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동생의 선배라는데 한 번 만나보지 않겠느냐며. 안 그래도 분석가 선생님께서 분석을 받는 동안 연애를 좀 해보고 문제가 있다면 그때그때 다뤄보는 게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시던 차였고, 이미 전문가는 취득하고 다른 국가 자격증 이수를 위한 수련도 거의 종료가 되어가던 3년 차의 마지막 분기를 앞두고 마음의 여유도 그전보다는 있던 터라, 그래 한 번 만나보겠다고 답하였다.
첫 번째 헤어짐 이후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흐른 터라 이제는 새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분석에서 이전 관계의 문제도 다루고 관계 형성을 막는 내 문제도 일정 부분은 점검하고 다뤄본 상태였고 이제는 새로운 만남을 가져봐도 좋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한데 막상 만남을 수락하고 만남의 날짜가 가까워 올수록 내 근본적인 문제가 부정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한 두 번 만나고 말 텐데 굳이 인위적인 만남을 위해 나가야 하나? 저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내나?라는 생각들과 낯선 사람을 만나고 긴장감을 버텨야 하는 부담감과 귀찮음도 올라왔다.
만남의 약속 3일 전, 주선하는 친구에게 연락하여 "안 만나면 안 될까?"를 얘기하였다가, "사귀라는 게 아니고 그냥 만나보라고!"라는 친구의 현실적인 말에, '아차, 내가 또 쓸데없이 첫 번째 만남 이후의 과정까지 앞서 끌어다가 걱정하면서 이 상황을 회피하려는구나'를 느끼며 조용히 만남 거부 의사를 철회하였다. 그렇게 만남의 날이 다가왔다.
찬 바람 부는 11월 중순의 늦은 오후에 만남은 이뤄졌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안 그래도 적은 말수가 더 적어지는 터라, 거의 대부분 상대방이 하는 말에 호응을 해주는 정도의 반응이 이뤄지면서 어색한 시간이 흘러갔고 간단한 식사까지 마친 후에 첫 만남은 종료되었다. 본인의 독특한 형제 구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소개팅남의 얘기를 들으면서 '낯선 사람과도 대화를 잘하는구나, 예민하지는 않은 것 같네'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게 내가 가진 첫인상이었다. 그날 밤이었는지, 다음 날 오전이었는지에 온 첫 연락을 시작으로 단발성으로 끝날 것 같은 그 만남은 이어져갔다.
하지만 한 공간에서 같이 지켜보던 사람도 아니고 단 몇 시간 동안의 만남으로 연락이 이어지고 있기에,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계속 만나도 되는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 들었다. 그리고 날카로워 보이지 않은 인상임에도 왠지 무서운 사람으로 느껴지면서 이와 관련한 걱정도 함께 올라왔다. 분석가 선생님께 "왠지 무서워 보여서 그만 만날까 봐요."라고 얘기를 하였다가 엄청 혼이 났다. 낯선 사람에 대한 네 불안을 왜 멀쩡한 사람에게 전이시켜서 그 사람을 무서운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느냐고..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를 지켜낼 정도의 날카로움도, 만만하게 보이지 않아야 하는 부분도 필요한데, 왜 중간 없이 극단으로 나쁜 특성으로만 몰아가고 이분화시켜서 바라보냐고 말이다.
다시금 외부 대상을 바라보는 내 시각의 문제와 불안감이 대상의 본질을 잘못 인식시킨다는 반성과 함께 새로운 사람을 찬찬히 알아가겠노라며 100일 동안은 만나보겠다고 분석시간에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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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1일, 시작!' 이런 얘기도 없이 어찌어찌 만남은 꾸준히 이어져갔고,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부르지 않던 '오빠'라는 호칭을 쓰는 관계로 점점 가까워졌다. 그렇게 100일이 흘러가고 만남을 이어가면서도 뭔가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과 더불어 계속 만남을 이어가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분석 시간에 이런 마음을 다루면서 불쑥 나왔던 내 불만.
"이 사람은 예민하지 않아요. 제 기분이나 감정 변화를 잘 모르는 것 같고, 좀 무심한 거 같고요. 예전 그 친구는 제가 말하지 않아도, 어떨 때는 저도 잘 몰랐던 제 상태까지도 빠르게 알아차리고 챙겨줬거든요."
시간이 워낙 오래 지나 정확한 단어와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저러한 내용을 담은 이야기였다. 내겐 정말 저 부분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적응하기 힘든 부분이었기에 꼭 다뤄봐야 하는 문제이기도 했다. 내 기분을 잘 살피지 않고 무심하다는 느낌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애정이 부족한 것으로 연결되었고, 자동적으로 만남을 이어갈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기에...
두 번째 만남을 가졌던 때 나는 심리검사를 받아보겠냐며 물었고 소개팅남은 흔쾌히 해보겠다고 답하였다. 그렇게 MMPI(다면적 인성검사) 검사를 실시하였고 검사 결과는 어느 점수도 상승되지 않는 지극히 안정적인 프로파일로 나타났다. 객관적 자료로도 소개팅남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고 큰 기복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듯이 뒤집어 보자면 주변의 변화나 타인의 감정에 무심하고 둔감한 편이기도 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반면 예의 없는 이별의 주인공이던 전 연인의 프로파일은 그야말로 각 점수들이 널뛰기를 하는 패턴을 가지고 있었으니, 프로파일만으로도 예민함의 끝판왕이었다. 반추적이고 예민하고 타인의 언행 이면에 담긴 의미를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파악해내는 패턴을 가졌던 사람인지라, 본인 기분뿐 아니라 주변의 분위기나 타인의 감정까지도 민감하게 느꼈고 그만큼 심리적 피로도가 높아지니 외부 환경에의 관여를 최소화하고 제한된 관심 분야에만 초점을 두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객관적 검사 자료만 보더라도 두 사람은 극단적으로 다른 유형의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이성적으로는 무던하고 안정적으로 반응하는 부분이 좋다는 걸 느끼면서도 이전의 관계 패턴에 익숙해진 탓인지, 그 과민함의 순기능으로 내 기분을 알아차리고 내게 맞춰주던 것에 대한 그리움인지, 소개팅남의 저조한 민감성은 불만족스러움을 넘어서서 나에 대한 관심 저하, 애정 저하로 확장되어 부정적으로 해석되고 있었다.
"그럴 거면 쌍둥이를 찾지 그러니?"
띵.....!!!
분석 선생님의 말씀에, 정통으로 머리를 한 대 맞았고 충격은 번져갔다.
'쌍둥이를 찾지 그러니니니니~? 쌍둥이를 원했던 거니니니니~~~?'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었다. 쌍둥이라니, 그렇게 예의 없던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을 원한다고? 아니었다. 절대 동일한 사람을 원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관계 안에서 나타나는 내 패턴과 습관이 이전과 유사한 형태의 연애 상태와 연애 흐름을 만들어가고자 작동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렇구나, 내가 전 연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쌍둥이를 찾고 있던 거였구나'를 인지하는 순간, 복잡하던 마음이 정리되기 시작하였다. 더불어 그 개인의 기질인 민감성과 그 과민한 촉수를 나에 대한 애정으로 오지각하면서 내가 개인의 특성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고 오해석 했구나가 다시금 인지되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이전 관계를 객관화하여 지각하였고 문제를 파악해서 이제는 그 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만의 착각일 뿐, 내 무의식은 여전히 이전에 경험했던 과도한 민감성의 반응만을 애정이라고 정의하면서 잘못된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기를 원하였던 거였다. 마치 알코올릭 부모를 가진 사람이 알코올 문제를 가진 배우자를 만나는 것처럼, 익숙한 방식으로의 소통만이 애정이고 사랑을 확인하는 길이라고 단정하면서 말이다.
이 부분을 인식하자 소개팅남의 태도를 내 시각에 따라 잘못 해석하고 판단하면서 혼자 애정이 없는 거라며 폄하하였음도 자각되었다. 소개팅남이 보이는 무심한 태도는 그 사람이 가진 성향의 일부일 뿐 나에 대한 애정과는 무관하다는 것, 외부의 대상이나 분위기를 민감하게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그만큼 안정적이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부분이 내가 원하던 안정감과 신뢰가 만들어지는 기반이라는 것. 이렇게 정리가 이뤄지고 나니 새로운 관계가, 새로운 대상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내 모습과 감정, 행동을 살펴보며 이 관계가 이전과는 다르게 진행되고 이어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 과정이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익숙한 관계의 패턴을 벗어나 새로운 대상과의 다른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 자체가 내겐 어려움이었고 도전이었으니까. 그럼에도 한 사람을 믿어가는 그 과정이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고 내 부모처럼 잘못된 관계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일정 부분 걷어주었다. 더불어 내 부모와는 다르게 안정적이고 평안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거 같다는 기대도 조금씩 생겨났다.
그렇게 두 번째 연애는 내가 가진 역기능적이고 비합리적인 신념을 하나하나 버리고 바로 잡으면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