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희망하며 상담을 요청하는 후배 선생님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선생님과는 둘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참 무심했다 싶었다. 앞에 따뜻한 차 한잔씩 두고 이야기를 시작, 아니 들어주기 시작하였다.
이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일처리가 늦은 편이라 남들이 한 시간에 해결될 일을 두 세배의
시간이 걸려야 해결하여야 했고, 그러다 보니 야근을 해야 할 일이 많은 편이었다.매번 야근하는 모습에 불안 불안하다 했는데 결국 일을 시작한 지 4개월이 되지 않은 시점에 퇴사를 해야겠다고상담 요청을 하였다.
야근해서 할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다음 날 일정에 지장이 생기니 남아서 처리할 수밖에 없고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야근이 일상이 되면서 퇴근 후 자신의 삶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왜 퇴사를 마음먹게 되었는지, 어떤 점이 그렇게 힘든지, 사람과의 관계가 힘든 건지, 일이 힘든 건지 전반적인 것들에 대해 차근차근들어주었다.
일을 하는데도 계속 원점인 것 같고.. 계속 일이 쌓여만 가는 기분.. 그 기분을 왜 모르겠는가. 끝이라도 나면 다른 일을 시작할 엄두가 날 텐데 하던 일을 끝맺지 못했기 때문에다른 일 시작은 생각도 못하게 되는 법이다. 그러다 보니 업무들은 쌓이고, 그 업무들의 무게가 무겁게 나를 짓누르게되고,그 부담감으로 출근하는 길이 너무 힘든 일 하나가 돼버린 셈이었다. 일을 해도 해도 줄지 않고 늘어만 가고, 일의속도가 붙지 않으니 자존감까지 많이 낮아진 상태였다.
우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미안하단 생각을 먼저 했다.왜 이렇게 힘든 선생님을 챙겨봐 주지 못했을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들어주고 다독거려주면서왜 정작 내 옆에 있던 선생님을 봐주지 못했을까.. 나 스스로 반성이 되더라. 내가 먼저 상담을 하자고 해볼걸.
우선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나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힘들었을 때 어떻게 이겨냈는지.. 여러 방법들을 써보고 했는데 나에게 가장 큰 위안이 되는 방법은 바로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거'였다. 정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 혼자만의 시간'은 정말 필요하다.
조금 일찍 출근해 에세이 한 구절을 읽는 시간, 카페에 혼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시간, 차 안에서 좋아하는 노래 듣기 등 짧든 길든 나만의 시간을 주는 게 나를 치유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그 후배 선생님에게 무조건 야근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한두 시간이라도 퇴근 후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바라봐줄수있는거라고.. 내가 있어야 다른 사람들도 있는 거라고.. 그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 만나 수다도 떨고, 영화도 보고 하라고..
그리고 압박을 주고 있는 업무들을 도울 수 있는 부분을 배분해서 도와 처리하기로 했다. 뭐든지 한 번에 다 해결해서 처리해야지 하면 더 안 되는 법이다. 조금씩 해결해서 처리하고, 다시 시작하고 해야지.. 누구든 한번 밀린 일은 거기에 또 일들이 쌓여가기 때문에 하기가 싫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러다 보니 일의 우선순위에서 벗어나 계속 일이 더 밀리게 되고.. 악순환의 연속이 된다.
퇴사를 마음먹은 선생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때 힘들었던 감정을 함께 공유해주고, 다시 한번 고민을 나누며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한 번의 상담으로 퇴사 마음을 잡을 수 있다면 퇴사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잡는다고 잡아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일시적인 감정에 퇴사를 결정한 것은 아닌지당장 힘들기 때문에 코앞에 놓인 지금만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필요하다 생각한다.
상담을 마친 후 그 후배 선생님은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상담 시간이었다고다시 한번 퇴사에 대해 고민해보겠다고 하였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고민 후 다시 일을 해보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열심히 다시 해보자고 했으나 결국 두 달 후 도저히 안 되겠다며, 다시 퇴사를 해야겠다고 하더라. 짧은 시간 내 두 번의 퇴사를 마음먹었다는 건 그 누구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을 잘 마무리하고 퇴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이 선생님은 떠나도 다시 또 다른 선생님과 함께 할 것이다. 이제는 내 옆에 함께하고 있는 이들의 마음부터 먼저 헤아려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도 바쁘고 정신없고, 힘들 때도 있지만 함께 하는 이들을 잘 챙겨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내 옆에 함께하는 이들의 마음이 건강하고, 즐거워야 내담자를제대로봐줄 수 있는 법이니깐.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퇴사를 생각하는 순간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힘든순간을나눌수있는동료가있고,나만을위한시간을가지며.. 다시시작할힘을얻어가고 있다.
퇴사를 희망하는 후배 선생님들 한 번쯤은 나의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그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상황이 바뀌지 않겠지만 그래도 내 생각이 변할지도 모르니깐.. 생각이 변하지 않더라도 털어놓고 나면 적어도 내 마음은 편안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