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병
한국 사회는 병들고 있다. 세대 간의 갈등과 젠더 갈등, 노사갈등, 가족 간의 갈등 등등, 대한민국은 사회 곳곳에서 싸우는 중이다. 이 싸움은 전쟁과도 같아서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잔혹하게. 돈에 노예가 되어가고 있음과 동시에 이상하리만큼 자유로운 이기심이 모여 보편타당한 가치를 배척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아픈지 꽤 오래되었고,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구성원들 역시 안팎으로 병들어 가고 있다. 특별히 우리에겐 마음의 병이 제일 큰 문제이다.
자살, 묻지마 살인,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이상한 범죄들과 현상들은 사회와 우리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단 하루를 살아가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SNS는 온통 자기 자랑으로 바쁘고, 인터넷 기사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보도한다. 무관심 또한 심해져서 나를 제외한 어떤 이웃에게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오직 나만의 기준, 나만의 법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남을 욕하는 것을 아주 쉽게 하지만, 내가 공격받으면 눈을 까뒤집을 정도로 분노한다. 동시에 무가치와 자유로운 가치 그 사이 혼란 속에서 우리는 비교하게 되고 부러워하게 되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음에 자책하고 탓을 하기 시작한다.
물론, 여전히 자존감 높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나간다.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이 많다. 소위 ‘성공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올바르게 개척한 부류이다. 그들에게도 불안이 없지 않았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불안은 가만히 두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가 성공하지 않는다. 또한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도 꽤 있다. 그래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24시간을 살아가는 게 몹시 힘든 사람들도 있다.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지는 삶이 반복되면 나 자신을 돌아볼 새도 없이 병들기 시작한다. 돈은 늘 부족하고, 해야 할 일은 많으며, 지속되는 압박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커져간다. 어느 청춘이, 어느 존재가 지금 현재 이렇지 않을 수 있을까. 나라고 별 수 없다.
한 동안 불안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을 시작한 이후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나 스스로가 느낄 정도로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만 했던 상황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오히려 혼자 힘으로 살아가려는 의지가 더욱 강해졌다. 마음속과 머릿속에서 불안이 지워지게 되자 대인관계도 좋아졌다. 뭐랄까, 본능적이라고 해야 할까. 특별히 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사람을 대하는 것이 편해졌다. 꿈을 향해 조금씩 걸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사진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안을 잠시 밀어낸 것뿐이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겼고, 그것이 트리거가 되어 다시 마음속 폭발을 일으켰다. 오히려 20대 초반의 불안해서 봐줄 수가 없는 그때로 돌아가 버렸다. 너무 억울했다. 부단히 노력을 했으나 나는 결국 불안을 이기지 못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다시 올라온 불안은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내 삶에 규칙이 사라졌고, 일상이 사라졌다. 무너진 삶을 한 동안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불안은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그 양을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잠시 밀어내면 불안은 나의 다른 모습 혹은 감정으로 변함으로써 불안의 양을 유지한다. 시간이 지나 불안을 담고 있던 그릇이 비워지면 스르륵 밀고 들어온다. 그러니까 적어도 내 마음 그릇에 담긴 불안의 양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불안을 극복하는 것은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를 없애는 것이나 불안을 대체할 만한 것을 찾는 문제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즉, 불안은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덜어보기도 하고, 취미나 색다른 경험으로, 일에 집중하는 것으로 밀어내 보기도 하겠다만, 적당함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불안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하루하루 살아내기 정말 어려운 시기에 이제는 불안까지 함께 가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비참하고 아픈 상황으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 한 걸음 내디뎌야 하기 때문에 감성팔이에 우리의 삶을 던질 수 없다.
우리는 다 똑같고, 다르다. 불안하지 않은 존재는 한 명도 없으나, 불안을 극복 혹은 다스릴 방법은 개인마다 다르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 등의 글들에서 찾을 수 있고, 자신만의 롤모델에게서 찾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종교나 취미, 경험 등에서도 얼마든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아니면 상담을 받거나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병, 불안은 내가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간신히 누르면 또 튀어나오는 불안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훨씬 유용할 것이다.
몹시도 지쳐 있던 그때와, 그리고 지금도 지쳐 있는 나와 우리 모두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