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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솜 Oct 30. 2022

10. 연애 종료 _ 결혼해도 될까

결혼 불안장애


쌍둥이를 원하냐는 분석가 선생님의 직면에 정신을 바짝 차린 이후로, 오빠(소개팅남)의 성향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면서 관계도 점점 안정되었다. 그 사람이 가진 무던함과 안정감이 내게도 전염되면서 내가 가진 날카로움이 조금씩 다듬어졌고 상황을 이분화시켜 지각하고 처리하는 내 극단적 성향도 예전만큼 과민하게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관계의 거리감 조절에 있어서 균형을 잘 못 잡는 나의 고질적인 문제로 인해 혼자 서운해하며 헤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를 고민하기도 하였고 우리의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까에 대한 불안도 함께 올라왔다.



분명 나의 모습과 내 부모의 모습은 다르고 나는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인식함에도, 여전히 의식 하 수준에서는 안정된 만남 이후의 종착지인 결혼에 대한 불안이 지속되었다. 결혼까지는 그래 한다 쳐도 그렇게 한 결혼이 잘 유지될 수 있을까? 이 사람이, 또는 내가 또 다른 사랑이 나타났다고 한 눈을 팔지 않을까? 지금 보이는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이 튀어나와서 나를 공격하지는 않을까? 아이를 나 혼자 키울 수 있을까?... 숨을 불어넣을 때마다 점점 커져가는 풍선처럼 걱정이 꼬리물기를 하듯 풍선에 한 숨 한 숨 바람을 불어넣었고 그렇게 풍선이 팡 터질 때까지 극단의 파국적인 생각이 진행되곤 했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까지 끌어다가 걱정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걱정을 넘어선 병이었다. 진단명을 내려보자면 결혼 불안장애. 장애의 진단 준거를 만든다면 진단 준거 A는 '오랜 연인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관계로 진입에 극도의 불안을 경험하여 친밀한 관계를 회피하고 결혼을 거부한다'가 될 듯. 이건 내가 만들어낸 불안의 허상이지 진실이 아니야라고 의식적으로 거리를 유지하며 나를 달래보기도 하고 분석 시간에 분석가 선생님과 다뤄보기도 하였다. 그렇게 내가 부모의 모습을 답습하지 않을 것임을, 나와 오빠는 다른 사람임을 여러 시간 동안 다루며 나 스스로를 키우는 작업이 계속되었고 불안을 넘어서서 다음 단계의 발달과업을 향해 나아갔다.



오빠의 입장에서도 고민이 있었으니, 그것은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닐까에 대한 의문이었다고 한다. 임상심리 전공자를 만나본 적도 없었고 특히 정신분석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사람이었던지라, 때로 분석을 마친 후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만날 때면 '얘는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일반적으로 상담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정신건강 상의 문제가 있을 때 이뤄진다고 인식되고 있기에, 얼마나 문제가 있길래 저렇게 매번 울면서 상담을 받는 건가 싶은 의문이 들었고, 문제가 있다면 어른답게 잘 상담(말 그대로 상담)하면 될 것을 왜 매번 울까 싶어서 '정말 정신적으로 괜찮은 사람인가'가 고민되었다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여차저차 하여 내 문제를 알아가고 해결하고 있는 과정이야"라고 설명해주었지만 그럼에도 생경한 정신분석을 받는 이 여자가 멀쩡한 사람인지, 그리고 이 만남을 이어나가도 괜찮은가에 대한 고민이 되었겠지, 그런 지점과 궁금증이 없다면 그것대로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느 날엔가 한 번은 "그렇게 돈 내고 울 거면 나한테 돈을 내고 울어."라는 말을 해서 내가 하는 일과 상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버럭 쏘아붙이기도 했지만, 이런저런 에피소드들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촘촘해지면서 더 안정된 만남으로 이어져갔다.



1년의 만남이 지속되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이뤄지고 이전과는 다른 관점에서 이 관계를 바라봐야 하는 시기도 다가왔다. 첫 번째 연애에서 내 부모의 고향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내 존재가 거부될 수 있음을 한 차례 경험했던 터라, 이제는 이혼 가정의 자녀라는 이유까지 밝혀지면 얼마나 반대가 이뤄질까 하는 걱정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미래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면 이쪽 집에서도 나를 반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불쑥 찾아들어 불안해지기도 하였다. 이런 고민을 오빠에게 표현하였을 때 "너를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누가 너를 반대해?" 딱 한 마디로 내 불안을 잠식시켜주었다. 그래도 한 번 시작된 불안은 늘 똬리를 틀은 채로 나를 조금씩 흔들어댔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상태의 오빠에겐 연배 차이가 많이 나는 형님과 네 분의 누님들이 계셨는데, 가장 큰 형님과 오빠의 나이 차이는 무려 23세.. 그 형님의 자녀, 그러니까 오빠의 첫 조카와 오빠의 나이 차이는 고작 3살였으니, 오빠와 형님의 나이차는 결혼을 빨리 한 경우라면 부모-자녀로 볼 수 있을 법한 차이였다. 막내 누님과의 나이 차이가 10살이었으니 첫 만남에서 얘기해줬던 독특한 형제관계가 이렇게 재확인되었다. 오빠는 오히려 부모님이 안 계신 점, 그리고 결혼 과정에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부분에 우리 엄마가 우려하시지 않을까를 조금 걱정하였지만, 그럼에도 결혼을 반대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의 불안과는 전혀 다른 이런 긍정적 태도가 이 사람과 결혼한다면 그래도 괜찮은 가정을 꾸려볼 수 있겠다는 믿음을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겨울을 향해 가던 늦가을에 만났던 우리는, 겨울, 봄, 여름, 가을의 1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고 다음 해 봄이 되었을 때부터 오빠의 형님과 누님들께 인사를 드리며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를 소개해준 친구에게 결혼하게 되었노라고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때의 친구 반응은 "아니 결혼하라고 소개해 준 건 아니었는데."였으니... 하긴 나 조차도 이렇게 결혼으로 이어질지 몰랐던 만남이었으니, 친구의 저 반응도 무리가 아니었고, 내 친구들 중에서는 꽤 빠르게 결혼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정말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예상이 안 되는 게 삶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우리는 맑은 9월의 가을날에 부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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