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프로젝트의 초반에는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수행한 것이었기에, 주말이나 짧은 방학을 이용해 취재를 다니곤 했다. 첫 탐방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주말을 활용해 야간 버스를 타고 취재하는 젊음의 투혼(?)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 후 짧은 방학을 이용해 프랑스 기차 떼제베를 타고 프랑스 제 2의 도시라는 리옹에 방문해 두번째 취재를 시작했다.
처음 마주한 리옹은 내가 머물던 북부의 릴보다 크고, 복잡했다. 복작복작한 사람들이 어딘지 모르게 파리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했고. 과연 이래서 프랑스 제 2도시라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일단 숙소에 들려 짐을 풀고 나와 인터뷰를 하러 갈 준비를 할 때 깨달았다. 내가 머물던 게스트하우스와 같은 거리에 인터뷰할 가게가 위치해있다는 사실을!
웬 우연일까. 교환학생 기간 중 짧은 방학을 이용하여 여행 겸 취재를 온 것이었기 때문에 그저 가격과 평이 적당한 게스트하우스를 골랐을 뿐인데. 작은 우연임에도 왠지 설레고, 인터뷰가 재밌게 진행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도착한 가게 앞.
뭐랄까, 흔히 '핫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달랐다. 그냥 프랑스 평범한 거리에서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가게처럼 보일뿐. 문을 열고 들어선 가게 내부 역시 소박하고, 평범한 가게였다. 그냥 퇴근 후 맥주 한잔 하기 좋아 보이는 곳.
인터뷰를 하러 왔다고 말하니, 자리를 안내해주며 웰컴 드링크를 주듯 리옹 맥주를 제공받았다. 선홍빛 빛깔에 적당히 달콤한 과일향이 나는 맥주를 홀짝거리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여행도 아니고, 프랑스 리옹에 인터뷰를 하러 와서 마시는 리옹 로컬 맥주라니.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말하고, 가게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내 첫번째 질문은,
"상사 없이, 사장 없이 일하는 거 어떠세요? 일반적인 회사랑 얼마나 다르나요?" 였다.
그랬더니 이 사람들, 여유롭게 웃음을 띄고 대답한다.
"많이 다르죠. 일단 저희 가게는 프랑스노동자협동조합 소속이에요. 그래서 구성원들이 모든 일을 함께 결정해요. 새 테이블을 살지 말지, 산다면 무엇을 살지 부터 진지한 회의가 필요한 큰 규모의 안건까지. 모두 다요."
그리고 그들이 도입한 시스템은 '직무순환제도'였다.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비슷한 것을 들어본적 있을 것이다. 공기업의 순환 직무처럼 말이다. 이 곳에서는 어떤 방식일까?
"행사 지원팀, 인적자원 관리팀, 재료 구입팀 이렇게 세 팀으로 업무를 분담했어요. 전 작년에는 구입팀에서 로컬 맥주 구매 업무를 맡았었고, 올해는 행사 지원팀에서 일하며 문화 행사들을 기획하고 있어요. 다양한 리옹
맥주 브루어리를 발굴하며 로컬 푸드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즐거웠지만, 사람들을 만나며 기획하는 것도 정말 잘 맞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의 모토는 '모든 사람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자'예요. 그래야 제가 휴가를 갔을 때도 다른 사람이 제 일을 대신해서 할 수 있으니까. 한 사람이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에서는 그게 어렵잖아요."
신선했다. 보통 사장-부장-과장-대리-사원 등으로 구성된 수직적인 구조와 비례하는 책임의 크기가 일반적이지 않은가. 한 사람에게 너무 큰 책임을 부과하지 않고, 전직원이 공평하게 일을 경험하고 한다는 점에서 회사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 역시 비슷해지는 효과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휴가에 대한 얘기는, 음. 역시 날이 더워 일하기 힘들다며 8월 한달을 통째로 모든 국민이 쉬는 나라, 쉴 권리를 중시하는 나라 프랑스다웠다.
사장이 없이 평등한 곳에서의 커리어의 장점이 또 있다고 말하는 레오.
"전 원래 셰프가 아니었어요. 전혀 다른 직무로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마침 제가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셰프 자리가 비었고, 전 예전부터 셰프로 일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도전하게 됐어요. 인터뷰를 하고, 수습기간을 거친 뒤 셰프로 일하기 시작했죠. 이렇게 수평적인 구조로 운영되기 때문에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정말 큰 장점이에요. 다른 곳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잖아요."
"수평적인 구조로 운영되기 때문에,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팀과 레오를 인터뷰하며 들었던 생각은 '단순히 로컬 푸드를 사용한다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수평적이고 서로를 존중하는 운영 방식이 이 가게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지 않았을까?'라는 것이었다. 취업 전, 대학생인 나에게도 '워라밸'은 중요한 요소다. 직원을 존중해주는 회사에 가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것은 나 혼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직급 상관없이 모든 직원을 '-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문화나, 영어 닉네임을 사용하는 등의 수평적 구조를 위해 많은 회사들이 변화하고 있다.
물론 모든 회사가 협동조합처럼 완벽하게 평등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상호존중이 기반이 되는 회사 문화가 확대된다면 지금처럼 퇴사 담론이 범람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직무 순환 제도 역시, 잘못 사용된다면 단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직무를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직장이 아닌, 여러 가지 가능성을 탐색해보고 싶어하는 현 세대에게 유용한 형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일을 해보며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는 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재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