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요란한 이혼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각해왔다. 세상에 사람 마음만큼 간사하고 쉽게 변화하는 건 없다고. 결혼이라는 합법적 제도로 묶여있는 부부 사이에도 배신이 쉬운데, 서로 좋아한다는 말 몇 마디로 그 관계가 진짜로 지속될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전혀. 나는 사랑을 영원한 것이 아니라 변질되고 퇴색되는 마음이라고 정의하였다. 까미유 끌로델은 순금으로 왈츠의 조각상을 만들며 찬란하게 아름다운 사랑의 한 때를 그 순금처럼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완성하였겠지만, 결국 그녀와 로뎅의 사랑은 그녀의 일방적 희생으로 끝나버리고 그녀는 처참하게 버려져 정신병동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았던가. 그래 처음이야 핑크빛 설렘이겠지.. 근데 그 마음이 얼마나 지속될까? 그리고 그 끝은 얼마나 지저분한 진흙탕일까? 일방적인 버려짐이라면? 난 그 지난한 이별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잠깐의 설렘을 느끼자고 끝이 예정된 그 관계를 시작하고 유기 불안을 견뎌낼 마음이 내겐 없었다.
남녀공학에 남녀 합반이었던 고등학교 시절, 사귀던 커플들이 많았다. 좋아하던 마음이 송골송골 샘솟고 작은 자극에도 마음이 들썩거리던 그때, 이성이 함께 있으니 커플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청소년기 시절이었다. 내 친구들도 좋아하는 상대가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 가슴앓이하기도 하고, 서로의 마음이 통하여 커플이 되었다가 헤어지고 다시금 새로운 연인을 찾아가면서 그렇게 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중에는 고교를 졸업한 이후에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까지 꾸린 친구들도 있으니, 진짜 그 시절의 사랑이 철부지 아이들의 장난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의 설렘과 반짝임이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마음속 그어진 분리선 반대편에 서서 방관자처럼 그들을 관찰하였다. 내 앞에서 얘기하는 그들의 짝사랑과 첫사랑의 안타까움을 들어주고 이해하는 듯 반응하였지만, 그 부질없고 끝이 예정된 관계에 왜 이다지도 에너지를 쏟아가며 몰입하는지 이해되지는 않았다. 더불어 가끔씩 내게 설렘의 마음을 보여주는 상대에게는 '어디 그 감정이 언제까지 변하지 않는지 내 지켜보마' 하는 경계적 태도로 밀어내니, 애정관계는 시작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고교 시절을 보내고 대학 시절까지, 모태 솔로로 지내왔다. 그렇다고 미팅이나 소개팅도 안 했을 거라 생각하였다면 그것은 오산. 소수의 만남이었지만 몇 번의 미팅도 소개팅도 있었고, 남자사람 친구들도 많았다. 그리고 몇 차례의 고백을 받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내 답은 하나였다. "왜 내가 좋아? 그 마음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다. 지금 순간의 잠깐 감정이겠지. 변할 거야 네 마음." 지금 생각해보면 지독히도 유치하고 뭐 그리 잘난 척하며 저런 반응을 보였을까 싶다만, 그때의 내겐 여유가 없었다.
대학 시절, 지도교수님은 연애하지 못하는 내 동기들과 내게 '연애 장애'라는 진단을 내리셨다. 연애 장애의 세부 진단 준거까지는 열거하지 않으셨지만,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거나,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헤어짐이 두려워 관계를 시작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첫 번째 진단 준거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결국 애착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것인데, 어린 시절의 중요한 대상에의 버림으로 나는 애착관계 형성이 어려웠다. 부인하고 싶었지만 여지없이 나는 연애 장애의 진단에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내게는 애정 관계의 시작은 끝(헤어짐)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관계의 서막처럼 느껴졌고, 상대가 오로지 나만을 애정 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없으니 애착 관계의 첫 단추가 채워질 수가 없었다.
현재 임상심리를 업으로 삼고 일하는 사람으로서 당시의 나를 진단해 본다면, 나는 연애관계 설정에 있어서 만큼은 회피성 특성(avoidant trait)이 우세했던 사람이었다. 전반적인 관계 형성에서의 어려움은 없었지만, 연애관계에서 만큼은 형성된 관계의 단절이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에 관계 형성을 회피해오던, 그래서 애정관계의 시작이 이뤄지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내게 호의를 보이며 애정을 보여도 그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애정이 상실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었고, 그 기저에는 나를 깊게 알아간다면 떠나갈 것이라는 비합리적 사고가 자리했었다. 내 부모도 나를 끝까지 사랑해주고 지켜주지 못했는데, 본인의 애정을 찾아서 또는 본인의 사정에 따라서 나를, 우리를 버리기도 하고 서로에게 보내버리기도 했는데, 그깟 잠시 만나는 관계가 그 무슨 대단한 관계라고 너만을 사랑한다는 그 말을 믿겠는가. 낮은 자존감은 이렇게 애착관계의 시작마저도 방해하였다.
어차피 모든 관계는 헤어짐이 있다지만, 나는 그 헤어짐을 만남의 자연스러운 한 일부가 아닌 서로의 바닥이 어딘지 알아보는 싸움의 종착지로 잘못 학습하였다. 부모의 치졸한 결별 과정과 배신의 목도는 상대의 변심과 배신에 의해 버려질 것이라는 부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생각을 강화시켰다. 주변의 간접 경험을 통해 비합리적 생각을 강화시키는 만큼 새로운 관계의 형성 자체를 차단한 채 지내왔으니, 기존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할 수 있을 기회 자체가 부재하였고 기존의 내 잘못된 믿음과 생각은 더 공고해졌다. 더불어 관계가 회복되고 헤어짐 이후에도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만남이 가능하다는 생각도 그때는 갖지 못했다.
내게 관계는 만남과 헤어짐, 애정과 배신이라는 이분화된 관계로만 지각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내게도 첫 번째 연애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