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사람은 칼퇴하는 팀장이고, 일 욕심도 많고, 내 이름을 걸고 결재 도장을 찍는 것에 '찐'인 사람입니다. 고로 내 이름으로 결재를 찍는 서류에 대충이란 건 없는 편이죠. 그래서 팀원들을 힘들게 하는 상사이기도 하고요.
여기 제안서를 제출해야 하는 한 팀원이 있습니다. 이 제안서는 내부 처리용이나 제안서를 바탕으로 다음 작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빠르게 마무리되어야 할 서류입니다. 이 팀원에게 있어 현재 이 제안서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고, 처리함에 부담감이 큰 작업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제안서가 쏘아 올린 문제의 발단이라 해야 하나 무튼 시작은 이랬습니다.
상사가 그 제안서를 대체 언제 볼 수 있냐며 업무 시작 전부터 이야기를 하더군요. 중간보고를 팀원이 했으나 피드백은 1도 없었다는 걸 알고 있는데 계속 서류 제출만 요하는 상황이라 일차 짜증이 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뭐 어쩌겠어요. 중간 수도 없이 수정 작업을 하고 있어도 결론적으론 그 팀원이 정해진 날짜를 지키지 못한 거니깐요.
며칠 째 이 서류만 봐야 하는 것도 아닌데 수시로 피드백을 주는 것도 힘들기도 했고, 그 팀원도 이 제안서를 제출하고 나면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것 같으니 그 발단이 된 날 모두 마무리하자고 팀원과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다른 업무보다 제안서 위주로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검토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도표 분석부터 해석까지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아 일부는 팀원이 일부는 직접 수정 작업을 병행하여 진행했습니다.
생각보다 작업 시간이 많이 걸려 퇴근 이후 시간까지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야근을 해서라도 이 제안서를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이었고, 오늘까지 마무리하자고 이야기가 된 상태기 때문에 야근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죠. 근데 그 야근은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봐요. 퇴근 이후 시간까지 한 파트 수정 작업을 마무리하고, 파일을 담당자에게 넘기고 다음 파트로 넘어가려던 찰나였습니다. 파일 전송과 함께 전달사항이 있어 내선 전화를 했더니 벌써 퇴근을 하고 없더군요. 업무 특성상 다른 사무실을 사용하기 때문에 퇴근 여부까지는 알지 못했거든요.
이 상황들이 무슨 만화 속 장면 같더라고요. 그 순간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심한 화남이 왔습니다. 상사에게 서류가 늦어져서 더 이상 질책을 받지 않게 하고자, 그리고 제안서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자 업무지원을 하고 있었는데 정작 담당자는 퇴근을 하고, 상사인 나는 남아 작업을 하고 있었던 이 상황. 대체 누구를 위해? 난 왜 이렇게 하루 종일 눈 빠지게 도표 작업을 하고, 수정 작업을 했단 말인가?
신입도 아니고, 몇 년 간 함께 일을 해왔기에 업무 스타일을 모르는 것도 아닌 팀원이 말입니다. 그래서 더 화남이 빡 왔는지도 모르네요. 그 팀원 퇴근 사실을 안 순간 현타가 오면서 나도 모든 파일을 다 닫고 퇴근을 했답니다. 퇴근 후에도 그 순간의 화남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습니다. 자려고 누웠는데도 쉽사리 잠도 오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그랬구나. 내가 선을 넘은 거구나. 그냥 어느 적정 선까지 개입하고, 지원해주면 되는 것을 나의 배려와 친절이 너무 과했구나. 애쓰지 말자 해놓고 그걸 또 잊고 혼자 경주마처럼 달리며, 나 혼자 애쓰고 있었구나. 그렇게 선을 지키자 다짐한 내가 업무의 선을 넘은 건데 누굴 탓하겠는가’로 결론이 지어지더라고요.
이제 하나 추가해야겠네요. 수정할 서류를 보는 순간 업무의 선을 잘 넘는 상사라고 말이에요.
퇴사의 기로에서 최고 관리자와 상담을 통해 겨우 마음을 다 잡고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일로 내 마음은 한 뺨 또 멀어지는 것 만 같네요. <업무의 선을 넘지 말자> 내가 지켜야 할 가장 큰 덕목이라 생각하며, 되새기려 합니다. 넘지 말자!! 넘지 말자!! 나부터 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