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이별
이 이야기를 왜 쓰려는 걸까를 몇 번이나 생각해본 결론은, 스스로 병리적 상태였다고 규정하는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정리하고 이젠 이별하고 싶은 마음이지 않나 싶다.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나를 힘들게 한 그들을 향한 몇 번의 모진 말들과 몇 번의 어설픈 화해를 통해 그 시절의 첨예한 갈등이나 어려움들이 일부분은 희석되고 지워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이따금씩 떠오른다.
갈등의 태생은 쌍방에 대한 의심, 불신이었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 누구의 말이 편집증적인 의심인 것인지 합리적인 의심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서로의 외도를 의심하며 쏟아내는 비난이 멈추지 않던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향해 서로의 말이 참이라고, 저 인간은 거짓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설득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내가 서로의 편에 서서 당신들을 대신하여 비난해주길, 당신들의 주장에 힘들 실어주기를 바랐다는 것만은 명확한 사실이다.
내 부모의 결혼생활은 내 나이 17살 때 종결되었다. 이혼은 가족이 함께 살던 공간에서 부친만 제거되는 과정이었으며, 드디어 더 이상의 다툼이나 비난도 없고 칼을 숨겨야 하는 불안감도 없는 생활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었다. 가족이 다 함께 할 때면 누리지 못하였던 편안함을..
성장과정에서 가장 신뢰해야 하는 대상들의 갈등과 불신을 지켜보면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대인관계 형성과 관련하여 여러 어려움을 경험하고 발달과업의 성취에도 방해를 받는다. 모든 경우의 수가 그러하듯이 사례마다 각기 다른 결과물을 도출하고 스스로 극복되는 경우들도 물론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심리학이라는 공부와 정신분석이란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이만하면 괜찮은 관계를 형성하고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 긴 과정을 모두 서술할 수는 없었지만, 부모의 갈등에 노출될 때 경험할 수 있는 심리적 상태들과 정신분석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되던 몇몇 지점들을 전해보고 싶었다. 더불어 연인 관계의 형성 과정에서 경험하는 어려움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도 함께 얘기해보고 싶었다.
내 이야기는 부모를 비난하거나 헤어진 인연을 원망하고자 함이 아니다. 단지 그들의 불신과 갈등의 과정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야만 했던 한 아이에게 박히게 된 불신에 대한 이야기와 그 회복과정을 풀어내고, 이제는 그 시절을 한 단락 묶어내어 이별하려는 과정이다. 어쩔 수 없이 내 이야기에 초대되어 비난을 받게 될 내 부모나 이전의 인연이 변명할 자리가 마련되지는 않기에, 이야기의 일부분은 변주되거나 왜곡되었을 수도, 잘못된 기억의 나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기억은 각자의 편집기에 따라 재단되어 저장되고 그때의 감정에 따라 달리 채색되니, 나와 그들의 기억은 전혀 다른 모습의 그림일 거라 생각한다. 그들의 모습보다는 그 안에서 성장하였던 한 아이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는 이 과정을, 그리고 불신의 회복을 밟아나가 이제는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은' 결말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를 함께 읽어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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