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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따독 Aug 09. 2020

일 년 농사 망치고 받아온 ‘밤창시계’

밤의 창가에서-김광석의 웃음

“헤이! 딸내미 부추 좀 잘라와라.”

“네이~!”

옥상에 올라갔다.


엄마는 작은 화분도 그냥 두는 법이 없었다.

꽃이며 먹을 채소를 키웠고 나는 간혹 열매를 따거나 잎을 베어 오란 심부름을 했다.


대충 생긴 모양은 알고 있었다

내가 그때 사고를 친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노래가 끝내줬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늘은 핑크빛으로 물들고 나는 휴대용 카세트에 녹음된 일명 ‘밤 창’을 들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통기타 가수 김광석은 모 종교방송국 ‘밤의 창가에서’란 음악프로를 맡고 있었다.) 그날따라 감성 돋는 노래에 시각 청각이 혼미해져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을을 보았다.


“우리 딸내미가, 부추 씨앗을 뿌려서 키워오시나? 어째 깜깜무소식이래?” 급하게 한두 줌 쥐어 가위로 싹둑! 잘라 계단을 뛰어내려 갔다.


엄마는 부추를 받아 들고 씻다가 박장대소했다  

“왜? 무슨 일 있어요?”

“일 년 농사 다 해 먹었다. 우리 딸내미가! 하하하하하”

노을에 음악에 취해서 부추 사이에 있던 벼(쌀)를 베어버린 거였다. 엄마는 재미 삼아 키워보겠다고 벼농사까지 지었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엄마는 잊을만하면 집에 오는 지인들에게 그 소리를 해서 날 민망하게 했다   


수업이 늦어지거나 시간이 맞지 않아서 못 들을 때면 녹음까지 부탁해서 집에 돌아와 밤새 ‘밤창’을 들었다.


이 모든 게 ‘밤창’ 때문이라며 벼농사 망친  이야기를 코믹버전으로 편지에 써서 보냈더니 김광석 오빠는 내 편지를 읽으며 낄낄거렸다. 게다가 선물로 손목시계라니.


엄마는 일 년 농사를 손목시계와 맞바꿨다고 두고두고 장난을 쳤다. 아마 어쩌다 한번씩 썰렁하게 웃기는건 엄마를 닮아서 인것 같다. 친정엔 지금도 모 종교 방송국 이름이 새겨진 손목시계 하나를 모셔놓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혜화역 학전 소극장에서 죽순이라도 해볼 걸 그랬다. 하회탈 같은 얼굴 좀 실컷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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