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몰라
하루라도 따주지 않으면 오이가 다 노각이 돼버리는 타는 여름이었다.
나는 그런 여름에 태어나 엄마를 애 먹였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놓고 삼일째 되는 날 일어나 오이밭으로 가서 이틀 동안 웃자란 오이를 버리고
솎아놓은 오이를 장에 내다 팔았다고 했다.
나는 얼마나 순한지, 엄마가 젖을 한번 물리고 오이를 한참 따고 와서 젖 한번 물리고
배를 타고 번개시장에 오이를 가져다주고 저녁이 되어 돌아오면
똥이 등까지 붙어있어도 울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고 잘 자고 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순한 애기였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순해서 그나마 그 여름을 버틸 수가 있었다고 했다
네가 울고 불고.. 은희처럼 그랬으면 엄마는 진짜 어떻게 됐을지도 몰라..
찬물에 밥을 말아 드시던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나를 처음 칭찬했다.
나의.. 순한 기질.. 아니.. 나의 순했던 기질
아니다 엄마는 몰랐을지도 모른다.
엄마를 기다리면서 얼마나 악을 쓰며 울었을지도 모르고, 기저귀가 축축하다고
까무러치게 울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못 봤으니, 나를 몰랐을 수도 있다.
지금 나의 기질은 절대 순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냥.. 다 피하고 싶긴 하다. 누군가 길거리에서 내 어깨를 확 부딧치고 그냥 가도
뒤돌아 보지도 않고 나는 내 길만 걸어간다.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고, 누구와 말을 걸고 싶지도 않다.
요즘 나는 그렇다.
서른한 해가 지난여름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날, 나도 아들을 낳았다
아들은 예민했다. 조리원에서도 하루 종일 앉고 있느라 나는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가
퇴원할 무렵은 내가 산모인 줄도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 종일 우는 아이를 안고 우는 날이 많았다
기저귀를 갈아줘도 울고, 젖을 줘도 울고, 도대체 왜 우는지 몰라 나도 울었다
엄마는 버거운 살림에 울었고
나는 육아를 몰라 울었다
서른 한해의 사간을 두고, 엄마와 나는 같이 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았던 여름이 다시 돌아오면
몸에 바람이 들었던 그때처럼 발끝이 시리고 머리가 시렸다.
삼복더위지만 나는 에어컨 바람에선 잠을 잘 수없고 혼자서 겨울이불을 둘둘 말고
잠이 들곤 했다.
아들은 예민하지만, 나처럼 지랄스럽게 표현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지만, 배려있게 나를 살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배운 게 없어서 걱정이었지만
사람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를 안다면. 커서 결혼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을 했다.
여름비가 훑고 지나간 저녁.
나는 우두커니 앉아
한 봉지 남은 두통약을 먹었다
오늘 밤은 꿀잠 자야지..
비 오는 날은... 푹자야겠다..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