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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Sep 02. 2021

고양이에게 빠지다

고양이 너는 나에게 '나'라는 언어다.

길고양이 치타를 알게 된 지 1여 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치타는 많이 자랐다.

아주 아주 길고양이의 본성이 강하다.

아마 부모도 길고양이였던 것 같다.


사냥 본능이 강해 벌레 소리, 쥐 소리(동네에 쥐가 살고 있을 줄은...;;), 새소리에 민감하다.

나무도 잘 타는데, 처음 봤을 때 내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가 이내 감탄사를 뱉으니, 바로 기분이 우쭐해지는 게 눈에 보였다. 그 뒤로 나에게 한 번씩 나무 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 나는 할리우드 액션을 더해, "와우~!!" 하고 놀라며 칭찬의 말을 마구 해준다.


영역을 사수하는 본성도 강해서 츄르로 꼬셔서 집에 데리고 와봤지만 침대 밑에서 하루 종일 나오지 않다가 하루가 지나니 하악 거리고 하루가 지나자 피오줌을 싸는 통에 마음이 약해져 풀어 준 적이 있다.


그 추운 겨울에도 젖소는 호시탐탐 나의 집에 들어오려고 하는데, 치타는 늘 두 번 다시 감금되지 않으려는 듯 경계했다.

그러다가 젖소가 나의 집 앞까지 오면 경쟁심과 질투심에  올라오곤 했지만 이내 미끼만 달랑 가져가고, 달아났다.

자기 영역이 안정적이니 집착하는 것 같다.


그리고 많이 먹진 않지만 먹이에 집착하는 것이 보인다.

냄비처럼 순간 끓어 배고픔을 못 참는 모습이 보인다.


츄르나 캔을 가져가면 나는 눈에 보이지 않고, 내 말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의례히 자기에게 줄 것을 알기에 젖소처럼 애교도 부리지 않는다. 다만 처음에 밥그릇만 보지 말고 내 얼굴을 좀 보라고 머리를 밀었던 것이 신호로 입력되어 머리를 밀면 내가 먹이를 주는 것으로 안다.  "빨리 가방 열어~!"


그래도 치타가 두 번째 임신했을 때 (임신한 사실을 모르고), 여행길에 다녀오느라 2일간 먹이를 못줬는데, 마침 중성화를 목적으로 이동장 안에 캔을 놓고 유혹했는데도 절대 들어오지 않았다. 이럴 땐 정말 여우 혹은 귀신 같이 눈치가 빠르다. 젖소가 이때 대신 잡혔다.


호불호가 확실하다.

중국산 고양이 간식을 샀는데, 냄새가 못마땅한지 안 먹는다. 말린 북어도 안 좋아한다. 뼈에 붙은 갈빗살 뜯어서 주면 잘 먹는다. 생선보다는 육고기 파다.

젖소랑은 반대다.


그래도 참치캔은 생선이어도 잘 먹는다.


말린 꼬리에 작은 엉덩이를 한 모습이 뭔가 수줍은 듯하면서 자기를 드러내길 싫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기분이 좋을 땐 코르사주처럼 말린 꼬리를 흔들어 댄다.


동네에서 제일 작은 고양이. 안정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오픈된 공간이라 대장 냥이나 수컷들이 지나가면 꼼짝없이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늘 긴장 상태다.


최근에 새끼 고양이들을 지키느라 보초를 서다 조는 모습을 두 차례 보았는데, 정말 쉬게 해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어쩜 성격이 나랑 닮은 점이 많은 거니?

어쩌다 우리가 만났니?


이제 그만 편히 쉬게 해 주고 싶은데, 나에게 와서 편히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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