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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솜 Oct 30. 2022

5. 스무 살이 되면 죽을 거야.


집안의 변화와 함께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가 진학한 학교는 당시 비평준화 학교로 요즘의 자사고와 비슷한 형태였기에 인문계 학교들보다 선지원하고 합격하는 방식으로 진학하는 곳이었다. 거주하던 시 전체에서 지원하는 만큼 다양한 학교에 재학하던 아이들로 구성되었고, 거주지 인근을 넘어서 생활하던 아이들로 구성된 고등학교 생활은 다양한 자극들을 주었다. 더불어 중학교 때의 나를 아는 사람들도 거의 없는 공간. 새로운 공간과 대상이 주는 긴장감과 함께,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 있으니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내 가정환경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도 느끼며 새로운 생활이 시작이었다.



일정 성적 이상을 유지하던 친구들이 진학한 학교이던 만큼, 고등학교 진학 후 첫 시험의 성적은 형편없었고 똑똑한 친구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었다. '카오스'를 읽으며 우주와 나비효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밀란 쿤테라의 '농담'을 읽으며 서로의 느낌을 공유하던 모습. 제한된 지식에 머물러있던 내게 광범위한 지식들의 접촉은 낯설고 문화충격적이었다. 안 그래도 부모의 이혼소송을 지켜보며 내적으로 위축되고 무기력하던 나는 더 위축되고 작아졌다. 다행히 그들의 옆자리를 함께 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공유하고 흡수하며 내가 알던 세계가 확장해 가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동시에 내가 알지 못하는 지식과 경험을 가진 친구들을 향한 열등감과 결핍감도 심화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못나지 않았음을 감출 수 있는 작가들과 작품들을 찾아 읽으며 어설픈 비평을 늘어놓고 마치 다 이해하는 것처럼 지적 허영을 부려보기도 하였다.



우연하게도 내가 읽는 작품의 작가들은 갑작스럽게 요절하거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개인사를 가졌었다. 기형도, 이연주, 전혜린, 루 살로메 등등... 내 어두운 그림자가 그들의 글들을 알아보고 끌린 것인지, 그들의 어두운 분위기가 내 그림자를 끌어당겼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현재 이 생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작품은 묘한 환상을 일으켰고 암묵적인 동경을 심어주기에 적절하였다. 이 지지부진하고 의미 없는 세상, 늙어가는 추함 없이 이렇게 아름다운 한 때,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을 박제해놓고 떠나는구나. 내게 그들의 죽음은 그렇게 다가왔다. 빛나던 한 시절의 깔끔한 봉합. 오염되지 않는 모습의 박제, 그리고 주변 대상을 향한 최고의 처벌과 배신의 선사..! 불꽃같이 타오르고 사라지는 결말, 얼마나 멋지던가!



내가 한없이 작아 보이고 무기력하게 느껴지던 시절, 별로 가진 능력이 없어 매번 바닥을 치던 그 시기에, 해체된 가정과 한부모에게는 버림받았다는 손상감까지 더 해진 나에게, 삶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최소 60년은 살 거라는데(지금은 100세 인생을 논하니, 40년이나 더 길어졌다.) 긴긴 그 시간을 살아서 무엇 하나 하는 무망한 생각들이 늘 머릿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내가 읽은 작품의 작가들처럼 화르르 타오르고 찬란하게 이별하는 건 얼마나 매력적인가. 20살이 되기 전에는 죽겠다는 다짐을 얼마나 많이 얘기를 했는지, 친한 친구에게 받은 생일선물인 기형도 시인의 시집 앞에는 "20살까지만 살겠다는 말은 이제 그만하고.."라는 친구의 메시지가 아직도 남아있다.



내게 죽음이나 자살은 막연히 이루어내고픈 소망이었다. 죽음은 내 앞에 놓인 좌절감과 무기력감, 내가 어찌해도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무망감, 울적함, 주변 대상을 향한 화, 분노 등을 일시에 쓸어내 버릴 수 있는 쓰나미 같은 도구였다. 또한 나를 배신한 부모에게 죄책감을 전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도 생각했다. 자식을 앞세워 보냈다는 낙인을, 무엇보다도 외도로 가정을 깬 주범이면서도 자기 몫을 챙겨가고자 법적 분쟁을 일으켜 우리를 괴롭히던 그 사람에게 철저하게 죄책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장문의 유서도 써놔야지... 죽음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아졌다. 어차피 그다지 살고 싶지도 않은 삶인데, '그래 어디 당신들 죄책감이나 한껏 느껴봐라, 그리고 이렇게 밖에 부모 노릇을 못한 걸 반성해라'라고 악다구니 쓰지 않고도 더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읊조리듯 전해줄 수 있는 방법은 자살이 아닐까? 어떤 방법이 좋을까, 손목을 그을까? 한데 그건 해보니 살짝만 그어도 아프더라. 이미 중학교 때 친구의 자해를 따라 해 본 적이 있어서 그 고통은 알고 있었다. 죽으면서도 아파야 한다면 패스. 죽음까지 아프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수면제를 먹자. 가장 덜 아프고 잠들면서 이별이니 가장 이상적일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죽음을 소원해왔다.



다들 꽃 피우는 한창의 20살에도 내겐 세상은 늘 비가 내리기 전의 어둑한 하늘과 스산한 바람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더욱이 대학 입학 이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부친에게 가서 생활하던 대학 1학년, 대학 2학년에 찾아온 IMF의 경험은 나를 더 움추러들게 만들었고 외부와의 교류를 제한하면서 내 안으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우울함과 무망감, 어두움에 침잠된 생활이 길어지는 만큼 죽음을 다루는 작품이나 어두운 내적 세계를 보여주는 그림들을 반복적으로 읽고 보면서 외현적 모습과는 달리, 내적으로는 죽음과 더 가까워졌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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