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se Sep 30. 2023

술을 좋아하ㅂ닏ㅏ

떨림의 농도


토요일 저녁. 맛집이 많이 몰려있는 그의 집으로 향하는 골목골목마다 반짝반짝, 내가 좋아하는 노란 조명과 감각적인 간판들이 주말의 소란스러움에 조금은 낮게 깔린 채로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다. 집 바로 아래에 있는 와인바를 지나며 오랜만에 와인이 마시고 싶기도 하고.


나는 오늘도 혼자 술을 마신다. 아, 혼자 있지는 않고. 옆에 그 사람이 앉아 귀엽게 웰치스를 홀짝 거리고 있다.

언젠가 이상형을 읊으며 다 좋은데 술 못 마시는 남자는 딱 별로야, 재미없다 했었던가. 그리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금주인禁酒人'을 만나본 적이 없어, 그가 유일하다. 아무래도 술이 내어주는 익살과 루즈함이, 알코올이 몸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 지켜보자면 자칫 과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다고 인정하는 쪽이라 가능하면 함께 즐길 줄 아는 편이 좋았다. 그런데 정작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을 만나보니 그게 또 그렇지만도 않다. 물론 그 사람이니까, 특별히 다르다고도 생각하지만.


- 이 술 뭐야? 요즘에 신기한 술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 이거 사볼까?

술을 즐기지는 않지만, 나의 음주생활을 인정해 줄뿐더러 지지도 해주는 그가 또 탄산음료를 사러 들어간 편의점의 알코올 냉장고 앞쪽을 서성거리며 술을 고른다. 새로운 술이 있으면 마셔보자며 진귀한 것을 마주하는 눈으로 진지하게 술병을 꺼내 꼼꼼히 살피는 그. 오늘은 '빛32’ 라는 술이다. 이전에는 '새로' 였고, 그전에는 어디서 들었는지 쿠팡에서 주문해 받아뒀다가 나를 먹인 '느린 마을 소주' 였다.

- 전무님이 여자 친구가 '원소주'가 뭔지 알면 주신대, 뭔지 알아?

말할 것도 없었고, 당시 구하기 힘들다던 그 술도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여자 친구가 술을 좀 아는 직장 후배' 가 받아온 덕분에 페어링이 좋다는 안주를 고르고 골라 인증샷까지 보내드렸다.


둘이 즐겨보는 유튜버의 방송을 TV 화면으로 크게 틀어놓고, 양다리를 그 사람 무릎에 올려놓은 채로 그가 골라준 술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불쑥 치밀어 오른 감동에 가까운 만족감에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왜 그러냐고 장난 섞인 목소리로 묻고는 허리를 당겨 키스해 준다. 그러고는

- 에~ 술냄새~

자기가 골라준 주제에, 잘도 저런 소릴 한다.


음주 자체를 즐기기도 하고, 술자리를 좋아하기도 해서 주량은 적당히 높은 편이다. 몸 상태에 따라 조금 빨리 취하는 날엔, 몰래 집이나 방이나 침대로 도망가 자버리는 게 주사다. 맛있는 식사엔 반주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는데, 그와 함께 있으니 과하게 마시지 않고 적당히, 딱 기분 좋게, 음식을 즐길 수 있을 정도만 마시게 된다. 그럼 나는 그 기분 좋은 알딸딸함을 핑계로 그 사람 손을 쪼몰락거리며 애교를 부릴 수도 있고, 술기운 없는 그가 몰아주는 차를 타고 안전하게 귀가할 수도 있다.


얼마 전 함께 아는 지인 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일을 마치고 밤늦게 다녀왔다. 그녀의 아버지는 몇 년 전 간암을 선고받으셨으나, 당신은 좋아하는 술을 끊으려 스트레스받는 쪽보다 즐기다 행복하게 가는 쪽을 선택하셨다 했다. 실제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크게 힘든 기색 없이 가족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며 긴 인사를 나누고 가셨다고.


결코 술을 권장하려는 것도, 아버님의 선택이 옳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애주가로서, 내가 애호하는 것을 즐기는 일에 일일이 감정 소모 되지 않는 상대가 옆에 있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 같은 일인지, 그런 종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하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하나에서 열을 세면 겨우 하나를 빼고는 다른 것 같은 그가, 나와 함께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또 하나의 이유를 찾아냈다고. 그저 조금 자랑스러울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나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