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다른 해보다 일찍 차례를 지내고 돌아왔다. 기독교 집안인 어린 조카들에게 보여준다는 이유로 전날 11시에 시작해서 음복까지 12시경에 마친 것 같다.
올해는 추석 전 연휴가 길어서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앞으로 부모님 묏자리는 어떻게 할 것이며 제사는 어떻게 할지 등이 주된 주제였다.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 묏자리 근처에 대나무가 침범해 와서 자리를 옮겨야겠다."라고 하신다. 속으로 생각하길 '영화 <파묘>의 후유증이군...' 했다. 아버지는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으셔서 동호회 활동도 하고 계신다
부모님도 이제 시골 할머니댁 집이 팔리고 나니 생각이 달라지신 것 같았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아직 제사를 지내는 가정과 지내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가정이 있었다면, 이제는 조상의 의미를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와버린 게 아닌가 싶다. 핵가족화되어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하고. 과거보다는 현재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고와 환경 때문이지 않나 싶다
어찌 되었든,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제사를 강요받던 시대가 지나고 있다. 대부분 가족끼리 대화도 못하고 여자들은 음식 장만하다 지치고 남자들은 술잔치를 하는 풍경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마저도 볼 수가 없다.
시골의 환경과 제사가 끔찍해서 아예 연을 끊은 두 며느님이 친가 쪽 큰집에 한 분, 외가 쪽 큰 집에 한 분 계시다. 그분들의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새로운 세대는 이미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제사는 안 지내리라... 다짐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렇다.
다만 외식과 형식을 폐하신 예수님을 따라 신령한 예배를 드리셨던 것처럼 진정으로 고인되신 조상님들을 기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마음으로 추모하는 것 마저도 어려워 보인다. 조부모님 이상의 윗세대와의 추억이 없으니 말이다.
어렸을 때 할머니와의 추억이 유독 많았던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라도 예수님을 믿고 돌아가시길 바랐다.
할머니는 요양원에 오랜 시간 누워계셨는데 어느 날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러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의사가 하루를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고 하셨다. 나는 마음이 급해서 내려가는 동안 계속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마지막 가시기 전에 '예수님을 꼭 시인하게 해 드려야겠다.' 마음먹고 내려갔다.
그러나 '죽을 고비이시니 내 말을 들으시겠지.' 하는 간사한 계략은 할머니의 숨을 더 조이는 것 같았다. 긴급 작전을 변경했다.
어렸을 때의 추억을 꺼내 들고, 할머니가 뜨거운 죽을 먹을 때는 그릇 가장자리부터 먹으라고 알려주신 것 머리를 빗을 때는 끝부터 빗어 내리면서 점차 위로 올라가야 된다는 것 등을 알려주신 것 너무 감사하다고 할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때다 염소를 데리러 다녀오신 사이에 혼자 있음을 알고 놀라 울면서 동네방네 떠나가라 울어댔던 것을 말하면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할머니와의 추억이 많아서 감사하다고 할머니가 너무 좋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스르르 얼굴이 온화해지시고 숨소리도 편안해지며 동시에 마음 문이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 찰나를 놓칠 새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인류에게 가르치러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라고 그림을 보여드렸다. 하늘나라에게 가면 꼭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시라고, 내가 시골에 살아서 못 배웠는데 꼭 예수님에 대해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리라고 했다. 할머니는 찬찬히 예수님 그림을 보시더니 '좋다!' 한마디를 하셨다.
손녀의 알량함을 꺽지 않으시고 마지막 호흡을 모아 뱉으신 그 한 마디가 나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후로 의사의 예언과는 다르게 기사회생하셨고 살아있는 게 때론 힘들다고 하시는 할머니께 '하나님 사랑해요. 감사해요.'만 하셔도, 인생 살아있는 엄청 큰 의미 있는 일을 하시는 거라고 알려드렸다.
그 뒤로 틀니도 새로 하셔서 식사도 잘하시고건강해지셔서얼마나 더 사시게 될지 속으로 하나님께 여쭈었을 때, 할머니께서 직접 7년을 더 살고 싶다고 대답하셨다.
정말 7년을 사시고 돌아가셨다.
노령이시다 보니 치매가 점점 심해지셨는데 어느 날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꿈에 보니 네가 공주 옷을 입고 있더라"
듣는 순간 누가 들으면 오해할까 봐. "내가 공주이면 할머니는 왕비야? 하하" 하고 농담으로 받아넘겼는데 할머니가 영의 세계를 꿈에서 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영들은 드레스를 입고 다닌다.
돌아가시기 전 날, 역시 의사의 연락을 받고 요양 병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가는 도중 이제 막 뽑았는지 깨끗한 쓰레기 수거 차가 아버지와 내가 탄 차 앞에 딱 나타나서 섰다. 신호에 걸려 정지해 있는 동안 앞 차를 보며 선연히 깨달아졌다. '아! 이제 진짜 마지막이시구나!ㅜ.ㅜ'
용기 내어 아버지께 말씀드리지는 못했다 아버지는 평소에 말 수가 없으시고 권위적이신 분이라 그 앞에서 내 생각을 말한다는 게 너무 어렵다.
마지막으로 할머니께 귓속말로 '고생하셨다고 사랑한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눈치를 보느라 못했다. 아쉽다.
그래도 이제 막 출고 된듯한 깨끗한 쓰레기 수거차(인생에서 한 번 볼까 말까 한)를 보니 성적표를 받은 것 같았다.
너무너무 감사하다.
인생의 수많은 죄를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되었다.
혹자는 누워서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들 했지만 그건 정말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님만 아는 일이다.
그 원하시는 자는 허락하심을 얻어 알게 된다.
그리고 할머니의 첫제사 날이 왔다.
기독교인인 딸에게 절을 강요하진 않으시지만 할머니가 오셨음을 확신하고 예를 갖추었다.
할머니가 구원을 받으셨음을 확신, 확신하기에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음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할머니 장례식에서도 제사에서도 내가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지 가족들조차도 모른다.
진정한 제사란 구원자를 통해 자신이 먼저 살고. 신령한 예배를 드림으로 죽은 조상님이 하늘나라에서도 잘 지내시게 기도해 드리고 자녀들이 의롭게 살아서 서로 연결되는 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개역한글 마태복음 8장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