 머릿속을 스쳤다. 그간 내 몸을 하염없이 방치한데 내가 못나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결국 그날 훈련은 대충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근성으로 해결될 통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는 착지방법이나, 몸에 최대한 충격이 덜 가게끔 달리기를 하도록 주법에 신경을 썼다. 한 발자국도 허투루 내딛는 법이 없었다. 이 부분은 나름 대견했던 부분이다. 달리는 리듬을 신경 써보기도 하고, 지면을 스치듯이 달려보기도 하고, 종아리에 힘을 뺀 대신에 허벅지에 힘을 주어 달려보기도 하였다. 그러고선 온 신경을 정강이에 집중했다. 어떠한 경우에 종아리에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지 집중하며 조금이라도 통증이 올라 올랍 시면 자세를 교정해 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성도 그런 정성이 없었다. 통증에 대하여 신체에게 일방적인 채찍질과 고문을 해왔다면, 그때의 경험은 내 신체와의 첫 번째 대화이며 협상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신스프린트는 1~2주가 지나자 증세가 어느 정도 나아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보 정강이 시절 통증이 주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릎이 문제였다. 정강이 데미지를 최소화하려고 보니 허벅지를 많이 쓰는 주법으로 달리기 시작했는데, 무릎이 파업을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심각하게 다가왔다. 무릎의 통증은 정강이 통증과 다르다. 하지만 무릎통증 그 자체로는 참을만하나 건이나 근육의 염증은 골든타임을 놓치면 일상에서까지 불편함을 감수를 해야 하기도 한다. 특히 건염은 한번 발생하면 최소 몇 주에서 몇 개월은 고생할 정도로 만성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그땐 정말 달리기를 중단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다. 정확히는 고작 달리기 하나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한 내 몸뚱이(정확히는 그간 이 사태를 방치한 내 정신상태)를 보고 스스로 한심함을 느꼈던 것이다. 무엇을 탓하기라도 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순전히 내 탓이니 어디 제대로 하소연할 때도 없었다.

 

 달리기 두 달 차는 통증과의 싸움이었다. 무릎보호대를 차고 내 몸을 애지중지하며 달렸다. 비유를 하자면 이미 금이 가버린 유리잔에 물을 따라먹는 것처럼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결국 런데이 30분 달리기 코스가 8주 커리큘럼의 나머지 4주 차(50%)는 일정을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지난 커리큘럼을 복습하는 식으로 기초체력을 더 다졌다. 다행히 무릎통증은 만성으로까지 진행되지는 않았다. 그 뒤로도 무릎통증이 없는 것 보니 무릎은 파업을 철회하고 더 열심히 일하는 쪽을 선택했던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12주가 지나서야 8주 커리큘럼의 마지막(30분 달리기)을 바라보고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달리기 교습이. 부상을 딛고 일어난 마라토너의 도전 정도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서 어중간한 장소에서 달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지금까지 한강이라는 장소에 추억을 하나씩 저금해 왔다. 그래서 기분의 전환을 꾀하고 싶을 때는 한강을 찾곤 한다. 내게 한강은 마음의 안식을 주는 장소인 것이다. 이날도 나는 한강에서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같은 날 달리기를 중간에 멈추면 좌절감이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봄날의 바람은 선선하고 갑자기 발을 접질리지만 않는다면 무리 없이 달리기를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여의도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한다. 한강은 언제 와도 좋은 장소다. 나는 해외경험이 적은 편이지만 아직까지 나는 한강 그리고 한강을 품고 있는 서울처럼 아름다운 도시를 본 적이 없다. 한강이라는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과 광활함 그리고 서울의 도시가 주는 문명의 평안함이 심리적으로 꽤나 많은 안정감을 준다. 달리기는 확실히 지루하지 않다. 금세 마포대교를 지나고 63 빌딩이 가까워진다. 슬슬 숨이 차오른다.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적당한 피로감이다. 이런 걸 펀런(Fun run)이라고 하는 건가. 90일 동안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던 달리기에도 끝이 보인다. 저 앞의 한강 철교가 보인다. 저기까지 달리면 목표한 시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한강 철교에 도달할 때 즈음. 이어폰에서 트레이너 가이드 음성이 들려온다.


"잠시 후, 위대한 러너의 모든 트레이닝 코스가 완료됩니다"


 나는 이 짧은 30분 달리기에서 무엇을 느꼈는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달리기로 선정한 이유는 내가 30분 달리기를 끝마쳤을 때 알 수 없는 감정에 의해 가슴이 벅차올랐고 눈물을 흘릴 뻔했다는 것(나는 웬만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그 눈물의 정확한 의미는 알지 못한다. 무엇이 나를 감정에 적시게 했을까. 추측건대 몸이 보낸 최고의 칭찬이었을 것이다. 90일간의 훈련에서 마주한 작은 문제들을 극복하고 작지만 무언가 이루었다는 희열감에 가까웠을 것 같다. 고통과 지루함, 그리고 나태한 나를 제치고 스스로를 견인하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온 데에 대한 보상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5k를 달리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궁상맞기도 하지만, 짧은 거리를 달리고서도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건 초보러너로서의 혜택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라는 사람은 스스로 납득이 가능한 수준의 체벌을 가하고 성장해야만 가슴이 뜨거워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느꼈다. 참으로 고통스럽고 미련한 삶이다. 하지만 그런 점에 있어서 달리기가 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같은 일상이 반복되면 중복되는 기억은 뇌가 삭제를 한다고 한다. 저장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시간이 어린 시절보다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끼는 이유도 매일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에 기억할만한 거리가 없어서라고 한다


 실제로 나는 지난 난 날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연예인이나 유튜버들이 지인들과 과거의 추억을 생생하게 회상하며 읊는 장면을 볼 때마다. "저게 가능한가?"라는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추억거리를 잘 회상하지 못하는 편이다. 나의 추억은 단순히 머릿속에 사진이나 쇼츠같은 동영상 클립만이 몇 개 남아있는 정도다.


 다행히 달리기를 하면서 추억거리를 되새김질하는 과정에서 기억할 거리가 조금은 늘어간다고 느낀다. 인상적인 하루는 지나고 보면 기억의 필터링을 거쳐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는다(고통스러울수록 더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가만 생각해 보면 바로 작년의 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내가 10년이 지난 마라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그날이 상당히 의미 있는 날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0년 전의 여의도에서 10k를 달린 나는 어떤 생각을 하였는가. 어렴풋이 한 장면만 기억날 뿐이다. 재미있었는지, 의미가 있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알 도리가 지금으로는 없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점은 그날의 나는 인생을 그냥 흘려보내지는 않았는 점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인생의 중년과 말년에 기억할 날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보다 슬프고 허망한 일이 없겠다. 타임머신이 있어 과거를 되돌아가더라도 딱히 개선된 삶을 살 자신도 없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오늘부터라도 달리는 방법이 가장 좋은 인생 기억법이다. 스스로에게 적당한 체벌을 주어 고통스러운 기억을 소중한 추억으로 바꿀 시간이라는 양분만 주면 되니까.



작가의 말 : 이번 글은 좀 깁니다.

               오히려 너무 다듬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힘을 빼니 개인적으로는 더 만족스러운 글이 나온 것 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은 방향이 아니라 속도던데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