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싸' 되기 참 쉽죠?
새벽 네 시가 좀 넘은 시각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너 이 새끼! 당장 올라와!”
자다가 이게 뭔 소리인가 싶어서 집에 내려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핸드폰 너머 들려오는 말은 온갖 욕지거리와 당장 올라오라는 소리였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올라갈 수 없으니 올라가서 얘기하자고 하고 끊어 버렸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새내기인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이 있을까. 시골 촌놈이 서울 올라가 잘 몰라서 실수한 게 있나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인사성이 밝지는 않았어도 버릇 나쁘다는 소리는 안 듣고 자랐다. 누구든 만나면 인사를 하라고 하도 귀에 딱지가 앉게 이야기를 들어서 아예 고개를 숙이고 다니다시피 했다. 근데 내가 뭘 잘못했지?
시간이 조금 지났다. 3월 말이었을 때다. 기숙사에 소방훈련이 걸렸다. 쌍팔년도도 아니고 무슨 기합을 이렇게 주나 했다. 기숙사 옥상에 모인 우리는 몇 차례 얼차려를 받았다. 그중 요주의 인물 세 사람을 뽑았는데, 그중에 내가 있었다. 알고 보니 새벽 전화의 수화자가 사생회 장이었다. 아하.
나머지 애들은 내려가고 세 사람만 따로 불려 갔다. 동아리실이었나, 그랬다. 끌려가면서도 나는 이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현실이 맞는지 동의가 되지 않았다. 그것도 사대문 안쪽에 있는 가장 가운데에 있는 대학에서 말이다. 뒷이야기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겨도 좋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캐물어도 나는 잘못이 없었다. 알려주고 갈구던지, 괴롭히던지 하지 이게 도통 무슨 일인가. 짜증도 짜증인데, 화가 몹시 나서 같이 싸웠다. 아주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동이 틀 시간이 다 되어서 그랬는지 순순히 보내주더라. 뭐야.
다음 날, 대학원 사생회 장이 불렀다. 그 좁은 방에 장정이 7이나 있었다. 나는 무슨 마속처럼 꿇어앉아 참수를 기다리는 것처럼 있었다. 마속은 그래도 법을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 죽기라도 했지. 나는 이게 뭐람. 내가 덩치도 있고, 힘이 있어도 숫자 앞에는 장사 없었다. 그 사람 얼굴을 보니 기억이 나더라. 아! 그때 그 사람이구나.
새내기들은 ‘멘토&멘티’라고 해서 대학 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 조를 만들어준다. 그 조는 배당받은 교회를 찾아가서 밥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나누는 등의 견학 비슷한 것을 해야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나랑 같은 조에 배당된 애들이 소위 잘 나가는 애들이었고, 이미 그 교회의 사역자들과 목사님들과도 다 아는 사이였다. 신기했다. 그러 애들과 같은 조가 되었다는 게 말이다. 말 주변도 없고, 소심한 나는 그곳에서 오히려 더 적응이 안 되었다. 목사님이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당진에서 왔다고 말씀드렸다. 당진이 어디냐고 물으시기에, 서해대교 넘어서 있는 곳이라고 했다. 그게 끝이었다. 그날 내가 한 말이. 아무도 나한테 말을 걸지 않았고, 나도 말할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때 담임 목사 옆에 있던 놈이 바로 내 앞에 두목처럼 있는 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 그들의 명목은 ‘싸가지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싸가지가 있는지 없는지 말 두 마디해 보고 어떻게 아는지 수 만 명의 사람을 만난 나도 지금까지 모르겠다. 죽도록 맞았다. 맞고 있지는 않아서 같이 때려줬다. 덩치들은 다 나보다 작아서 극복이 되긴 하더라. 어이가 없었다.
아무튼 그 후로 같은 학번들에게서 소문이 안 좋게 났다. 당연히 위 선배들한테도 그랬다. 다행인 것은 이 못된 소방훈련이라는 악습을 제일 잘 나가는 집 아들이 대자보를 걸고 자퇴를 하면서 이슈화가 되었다. 그럼에도 사라지진 않았지만, 규모가 작아졌고, 결국 우리 학번이 사생회를 꾸릴 때쯤 되었을 때 완전히 사라졌다.
맞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설령, 피해자의 아픈 생각일지 모른다.
‘내가 말을 더 많이 했더라면’
‘전화받을 때 더 공손하게 받았더라면’
‘혹시나 내 표정에 문제가 있었을까’
이런 식의 생각이 물밀 듯 지나갔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나는 맞은 사람이고, 저것들은 못된 놈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생각들을 싹 지워버렸다. 스무 살에 겪은 이 참담한 일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다. 굳이 알려봤자, 이 세계에서 나는 묻힐 게 뻔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잘 나가도 진실 앞에 꺾이게 되어 있다. 날 패던 놈은 또 누군가를 때리다가 경찰에 잡혀 갔고, 다른 한 놈은 속도위반으로 낙인찍혔고(신학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몇몇 놈들도 다 좋게 풀리지는 않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내가 저런 생각에 더 빠지지 앉았다는 게. 세게 나갔던 것이 잠시 잠깐 오명을 뒤집어쓸 순 있어도 시간이 지나 모든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사람들의 반응도 돌아온다는 것도 알았다. 배운 게 너무 많았다. 친구라는 경계를 어디까지 둬야 하는지,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떻게 시작하는 게 좋은 것인지,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를 가져본 것도, 억울함을 토로하는 방법까지. 좋은 경험이었다. 그때 꾸려진 친구들을 아직도 만난다. 그때 만들어진 사람을 만날 때 시작하는 방법을 아직도 사용한다. 지금은 좀 옅어졌지만, 그래도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도 아직 남아 있다.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유까지 있다.
'아싸'가 되는 방법은 참 쉬웠다. 하지만 그것을 벗어나기까지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진실은 다 드러났고, 간신히 예의도 없고 싸가지도 없는 오명을 벗을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적잖이 흘러 내가 생각했던 캠퍼스 생활을 다 누리지도 못했고, 친구들도 극히 제한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던 사실은 참 유감이었지만, 그 덕에 자연스레 걸러진 사람들이 생겨서 오히려 더 좋았다. 뭐, 결국 '아싸' 탈출은 실패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