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시각에서 이혼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내용이 있다.. 바로 아이들.
그러면서 동시에 말한다. 부모의 갈등에 노출하는 건 정서적인 학대이니 이혼하는 게 낫다고..
물론 맞는 말이긴 하다. 부모의 갈등과 폭력에 노출된 채 불안정하게 성장하면서 불안감과 위협감, 그리고 부모의 부적절하고 공격적이며 부적응적인 의사소통, 감정표현, 문제 대처 방식을 학습하는 환경에서 성장하느니, 오히려 부모 중 한 명과 물리적으로 분리되면 불안정하고 불안한 요소들의 일부가 소실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하지만 아이들의 마음이 어른들의 일방적 시선처럼 그렇게 간단할까?
어린 나이에 안전 기지(secure base)의 해체와 세상에서 처음 관계를 맺은 대상과의 헤어짐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부모가 유발하는 정서적-물리적으로 공격적이고 가학적인 환경에 있었던 경우라면, 가학자인 부모 중 한 명과의 분리가 이뤄지는 이혼만으로도 정서적 안정감을 가질 수 있게 되니, 오히려 이러한 경우라면 권고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성장기 동안 내 환경이 내 친구들의 환경과 다르며 내게는 엄마나 아빠가 가용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의 부재로 인해 채울 수 없는 빈자리를 가졌다는 점을 인식해 가면서 위축되고 결핍감을 가지며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갈등은 당사자인 두 사람의 갖는 욕구의 불일치가 단초가 되어 불씨를 만들어내고, 활활 타오르는 그 불길에 두 사람이 가지던 애정마저도 소실되면 두 사람은 헤어짐, 즉 이혼으로 귀결된다. 배우자의 폭력이나 경제적 문제로 인해 나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이혼을 결정해야 하는 경우들도 있지만, 이보다는 부부인 두 사람의 오랜 갈등 또는 외도로 인한 배신과 신뢰의 상실로 진행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이혼 과정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의 상처와 고통을 고려하지만, 이혼이라는 고통과 문제에 집중하기에 통상 아이들의 의사까지 수렴하면서 의사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배우자가 아이들에게는 부모로서의 엄마 또는 아빠의 역할을 그나마 수행하는 경우라면, 정서적 이혼 상태에서 지내는 경우들도 있다. 더욱이 아이들이 이혼을 거부하고 아직까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심리적 공간(여유)이 내게 있다면 말이다. 물론 정서적 이혼도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이혼의 문제는 아이들에게 그 어떤 선택권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이혼을 거부한다고 해도 부모의 깨진 애정과 신뢰를 이어 붙일 수 없으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내 존재가 버려질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이는 순간인 만큼, 그나마 안정적으로 의존하며 살 수 있는 부모가 나를 선택해주기를 바라야 하는,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또 다른 선택을 기다려야만 한다. 헤어짐을 막을 수도, 헤어짐의 결과로 한 부모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상황도,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선택권도 없다. 그 무엇도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을 겪으면서, 아이들은 통제권 상실에 대한 무기력감과 화를, 가정이라는 안전 기지의 해체로 인한 불안정감과 불신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경험할수록 심리적 외상과 어려움의 뿌리는 깊어지고, 자기 지각의 발달에도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된다.
이혼 과정을 겪는 부모들도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으며 스트레스와 정서적 고통에 압도되는 만큼, 그 시기에는 종종 아이들을 향한 부적절한 언행이 이뤄지기도 한다. 특히 아이들을 향한 비난과 원망이 담긴 언어적 폭력이 자주 이뤄지는데, 대표적인 것이 "너(너희들)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이다. 마치 이 모든 일들이 자녀인 나로 인해 이뤄진 것처럼 길들이는 저 말 때문에, 많은 아이들은 죄책감을 갖게 된다. '내가 말을 잘 들었다면, 내가 좀 더 좋은 능력을 가졌다면, 내가 예뻤다면' 등등..
불필요한 책임감과 죄의식을 가지면서 성장한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을,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억제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나를 개방해도 수용해줄 누군가가 없다는 외로움과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욕심을 부리는 것이라는 자책감을 갖게 된다. 나는 잘못한 사람이고 그렇기에 나를 억제해야지만 외적인 안정이 이뤄진다고 무의식적으로 학습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와는 반대로 내가 어찌해도 이 관계를 바꿀 수 없다는 통제권 상실은 대상을 향한 화를 일으키면서 외부로는 반항적이고 적대적인 성향으로, 내부로는 스스로를 폄하하며 손상시키는 태도로 나타난다.
그러니 제발, 본인들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전가시키고 책임 지우지 말기를 바란다.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만으로도 이미 세상의 안전 기지를 상실한다. 그리고 나를 양육해줄 한 부모의 선택을 기다리며 경험한 유기 불안은 이후 발달과정 중에 만나는 수많은 관계들에서의 부적응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니 부모의 이혼은 어른들의 문제임을, 그리고 그 문제로 인해 안정된 환경을 끝까지 보장해주지 못하고 책임져주지 못한 당신들의 과오를 자각하며, 진실되게 아이들에게 너희의 존재가 문제가 아님을 반드시 설명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꼭 알려주기를 바란다.
부모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