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부탁해
이게 주변 밝기에 따라서 켜지는 시간이 다른가 봐?!!!
겨울엔 5시 23분에 가로등이 켜졌다. 우리가 달리던 다리 위에 가로등이 켜지던 순간,
내가 건하에게 말했다
건하야~ 동화 같지 않아? 어떻게 너랑 나랑 예하랑 우리 셋이서 달리는 이 순간에 불이 팍!! 켜지냐고.. 와 ~ 너무 좋지 않아?
엄마는 동화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래..
건한 시큰둥했지만, 나는 매일 몇 분씩 느려지는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을 기억하고 또, 황홀해했다.
건하야 , 예하야.. 이게 매일 어두워지는 그 조도에 따라서 달라지나 봐? 불 켜지는 시간이
아니면.. 아니면
맞다.. 저기 등불 위에 천사가.. 아 이제.. 가로등을 켜야겠다 하고.. 딱~! 하면 불이 켜지나 보다
말을 하니, 애들은 유치하다고 내 말을 듣지도 않고 핸드폰 게임만 했다.
나는 어두워지는 해가 산 끄트머리에 매달린 붉은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그 붉은 하늘을 감싸는 가로등 등불을 볼 때마다 마음에 불을 켠 것처럼 마음이 환해졌다.
건하가 다니는, 영어학원에 확진자가 나왔다고 했다. 건한 며칠 학원을 가지 않아 동선이 겹치지 않았지만, 방과 후 검도시간에 건하가 그 영어학원을 다닌다는 걸 알고 있던 엄마들이 건하와 마주치지 않게 하려고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나갔다고 했다
검도장엔, 건하의 동선을 이미 알고 있던 친구 한 명과 선생님, 건하뿐이었다고 했다
건한 말이 없었고, 너무 했다 생각한 친구엄마가 해명(?)을 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
처음엔 누구냐고 물었다가, 본인들을 단체행동이 미안했던지 아무 말 못 하는 친구엄마에게 나도 그렇게 생각 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항변을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반추해 보면, 돌아가는 시스템을 모르는 엄마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되려 건하 때문에 순간 놀랬을 엄마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진실은 하나..
건한 확진자 친구와 마주친 적이 없고 아무에게도 피해 주지 않았다는 거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 서랍에 있는 믹스커피를 마시려고 물을 끓이는데 예하가 말했다
엄마 오늘 네 잔 째야~~~ 안돼~~ 세잔 넘으면... 안돼~~
맞다.. 네 말이 맞다.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미지근한 물을 컵에 따라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여태껏 나는 내가 잘하는 일을 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반추해 보면 나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그래서 뭐든 해보려고...
그래서 그 뭐든이 뭔데 엄마? 예하가 묻길래..
잘 모르겠어.. 그래서.. 마음에 가로등을 켜고 나를 찬찬히 보려고..
아.. 그래서 엄마가 맨날 가로등 켜지는 걸 보면 좋아했구나!!
그래서 매일 우리한테 밤에 걷자고 하는구나!~~
예하는 이제 나를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감고 오늘 어둑해지던 길, 가로등이 켜지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 삶에 어둠이 내려올 때, 삶을 지켜주던 빛들을 생각했다.
나도 마음에 지지 않을 등불처럼 켜두고,
내가 늙은 날까지.. 마음을 환하게 따뜻하게 비쳤으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