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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솜 Oct 30. 2022

8. 정신분석을 시작하다 _ 휘청거리는 여자의 심상


                                               © jeremybishop, 출처 Unsplash




예의 없는 이별은 수련 1차 5월의 어느 날 이뤄졌다. 정말 소소한 다툼으로 헤어진 그날 이후 여러 날 연락하기를 하던 어느 날, 이쯤이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굉장히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리고 그 마음을 그대로 핸드폰 메시지로 남기고 이별을 고했다. 그는 내게 끝까지 예의 없었지만, 그렇다고 나조차도 이 인연을, 이 만남을 그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까지가 인연이었음을, 그동안 고마웠음을, 그리고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메시지로나마 인사를 남겼다. 비언어적인 방식인 상황 회피로 이별을 전달한 것은 그였으나, 나는 이 이별에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언어라는 그릇에 이별을 담아 한 시절의 추억에 대한 예의를 표하며 그렇게 과거의 인연을 보내주었다. 수련 1년 차의 봄은 그렇게 잔인하게 흘러갔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더니, 5월도 잔인했다. 이렇게 꽃 피는 따뜻한 봄날에 이별이라니... 안 그래도 하루 2-3시간의 수면시간으로 피폐한 생활에 이별, 버려짐이라는 최악의 한 방울까지 더해지자, 이보다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쓸쓸하고 힘겨운 봄이었다.



임상심리 수련 생활은 보고서 판독, 스터디, 콘퍼런스, 저널 리딩 등의 스케줄이 빡빡하게 돌아가는 생활이었다. 새로운 누구를 만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늘 바쁘게 수련 2년 차를 마무리하던 시점 즈음이었을까? 멍하니 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어떤 이미지가 반복해서 떠올랐다. 어딘지 모르는 평평한 길을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이었는데, 걸음을 디딜 때마다 마치 돌부리에 차이는 것처럼 발을 접질리고 휘청거리며 걷는 이미지였다. 어깨가 출렁거리며 한쪽으로 쏠리고 넘어질듯이 걷는 여자의 뒷모습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부유했다. 멍하니 있을 때마다, 지하철을 타고 창밖으로 스치는 어두운 공간을 마주할 때마다 동일한 이미지가 순간순간 떠올랐고, 몇 달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게 내 뒷모습이겠구나, 내가 저렇게 서있기 어려울 정도로 마음이 힘들구나 하는 게 자각되었다.



그때 상담을 지도해 주시던 정신분석가 선생님께 분석을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수련생 급여로는 버거운 분석비용이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내가 걸어가는 길목마다 돌부리가 되어 내 걸음을 휘청거리게 만들고 내 발목을 접질리게 만들어 종국에는 발목을 부러뜨리겠구나 하는 불안감과 위협감이 느껴졌다. 지금이 아니면 해결하고자 시도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과 언어화되지 못한 채 심상으로 내게 위급함을 알리는 내 마음의 신호를 무시하면 안 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명확해지자, 여러 차례 분석가 선생님께 당신이 아니면 분석을 받지 않겠노라는 투정을 부린 끝에, 그렇게 나는 정신분석을 시작하였다.



분석과정은 쉽지 않았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임상심리전문가 수련과정의 2년 차 과정의 끝을 지나가던 시점이었고 내가 상담자가 되어 여러 차례의 상담을 진행해오고 있었음에도, 내담자가 되어 상담 안에서 내 마음과 생각을 살펴보고 언행 이면에 담긴 의식 하 수준의 내 의도와 욕구, 그리고 적나라한 내 민낯을 직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때로는 50분의 분석 시간 내내 울기만 하다 끝나기도 하였고 어떤 날에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를 몰라 침묵만 유지하다가 방을 나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분석가 선생님을 향한 불만과 화를 담아둔 채 분석 시간 내내 끙끙거리다가 저렇게 성질내고 골만 낸다며 혼이 나기 일쑤이기도 했으며 언어화하지 못한 어려움들로 분석이 끝나서까지도 두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내 안에 꾹꾹 억압된 채 내 에너지를 뽑아가던 내 부모의 이혼, 그리고 일방적인 잠수 이별로 헤어진 첫 연애에 대한 억울함과 화, 대상에 대한 분노 등을 힘겹게 겨우 겨우 끄집어냈다. 그리고 내 경험을 경험하는 나로 서가 아니라 관찰하는 나로서 다시 한번 바라보고 객관화시켜 재해석 작업을 진행해갔다.



노을 지는 하늘을 혼자 바라보는 뒷모습으로 기억되는 쓸쓸한 어린아이의 모습, 부모의 잦은 다툼과 공포스러운 상상으로 얼룩진 성장기, 내 삶의 고통인 결정적 사건, 그리고 잠수 이별로 버림받았던 첫 연애의 실패 등을 다루는 그 작업은 너무나도 어려웠고 때로는 고통스러웠다. 때로는 비싼 분석비를 지불해가면서까지 이미 지나간 일들을 굳이 다 소환하여 잘잘못을 따지고 들쑤시고 들여다보는 이 지난한 작업을 왜 해야 하나 싶기도 하는 저항에 부딪히기도 하였고, 분석가 선생님께 왜 내가 아닌 내 부모의 입장에서, 헤어진 연인의 입장에서, 내 주변의 누군가의 입장에서만 서서, 왜 그들과 한 편이 되어 그들을 변호하고 나를 공격하느냐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싸우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분석을 종결하라는 칼날 같은 뾰족한 말들을 수차례 들으면서도 나는 2년 여간의 분석을 진행한 후에야,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음을 인지하지만 이제는 나 스스로 해보겠노라며 분석을 종결하였다.



분석 과정이 6개월 정도 지났을 즈음부터, 돌부리에 차이듯 휘청이며 걷던 여자의 뒷모습은 내 머릿속을 부유하지 않았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는 하이힐을 신고도 편안하게 걷는 여인의 뒷모습은 아니었지만, 분석의 중반부가 흘러가면서부터는 운동화를 신고서 걸어가는 내가 자각되었다. 하이힐이 주는 화려한 자신감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냥 이대로의 나도 나쁘지 않다고 수용하며, 그리고 문제가 있지만 그럼에도 풀어갈 수 있는 수수한 나로서 지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한 맹점이 있었으니, 가까운 관계 맺기였다. 분석을 시작하고 첫 번째 연애에 대한 작업이 어느 정도 이뤄진 즈음부터, 분석가 선생님께서는 새로운 만남을 두려워하지 말고 시작해보라고 권하셨지만 내겐 여전히 두려운 영역이었다. 그러던 중 소개팅을 해보라는 친구의 주선이 들어왔다.



첫 번째 연애가 예의 없게 끝나버리고 2년 6개월이 지난 11월의 토요일,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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