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리 Sep 16. 2023

진짜 생일에 아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생일에 아기를 낳았다


생일에 아기를 낳았다. 내 생일은 딱 40주가 되는 출산 예정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날 낳을 줄은 몰랐다. 모든 일은 내가 임신했던 10개월간 상상한 것과 전혀 다르게 일어났.


39주의 마지막 날, 정기 진료를 갔다. 그런데 초음파를 본 의사 선생님이 양수가 확 줄었다며 아기한테도 안 좋으니 입원해서 유도분만을 하면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오늘 바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지금까지 내가 고민했던 건 오로지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였지 유도분만은 범위에도 없었다. 그게 뭔지도 몰랐으니까.


열 달 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유도분만을 할지 말지를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며 어렵게 분만 방법을 결정한 시간들이 무색해졌다.


“아……. 바로 입원을 해야 하나요? 아니면 집에서 짐 싸오고 남편도 같이 와도 되나요?”


“다녀오시려면 다녀오셔도 돼요. 근데 너무 늦게 시작하면 새벽에 낳을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오셔서 시작하는 게 좋죠.”


나는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얼굴로 진료실을 나와 남편한테 전화했다.


“어, 나 오늘 두시에 입원해서 유도분만 하쟤. 회사 조퇴할 수 있어?”


“알았어. 정리하고 출산휴가 올리고 갈게.”


의외로 남편은 받아들이는 게 빨랐다. 군더더기 질문 하나 없이 전화통화가 완료됐다.


집에 와서 짐을 챙기고 있자니 배가 고팠다. 평소처럼 가볍게 진료를 간 거였기에 아침밥도 우유에 시리얼 한 그릇 타서 먹은 게 다였다. 출산하려면 지금이라도 밥을 든든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병원에 전화했다.


“저 오늘 2시에 유도분만 입원하기로 한 산모인데요. 점심은 먹고 가도 되죠?”


“안 됩니다. 수술할 수도 있어서 물 포함 금식하셔야 해요.”


예상과 다르게 일이 흘러가면 불안함을 느끼는 나는 머리가 아득해졌다. 나는 나를 안다. 나는 배고픈 걸 참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세웠던 ‘집에서 자연진통이 걸릴 시 대처계획’의 1안, 2안, 3안에는 모두 ‘입원 전에 밥 든든히 먹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도 다 틀렸다.


결국 배고픈 채로 입원을 했고 이틀간의 유도분만 여정이 시작됐다. 분만실에 누워있자 의사 선생님이 들어와 설명을 해주셨다.


“일단 지금부터 저녁 6시까지 약을 써 볼 거예요. 진통이 걸릴 수도 있고 안 걸릴 수도 있어요. 만약 걸리면 쭉 가는 거고, 분만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데 안 걸린다, 6시에 약 뺐더니 진통이 줄어든다, 그러면 간단하게 식사 하시고 내일 아침 일찍부터 다시 시도할 거예요. 그러고도 오전 내내 진통이 안 걸리면, 그러면 그건 오후에 저랑 다시 얘기하실게요.”


나는 내게 일어날 일을 완벽하게 설명해줄 때 안정감을 느낀다. 결국 ‘이틀 안에 끝나는 싸움’이란 걸 알려주는 게 나한텐 중요하다. 일어날 일의 최대치를 알면 첫날에 성공하는지 둘째날에 성공하는지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거다.


비로소 나는 편한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다. (계속)


다신 갈일 없을 분만실. 편안한 척 조성되어 있지만 자세히 보면 무시무시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