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은 대부분 한 순간에 화르륵 일어났다. 어떤 맥락과 어떤 말에 불꽃이 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 사람이 상대방의 행동을 의심하면서 갈등은 점화되었고, 대부분 '그놈 또는 그년'과 뭘 했느냐가 추궁의 시작이었다. 시작의 기미가 느껴질 때면, 혹여나 저 싸움의 끝이 피로 물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때로는 부엌칼과 망치 등을 내 방에 숨겨놓곤 했다. 그리고는 그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의 소리를 지워낼 수 있게 라디오나 노래를 크게 틀었다.
그들이 싸우는 동안, 나는 여러 번 내 부모의 죽음을 보았다. 그때그때 가해자와 피해자는 바뀌었다. 어떤 날은 아빠가 엄마를 때려 숨지게 하였고, 어떤 날은 엄마가 아빠를 칼로 찔러 피가 낭자해지는 장면들이 불쑥불쑥 찾아들었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내가 상상한 그 장면을 마주하게 될까 봐 두려웠고 한편으로는 저 끝에 나도 죽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함께 올라왔다. 동시에 내 방에 숨겨놓은 칼과 망치를 보면서 그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혼자 되뇌기도 하면서, 노랫소리로 그들의 발악하는 소음을 지워내고 이 시간이 어서 종결되기만을 그렇게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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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동생은 어찌 그 상황을 견뎌냈는지 기억이 없는데, 아마도 당시 초등학생 겁 많던 그 아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대부분 그렇게 2-3시간 정도가 지나고 싸움이 끝나갈 때면, 부친은 늘 동생을 앙칼지게 불러내었다. 그리고는 자정이 가까운 그 시간에 국민학교 3-4학년에 불과하던 남동생에게 담배를 사 오라고 명령했다. 지금처럼 편의점이 있던 시절도 아니었고, 단독주택이 밀집된 주택가의 슈퍼마켓들은 대부분 밤 10시를 전후로 문을 닫았다. 집에서 가까운 슈퍼마켓이 문을 닫아 담배를 사 오지 못한 채 동생이 돌아오면 다시 사 오라며 득달같이 아이를 집 밖으로 밀어내었고, 그럴 때마다 동생은 다시 울면서 어둠 가운데 열린 가게들을 찾아내어 담배를 사 와야 했다. 그렇게 두 번째 다시 나가게 될 때면 그 길을 따라나섰다. 동생이 경험하는 그 두려움과 공포를, 그리고 눈물을 차마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싸움이 없을 때면 이만하면 평화로운 가정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엄마는 뜨개질로 내 인형 옷을 종종 만들어 입혀주었고 전기밥솥을 이용해서 카스텔라며 떡 등을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생일 때는 친구들을 초대해 떡 벌어지게 한 상을 차려서 축하 파티를 만들어준 것도 엄마의 솜씨였고, 그 시절 다른 집에는 없던 피아노를 구입해서 직접 피아노를 가르쳐준 것도 엄마였다. 아빠는 사업하는 사람 특유의 사회성을 가지고 있어서 분위기를 재미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종종 하였다. 내가 피아노 콩쿠르 대회를 나갈 때는 회사 봉고차를 직접 운전해서 학원 아이들을 다 데리고 콩쿠르 대회에 가주는 자상함을 보여주기도 했었고, 그때는 흔치 않았던 가수의 콘서트를 가라며 티켓팅을 해주겠다고 하던 개방적인 아빠이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볼 때 부모님 두 분을 각각 떼어서 생각해보면 나름 부모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이만하면 괜찮은' 분들이었다. 물리적인 환경도 안정적이었다. 특히 88년 건축업 붐이 일어나던 시기에 엄마가 건축업에 뛰어들면서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고 당시 국민학생이던 내 수준에서 원하는 것들은 대부분 할 수 있었다. 맞벌이로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시간들을 경제적으로 충족시켜주려 한 부분들까지 더해져, 하고자 하는 것들에는 지지적이었다. 생각해 보건대, 안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거의 없었으니, 원하는 것은 대부분 가능하였다.
다만 두 사람을 각각 따로 접촉할 때만 나름 평안한 교류가 가능했다. 함께 있는 그들과 각각을 만나는 개인으로서의 내 부모는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었고, 내 안에는 통합되고 일관된 부모의 상이 자리잡기 힘들었다. 분명 각각의 모습은 이만하면 괜찮은, 나쁘지 않은 부모였지만, 비난을 쏟아내며 육탄전을 불사할 때의 그들은 낯설고 야만적이며 이해 불가한 존재로 변신했다. 이분화된 그들의 모습을 통합하기에는 혼란스러웠고 내 안에는 불안정하고 양가적인 부모의 상(figure)이 자리했다. 완전히 미워할 수 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그래서 늘 부모를 마주하는 일은 불편하고 힘들었다.
차라리 이혼을 하지,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할까.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의 싸움을 들으면서 늘 생각했다. 차라리 이혼을 하지.. 이혼을 해라.. 내게 이혼을 소망하게 만드는, 그래서 죄책감을 일으키는 그들이 너무 미웠다. 그들을 향한 욕지거리를 하면서 둘 중에 누구 하나가 죽기를 바라는 못된 생각까지 들 때면 너무 고통스러웠고, 그런 내가 무서웠다.
불필요한 죄책감은 그렇게 내 안에서 깊은 뿌리를 내리며 자라났다. 서로를 살인자로 만들어버리는 내 공상은 평안한 순간에도 이따금씩 나를 괴롭혔고 이런 생각을 멋대로 해버리는 나는 사랑받을 수 없을 거라는 비합리적인 믿음을 만들어갔다. 그럴수록 그들과의 접촉은 나를 힘들게 했고 이 불안감과 고통이 외부 환경으로 확장되면서 세상에 대한 불안과 대상에 대한 불신을 형성해갔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과 대상의 손상... 어디에도 안전감과 애정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굳건해질수록 나를 보호하기 위한 외피를 두껍게 만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당위적 명제들이 늘어갔다. 최대한 나를 노출하지 않을 것.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것. 10대 초반의 나이부터 생겨난 이 생각은 작은 돌의 크기로 시작되었다가 싸움의 횟수가 증가할 때마다 하나 둘 더 쌓이면서 견고한 담을 형성해냈다.
불행한 결혼의 유지와 이혼 중 어떤 것이 더 나을까...
이 터널을 지나온 자녀의 입장에서 둘 중 어떤 것도 나은 건 없다. 물론 부부 모두에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한 때는 사랑이라 믿었던 대상과 가장 밑바닥을 확인하면서 헤어지는 이혼이 그들에게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니까. 다만 그들은 선택권이라도 있지, 아이들에게는 그마저도 없다.
Secure base의 기능이 손상된 가정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자녀들에게 손상감과 불안정감을 유발하고 대상과 세상에 대한 불신의 씨앗을 흩뿌리게 된다. 다만 이혼 과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이혼에 대한 부모의 자세에 따라서 아이들이 받는 상처는 일부 경감될 수도 있다.
이혼을 고려한다면, 다음 두 가지는 꼭 고려되었음 한다.
첫 번째, 이혼을 숨기지 않아야 한다.
간간이 부모 중 한 명이 집을 나가는 형태로 이혼이 이뤄지는 경우들이 있다. 대부분의 변명은 지방으로 부모 중 한 명이 일을 위해 떨어져 살아야 하며 그렇기에 같이 거주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물론 처음에는 아이들이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내 아이들도 알게 된다, 우리 부모가 이혼했음을. 다만 입 밖으로 꺼내어 묻지 않을 뿐이다. 이혼 전의 불안정한 분위기를 몸소 경험했던 만큼 아이들도 부모의 갈등이 크다는 것을, 그리고 더 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한 부모의 상실은 부모의 이혼 과정을 뜻한다는 것을 체감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거짓을 말하여 아이들이 실망하고 불신을 갖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혼을 고백할 때에는 부모 두 사람이 함께 아이에게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해주기를 권고한다. 그리고 이때만큼은 서로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지낼 수 없게 되었음을 설명해주고, 아이가 받게 되는 상처에 대해 미안함과 온전한 가정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한 부모의 부족함을 표현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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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정서적 이혼 상태라면 물리적 이혼을 고려하는 게 낫다.
같은 공간에 거주한다고 가정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교류하지 않는 부모의 냉랭함과 무거운 가정 분위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에게 감당하기 힘든 정서적 어려움을 유발한다. 더불어 아이들에게 필요 이상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 불필요한 자책감과 조숙함 등을 발달시키며, 정서적 이혼 상태인 형식적 부부관계와 가정의 유지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부모에 대한 양가감정을 갖게 만든다. 여기에 "너희들 때문에 이 가정을 유지하느라 내가 참아내느라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는 원망까지 덧붙여진다면 그야말로 아이들을 죄책감과 양가감정의 절벽에 위태롭게 세우는 것이다. 엄마, 아빠, 집은 존재하지만 그 어느 것도 심리적으로 가용할 수 없는 얼음집에서 생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에 늘 긴장한 채 지내게 된다. 더욱이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노출하게 되면 혹여나 버려지지 않을까 하는 생존에 대한 공포가 동반되면서 아이는 심리적 고통을 부인하거나 억제하게 되고 그만큼 자신의 감정을 살펴보고 언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의 발달은 저하된다. 더불어 외부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개방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렵게 된다.
따라서 형식적인 가정이나마 유지하고자 노력한다는 알량한 변명과 자기 위안은 그만하고, 부부간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전문적인 치료적 접근 등을 모색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