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뉴 Nov 14. 2024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 “잘 버텨냈다”

  하늘이 열린 날, 대학 동기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안팎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친구여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나에게도 그 친구는 정말 좋은 친구였다. 간단한 사진 촬영을 부탁받은 나는 예식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했다. 새신랑이 늘 그렇듯, 동분서주한 그를 더 바쁘게 하고 싶지 않아 밑에 있는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카페 창문 너머 한 두 명씩 친구들이 도착하는 게 보였다. 잠시 후 바빠질 날 위해 친구들에게 일부러 인사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친구들은 나를 보지 못했는지, 서둘러 식장으로 올라갔다.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던 중에 입구에서 손을 흔드는 친구가 보였다. 학부 때 서로 많이 달라 싸움도 숱하게 했지만 또 그만큼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러다 보니 비슷한 면도 많은 친구였다. 졸업 후 서로의 인생으로 흩어진 뒤 만남도 연락도 뜸했던 친구였다.     


  그를 위해 커피 하나를 주문했다. 몇 마디 안부 인사를 건네자, 잠시 뒤 커피가 나왔다. 시계를 보니 아직도 40여분이 남았다. 오랜만에 만난 그 친구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그를 보는 듯했고, 그는 나를 보는 듯했다. 서로의 가정환경도 정말 비슷했고, 살아온 삶이나 겪었던 경험들조차 비슷했다. 다만 서로의 성격이 많이 달랐다. 둘 다 공격적인 사람이었지만, 나는 좀 더 강했으며, 그는 그나마 덜 공격적인 성격을 가졌다. 비슷할 뿐 친구와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꽤나 오래전 일이었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로 시작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그와 나누었던 대화의 시작이 대부분이 서로의 사는 이야기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때도 그런 이야기이지 않았을까 한다. 서른 살 되기 직전의 우리는 배워먹은 신학을 등지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길을 걸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경력도 없고, 스펙도 부족한 이 나부랭이들이 사회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으니, 할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사실 오늘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제목에 다 나와 있다. 식장으로 올라가기 전, 먹었던 잔을 치우려 일어나려던 그때, 친구가 툭 하고 한 마디 던졌다.  

    

  “우리, 그래도 잘 버텨냈다.”     


  그러고선, 쟁반을 들고 먼저 나가버렸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나도 서둘러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카페 문을 열면서 나도 한 마디 했다.     


  “그런 것 같지?”     


  서로 웃으며 식장으로 올라갔다.  

    

  그 친구와는 다시 연락이 뜸해졌다. 친구는 잘 지내고 있을까. 나는 여전히 잘 버티어 내고 있다. 불안은 더 세지고, 상처는 더 커지고 있다. 그래도 삶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으로 보아 꽤나 버틸만한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면 혹시, 맷집이 더욱 늘어난 조금 성장한 어른이 된 것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지랄 총량의 법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